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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세종 | 창조의 CEO

[창조의 CEO 세종] 내 마음이 편치 않다!

by 전경일 2009. 2. 3.

 세종은 신병 치료를 위해 온천엘 자주 갔다. 그런데 왕이 온천행을 하려면 가마와 마차가 지날 수 있어야 하니까 길을 닦아야 했고, 가마꾼도 대략 500여명이나 필요했다. 또 욕실과 거처도 새로 지어야 했다. 또한 수백 명에 이르는 수행원들 접대도 해야 하니까, 민폐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런 일을 빌미로 지방 수령들이 백성들로부터 접대비용과 욕실 및 행궁 건축비를 거두어 들이지 못하도록 세종은 엄중히 했다. 그런 연유로 세종은 건물도 새로 짓지 않고 이전 시설을 수리해 쓰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세종 24년(1442) 3월 강원도 평강 온천에 갔을 때, 세종이 황보인과 김종서 등에게 이르는 말 가운데 이런 얘기가 나온다.


“내가 올 때 도로가 극히 평탄하여 여기에 이르렀다. 궁전 역시 장대하다. 이와 같이 큰 폐를 짓고 여기에 편안히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세종실록』24년 3월 19일 )


또 온천행 중에 길 옆에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에 마음이 편치 못하여 일정을 앞당겨 오기도 했다. 당연히 신병차 간 몸조리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하지만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정신에 철저한 세종으로서는 자신의 편의 때문에 만인에게 고통을 줄 수는 없었다.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떳떳할 때에라야 스스로 ‘위민(爲民)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사랑 밖엔 난 몰라 ]


세종의 백성 사랑은 ‘절대사랑,’ 즉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끈끈한 인간적 교감을 동반했고, 세종이 국가를 경영하는데 실로 막강한 휴먼 인터페이스가 되어 주었다. 세종의 경영 목표가 ‘백성’인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것은 신생 조선의 CEO에게 유교적 경영 이념이 요구하는 대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자신이 백성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동고동락(同苦同樂)`형 CEO였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그런 차원 높은 경영의 경지를 보여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리하여 CEO로서 전국민적인 일체감과 삶의 안정성, 그리고 상대적 평등성을 진작시키고자 평생 매진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세종은 결코 군림하는 CEO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부단히 자기 혁신을 통해 매우 입체적인 경영 비전, 즉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세종이 지금의 도지사나 시장, 군수인 ‘근민지관(近民之官)’ 을 면대하면서 한 말은 실로 백성 사랑의 극치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당연히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먹어야 할 것이니,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자네를 사랑하겠는가?”(『세종실록』 8년 4월 기유)


그리하여 그는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백성과 함께 소통하고자 하나 백성이 문자생활을 하지 못해 CEO로서 실로 민망했었다는 자기 반성과 함께 그 애절한 심경을 그대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다 다 한번 씩은 접해 봤을 그 내용은,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중국의 글자로는 통할 수가 없다.

어린 백성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글자를 몰라 뜻을 펼 수가 없다

내가 그것을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다.

백성들이 쉽게 배워 이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는 것이다.


이처럼 세종은 자신의 경영철학인 ‘백성사랑’을 「훈민정음」서문에 뚜렷하게 밝혀 놓고 있는 것이다. 세종이 손수 썼다는 이 서문은 나라의 근본인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하는 애민(愛民)ㆍ목민(牧民) 사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사실, 15세기 동아시아 대부분 나라가 그러했듯, 조선에서도 지배계급은 중국문학ㆍ중국문화에 심취해 있었고, 중국의 문자인 한자(漢字)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 이는 지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의 파워 엘리트들은 미국 및 서구 등지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이 상당수이며, 성공 수단으로 외국어 능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 바로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세종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이라는 뜻의「훈민정음(訓民正音)」을 개발했던 것이다.


적당히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자기 자리를 지킬 수도 있었지만, 세종은 과감한 자기 혁신을 통해 이전의 CEO들이 했던 ‘통치’를 ‘경영’의 수준으로 끌어 올렸던 것이다.「훈민정음」은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분명하게 밝힌 세계에 거의 유일한 문자이며, 현직 국가 CEO가 직접 문자를 만든 경우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일에 해당된다. 세종이 만든 한글은 세계 역사 속에서 바로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듯 위대한 CEO를 가지고 있었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