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과 두 남자(전3권)
전경일 지음/다빈치북스·각 권 1만5000원

마릴린 먼로. 흑인과 여성 등 약자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고, 인민(people)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즐겨 쓰며, 미국판 ‘빨갱이’ 색출 광풍인 매카시즘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던 그녀는 한국전쟁 직후 왜 한국을 방문했을까. 단지 위문공연차? 전쟁터에는 세계 곳곳에서 청년이 모인다. 거기에 마릴린의 누드사진이 뿌려졌다. 하루 수만 통의 팬레터가 날아드는 신드롬이 터진 곳이 한국. 그저 보답이었을까? 당시 그녀는 신혼여행 중이었다. 내한한 이듬해인 1955년 마릴린은 소련에 비자 신청을 한다. 2012년 12월 공개된 미 연방수사국(FBI)의 ‘먼로 파일’을 보면, 수사당국은 그녀를 공산주의자로 의심해 그해부터 그녀가 사망할 때(1962년)까지 사찰한다.

전경일 작가. 다빈치북스 제공
전경일 작가. 다빈치북스 제공

작가 전경일(사진)의 <마릴린과 두 남자>는 한국전쟁을 마릴린 먼로와 두 종군기자의 시점에서 응시하는 소설이다. 외국 배우와 기자라는, 외부의 눈으로 한국전쟁을 다뤘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작품. 미 시사잡지 <라이프> 기자 하워드 워드라는 인물이 한국전쟁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또 다른 기자 칼 마이어스는 하워드와 같이 사진을 공부한 사이. 칼은 마릴린을 스타로 만들려 그녀의 누드 사진을 대량 싣고 왔지만, 전쟁의 참상을 폭로하는 사진과 기사를 송고하다 결국 군 당국의 주시를 받게 된다. “카메라의 눈으로 전쟁을 볼 것인가, 육안의 연장선에서 그 전쟁을 바라볼 것인가? 어떤 눈으로 볼 때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가?” 두 기자는 전쟁 취재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관점을 대변한다. 전쟁도 피사체인가, 아닌가. 지은이는 ‘외국인’ ‘기자’라는 제3자의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다룬 시도에 대해 “비탄(감정)을 잘못 꿰면 눈물이 흐른 곳에 증오가 자리 잡는다. 올해가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민족사적 슬픔 앞에 더 이성적(객관적)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릴린 먼로가 1954년 2월 내한해 미군기지에서 위문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 주한 미군기지관리사령부
마릴린 먼로가 1954년 2월 내한해 미군기지에서 위문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 주한 미군기지관리사령부

사실 한국전쟁은 이제 젊은 세대에겐 조금 ‘먼’ 사건이 된 면도 없지 않다. “전쟁을 겪은 자는 누구든 망각과 왜곡이란 벗을 양 옆구리에 끼고 산다.” 아무리 역사적인 사건도 (기록을 통해 역사로 남을지언정) 공동의 기억에선 망각과 왜곡으로 필멸에 가까워지고 만다. 이 소설은 불멸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를 끌어들임으로써 꺼지지 않는 관심을 불붙이는 데 일단 성공적이다. 3권, 약 1500쪽에 담긴 꽤 많은 양의 정보도 읽어내는 데 큰 무리가 없을 듯싶다. “미 장성들의 회고록과 민중들의 경험담, 돌아가신 부친의 기록과 구두 증언, 라이프지 화보, 사진 이론 등 단행본 높이만 2.5m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4년에 걸쳐 소화시켜, 읽을 땐 쉽고 매끄럽다.

마릴린 먼로가 1954년 2월 내한해 미군기지에서 위문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 주한 미군기지관리사령부
마릴린 먼로가 1954년 2월 내한해 미군기지에서 위문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 주한 미군기지관리사령부

베스트셀러 에세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2005)으로 이름을 알린 지은이는 역사경영서 <창조의 CEO 세종>(2010),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정리한 <남왜공정>(2011), 조선 화가의 삶을 풀어낸 <그리메 그린다>(2012), 그림에 얽힌 욕망과 구원을 통찰한 소설 <조선남자>(2014) 등 예술과 역사를 아우르는 글쓰기에 능하다. 마릴린은 톱스타임에도 맨 얼굴로 연기 아카데미를 꾸준히 찾던 진지한 예술가였고, 독서광이었다. 하지만 이런 면모는 섹스 심벌과 백치미란 이미지에 가려 ‘망각’되고 ‘왜곡’됐다. 마릴린과 전쟁이라는 역사는 어쩐지 닮은 기색이 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사진 다빈치북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