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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르네상스 경영학

변화에 무심한 조직의 몰락: 기를란다요와 베네치아 이야기

by 전경일 2019. 3. 12.

변화에 무심한 조직의 몰락: 기를란다요와 베네치아 이야기

 

도메니코 디 토마소 비고르디(Domenico di Tommaso Bigordi)는 피렌체에서 활동한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이다. 일명, ‘기를란다요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면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의 생애 연작이 있다.

 

 

기를란다요는 철저한 사실기법으로 통속 묘사와 초상 묘사를 했다. 그는 피렌체에서 대형 공방을 운영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그들과 함께 방대한 작품 주문을 소화해 내며 부까지 거머쥐었다. 그의 공방에서 사사한 이들 중에는 미켈란젤로도 있었으나 미켈란젤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의 품을 떠났다. 경직된 분위기의 기를란다요 공방은 시대에 조금씩 뒤처지고 있었다.

 

기를란다요는 현란하고 교묘한 필법으로 시류에 부합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미의 본질적인 감각에 미흡했다. 게다가 대형 공방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던 그는 변화하는 시대의 조류에도 어두웠다. 동시대를 살았던 보티첼리가 중세 그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섬세한 양식과 인문도상학적 상징을 그려 넣을 때, 기를란다요는 조잡하고 중산층의 기호에 맞춘 천편일률적 화풍을 고집하고 있었다. 기존의 성공에 갇혀 시대의 변화에 무감각했던 기를란다요는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없었다.

 

성공한 조직일수록 기존의 성공적인 혁신에 얽매이고 집착하기 쉽다. 그 또 다른 예를 프랑스, 오스만 튀르크 등의 대국들과 어깨를 견주었던 강력한 도시국가 베네치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지중해를 장악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진귀한 물건들을 유럽으로 들여오는 중개무역으로 번창했다.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온 피난민들의 군소 취락으로 출발한 베네치아가 그토록 강성하여진 데에는 험난한 바다를 개척하며 유럽 최고의 항해술을 발전시켰고 또 깨어 있는 리더들이 솔선수범하며 국론을 이끈 덕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네덜란드와 영국 등의 신흥 해양 국가들이 베네치아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지중해를 벗어나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향하는 신항로를 개척하였다. 이들이 질 좋은 이국적 상품을 베네치아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공급하기 시작하자 베네치아는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중해 무역에서 떨어지는 폭리에 안주하던 베네치아는 어떤 대응도 마련하지 못했다. 여기에 지중해 제해권을 차지하기 위한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쟁까지 더해지며 베네치아는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만약 베네치아가 서유럽 국가들에 맞서 다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의 소모적인 경쟁을 종식하고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면, 그리고 성공에 안주하여 사치에 탐닉하지 않고 도시 초창기의 개척 정신을 유지했다면 유럽 전체의 역사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기를란다요와 베네치아의 몰락을 통해 우리는 환경 변화의 흐름을 읽고 대처하는 생존과 혁신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길 수 있다. 당신과 당신 조직은 어떤가? 뒤늦게 시대의 흐름을 깨닫고 부랴부랴 임시변통식의 대응에 급급하지는 않는가? 아니면 지난 영화에 갇혀 위험한 변화의 징후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