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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위상수학이 알려주는 겉과 속을 통찰하는 힘

by 전경일 2016. 12. 7.

 

위상수학이 알려주는 겉과 속을 통찰하는 힘

 

"따뜻한  쪽을  속으로  하고 싶기에  안쪽  가죽을  겉쪽으로  돌렸다.  찬  것을  겉쪽에  두고  싶어서  따뜻한  쪽  모피를  안쪽으로  돌렸다.”

 

시인  롱펠로우가 1855년에 발표한 인디언 영웅 서사시〈하이워어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오지베이(Ojibwas)족의 인디언 소년 하이워어사가 할머니를 통해 새와 짐승의 언어를 익히고 자연의 순리를 깨달으며 다섯 부족을 통합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시에서 롱펠로우는 안이 바깥이 되고, 바깥이 안이 되는 모피로 만든 벙어리장갑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묘사는 위상수학자들과 직접 관련된다. 이들은 장갑을 비틀고 뒤집는 인디언이야말로 위상수학을 실연(實演)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이걸 알려면 위상수학(位相數學, topology)의 세계가 무엇인지 조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현대수학의 최첨단에 있는 수학자들은 위상수학이라는 매우 매력적이고 불가사의한 세계와 만나고 있다.  위상수학은 연속적인 일대일 변환으로써 기하학적 도형의 불변에 대한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쉽게 말해 도형 또는 공간을 연속적으로 변형해 갈 때, 그런 변형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성질을 연구하는 특수한 기하학 분야를 가리킨다. 그래도 설명이 좀 어려울 것 같으면 아래 설명을 들어보자.

 

여기 도넛과 머그잔이 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물체지만, 구체(球體)가 입방체로, 입방체가 부정형으로 바뀌는 변화를 통해 도넛은 머그잔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갖고 놀던 물렁물렁한 진흙덩어리를 주물럭거려가며 변형시킨다고 생각하면 된다. 진흙을 주물럭거려 상자를 만들거나 납작한 원반을 만든다면 이거야말로 위상수학의 변환을 실행하는 것과 같다.

 

위상수학적 관점에서 아래 도넛에서 머그잔으로 변환된 모양은 위상수학자에게는 조금도 변환된 것이 아니다.  표면의 생김은 달라졌지만, 어떤 기초적인 특성의 변화도 없고 전체적으로 표면도 같다.  즉 본질이 같다.  이 때문에 위상수학은 ‘동상(同相)’,  사상(寫像) 혹은  ‘대응(對應)’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는 너무나 유명한 그림인데 위상수학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예이다. 실제 도넛을 머그잔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위상수학적으로 이 둘은 같다. 이론적으로는 한 물건을 다른 물건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위상변환에서는 비틀거나 구부리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물체를 변환시길 수 있지만 구멍을 내거나 메우지 않고서 구())를 머그잔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 왼쪽 접시의 도넛은 접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위상수학에서 오른쪽 접시와 납작한 빵 모양은 두 개의 사물이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로저 뉴러드 셔퍼드 교수에 의하면, 도넛과 평면의 종이는 같을 수 있다. 도넛의 바깥 원을 자르고 원통을 만든 후 다시 자르면 된다. 사물의 이면과 다양성은 위상 수학이 주는 매력이다.

 

위상수학자들은 누구도 만들지 못하는 면이나 한쪽 면밖에 없는 것 같은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모양을 고안해낸다.  그 이유는 위상 변환 중에는 곡면의 시성수(示性數)라는 특성이 있는데, 이것은 물체가 가진 구멍의 수로써 정해지는 것이다.  서로 만나지 않고,  또 두 개로도 나누어지는 일 없는 곡면 위의 폐곡선의 수로 시성수는 결정된다.  이 특수한 순수 수학의 세계는 어린 아이의 장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깊숙이 들어가 보면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만큼 어렵고 추상적인 세계까지 들어가며 여러 분야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

 

구체가 입방체로, 입방체가 부정형으로 바뀌는 변화에서 살바도로 달리의 작품〈기억의 고집〉에 나오는 치즈처럼 눌러 붙은 시계는 파괴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다. 위상수학적으로 보면 별로 복잡한 변형 상태는 아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위상수학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예술가들이  지닌  공통적  창작 능력의  하나로  변환과  치환의  방식을 알고  이  유명한  작품기억의 고집을 그렸다. 이런  변환은   위상수학의  세계에서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사물을  보거나  착안  또는  상상해  예술작품을  만드는  일은  현실에  대응對應)해  사상(寫像)한다는  점에서  광의로  하나의  위상기하와도  같다. 1931, 캔버스에 유채,  24x33cm,뉴 욕 현대미술관 소장.

 

이 그림과  관련해서 그림을  완성한  4년 후  달리가  했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간은 우리에게 다만 비판적인 까망베르 치즈일 뿐이다.”

