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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삼국지에서 배우는 경영

손권과 원로대신들 간의 밀도 높은 커뮤니케이션 방식

by 전경일 2018. 4. 10.

손권과 원로대신들 간의 밀도 높은 커뮤니케이션 방식

 

흔히 창업 연륜이 오래 된 회사들은 초기 창업 공신들이 회사 내 많이 포진해 어떤 면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손권에게도 창업 공신이자, 원로대신들이 많았다. 그는 부친 손견과 형 손책이 닦아 놓은 창업기반을 물려받은 탓에 다루기 버거운 신하들이 주위에 많았다. 이런 이유로 오랜 경륜과 창업자 프리미엄이 따르지 않은 손권에게는 창업 CEO에 버금가는 능력이 요구됐다. 때로 경험과 카리스마 부족은 그의 발목을 붙잡기도 했다. 그러나 손권은 이런 어려움을 탁월한 역량으로 뛰어넘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신하들을 잘 다루며 창업과 도약의 발판을 확고히 세운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거의 천재적인 자질과 능력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장소와 장굉·고옹이 있다. 이들은 누구일까?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장소의 경우

장소는 손권보다 26세나 많은 명문가 출신의 학자로 근엄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다보니 손책이 죽을 때는 물론, 손권의 모친이 운명할 때에도 장소에게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간곡한 당부를 남길 정도였다. 이 점은 오나라 조정 내 장소의 위상과 입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손권이 매우 화가 나서 칼자루를 잡으며 호통쳤다.

오나라 사람들은 궁중에 들어오면 나를 받들어도 궁을 나가면 당신을 무서워한다. 당신은 신하들 앞에서 내 체면을 생각지 않고 함부로 군다. 나도 가끔 내 인내의 끈이 끊어질까 두려울 때가 있다.”

저도 이러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군의 모친이 돌아가시면서 간곡히 당부한 것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 말에 손권은 칼을 거두고 같이 울었다. 이 일화는 손권과 장소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엿보여 준다. 지혜로운 소통의 장을 보는 듯하다.

 

장굉의 경우

장굉의 경우도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장굉은 한때 조조 밑에서 일했었다. 그렇지만 그는 손책 때 오나라로 와서 끝까지 충성을 다했다. 조조 밑에 있었던 전력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기도 해서 때로 모함을 받기도 했지만, 손권은 그를 끝까지 감싸고 신임했다. 손권이 장굉의 건의에 따라 도읍을 경구에서 건업으로 옮긴 것을 보면 둘 간의 신뢰지수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순의 나이로 눈을 감으며 장굉은 손권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그 내용은 이렇다.

군주로서 널리 현인을 구하고 간언을 받아들이며 일시적인 감정을 절제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쓴 소리지만 몸에 좋은 고언을 한 것이다.

 

고옹의 경우

고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근엄하고 고지식하고 과묵했다. 손권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마다 사람을 보내 고옹의 의견을 물었다. 고옹은 찬성일 땐 구체적 방안에 대해 의견도 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권은 보낸 사람이 음식 대접을 받았다고 하면 당초 안대로 시행하고, 그냥 왔다고 하면 재고토록 했다. 별로 말이 없는 손권과 고옹이었지만 두 사람은 숫한 말을 나누는 것보다 훨씬 더 밀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고옹이 승상으로서 76세의 일기로 죽었을 때 손권이 소복을 입고 장례에 참석해 충신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이 같은 친밀도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