  

시계 시간 치즈로의 변환()이 이루어진다또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 시간에 대한 비판자로서 상상의 세계를 도약시켜 준다실제로 시간은 유한한 인생의 주요 문제이자고뇌의 중심이기도 하다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은 이처럼 인간의 내면에 이는 권태, 우울, 무의미 같은 것들을 예술적으로 몇 단계 씩 위상수학적 과정을 거쳐 변환시켜 놓은 것이다수학이 예술을 만나 추상성을 이해하는 한 방편이 되는 걸 알 수 있다.

 

위상수학은  겉모습보다는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사고방식, 인식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인간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사람도  외양보다  본질을  보게  함으로써  당연히  인간 이해에  식별력과  분별력을  높여준다그 때문에  미술뿐만  아니라  심리 분석에서도  쓰인다공항장애인격장애파라노이아우울증, 스 트래스죄책감망상 등 뒤집혀진 정서적 상태, 정신질환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도 쓰인다.

 

창조성과도 밀접한 관련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관념을 갖고 있지만, 위상수학적 사고는 관념에 뿌리내린 사물이나 인식에 차별적 시각을 던져준다. 변화의 패턴을 인식하게 하며, 역발상의 사고를 가져온다. 따라서 이 같은 접근법은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하나의 수학적 방법론이 된다.

 

예를 들어 공학자는 전기회로 구성 시나 시스템 엔지니어링 기획 시 활용할 수 있고, 화학자는 각종 원소의 결정 구조도를 만드는 경우에, 생물학자는 생물의 계통수()를 밝히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 또 학문 분야별로 경제학, 사회학 등에서도 경제 흐름내지 사회 현상의 속살을 읽은 데 쓰이곤 한다.

 

위상수학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거나 분석하면 또 다른 면이 찾아진다현상 너머 진인(眞因)을 보게 한다여기서 간단한 문제 하나를 풀어보자.

 

다음에 등장하는 영화 ET,  자전거 바퀴살자동자 운전대페덱스야간 스키장의 위상수학적 공통점은 무엇일까?

 

 

외견상 전혀 달라 보이지만이것들의 공통점은 시간분배 사업모델(Time sharing Business Model)’을 공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왜 그런지 알고 싶으면앞에서 도넛이 머그잔이 되는 간단한 원리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각기 다른 산업에 속하지만영화는 관중이 내는 요금과 영화 제작자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일정한 시간과 맞바꾸는 사업모델이며, 자전거, 자동차는 특정 거리를 주파하는 시간을 절감해 주는 대가로 자동차 대금을 지불하는 모델이며, 페덱스는 특정거리로 우편물을 보내는데 드는 시간을 절감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고, 야간 스키장은 비어있는 시간을 저가 요금 정책으로 이용도를 높이고 있는 사업 모델이다.

 

 겉으로 봐서 다르지만 위상수학적으로는 같다이렇게 보면 사업도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멋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

 

사회적 문제에서도 위상수학은 어떤 사회 현상이 벌어지는 각 좌표들을 읽어내고, 그 이면을 파악해 다른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때와 장소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사회 현상의 극히 일부분에서도 현상의 본질을 간파해 낼 수 있다.

 

사회 문제로 눈을 돌려 조금 더 살펴보자. 현재 한국 사회가 지닌 제 문제들, 예컨대 남북 분단과 대결구조, 노동과 실업 문제, 미완의 민주화 문제, 인권 문제, 부의 편재와 대물림 문제, 사교육과 학력 세습 문제 등 온갖 문제들이 지니고 있는 본질은 무엇인가?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처럼 문제는 우리를 먹고 있고, 우리는 서로를 집어 삼키고 있다.

 

이런 건 다분히 위상수학적 문제다. 이 번잡한 난제의 특징은 문제가 문제를 만들어 내고, 그 문제를 덮을 새로운 문제를 만들며 혼란을 부추겨 결국엔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문제가 해결되길 결코 바라지 않는 집단들의 이해가 철저히 현재를 고수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복잡하고 가진 자 중심의 세법 문제, 대기업의 전횡과 횡포 문제, 대학을 들어가는 3000여 방법의 입시정책, 끝없이 바뀌는 부동산 대책, 정치인들의 노회함과 무기력무능력증, 사법고시 패스 하나로 평생 거머쥐는 사법부의 과도한 권력,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알기 어려운 법률 용어, 행정 절차의 복잡함과 공무원의 의례적 행태, 청년들로부터 밥그릇을 강탈하는 사회구조, 가장 야만적인 노예제도이자 봉건주의 산물인 비정규직 등 온갖 병목을 가져오는 요인들을 보라. 사회 전체적으로 별 의미 없는 복잡성만이 극치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은? 이것도 위상수학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위상공간에서는 배배 꼬인 문제는 단 칼에 베어 버려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해결한다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내려치듯 말이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