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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전변(轉變)하는 인재 패러다임

by 전경일 2019. 8. 29.

전변(轉變)하는 인재 패러다임

 

향후 10년 내 인재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미래형 핵심인재의 부족을 대학교육 탓으로 돌리지만, 인재를 키워내는 일은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님으로 오랫동안 기업은 인력기근 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핵심인재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국내 인사관리 기업들의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중 77퍼센트가 자신이 핵심인재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핵심인재라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요인을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29퍼센트가 조직 구성원과의 원활한 관계로 조직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실제로 기업 총수들이 핵심인재로 꼽은 천재급, 글로벌, 창의적인 인재의 요건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뛰어난 두뇌보다는 노력과 성실성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상(同床)에서 이몽(異夢)을 꾸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은 이상(異床)에서 동몽(同夢)을 꾸길 바라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재관은 그렇지 않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형도 여전히 기능적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주로, MBA 학위(랭킹 20위권 내 대학), 해외기업 경력자, 상위 5~15퍼센트, 똑똑하고 적극적인 사람을 찾는 것에 반해, 중소기업들은, 브랜드 가치, 대기업 경력자, 골고루 능력이 많은 제너럴리스트를 찾고 있다.

 

 

외국계 기업은 어떨까? 국내 시장에 진출한 특수성을 반영하듯, 국내 업계 시장파악 능력, 실무 경력, 외국어 능력, 네트워크가 풍부한 사람, 전문성을 가진 스페셜 리스트를 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모두 기능적 인력을 인재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재란 누구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 온 바로는 전문성에 소양까지 갖춘 해당분야에 정통한 사람을 뜻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외국계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는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질적 차이는 없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기업마다 인재상은 다른데 왜 회사에서는 똑 같은 인재유형을 찾고 있는 것일까? 이는 각 기업이 상대적 열위에 있는 부분을 강화하려다 보니 상대적분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뛰어나면 됐다는 시각이 주효하게 먹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교우위의 경제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것들끼리 다투어 자라면 됐던 시대는 이미 끝물이 되고 있다. 그에 따라 비즈니스도, 인재관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외부의 강자가 삽시간에 시장을 밀고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진 상황에서 우리끼리의 경쟁은 의미 없다.

 

 

지금까지는 상대적 우위에 있는 인재들이 한 시대와 국가의 엔진인 산업을 이끌어 왔다. 이들은 창조성이 결여된 교육 시스템에서 그나마 좌뇌형 능력을 인정받아 좋은 대학에 가고, 한국사회의 상층부를 이루게 됐다. 언제든 그들의 창조적 능력(예컨대 실질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경쟁력)이 평가받아 본 적은 없다.

 

 

똑똑하다보니 암기에 뛰어 났고, 효율성의 경쟁 시스템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창조 없이 지속적으로 효율성의 근간이 되는 분야를 개척해 낼 수는 없다. 지적 기능인의 시대가 가고, 인지적 창조인의 시대가 찾아 오면서 이들의 가치는 현격히 하락한다.

 

 

한국 경제는 1975년을 기준으로 루이스의 전환점(Lewis' turning point)'를 통과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A. W. 루이스가 주장한 이 법칙은 공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업부문의 노동력이 공업 부문으로 이동하면서 인력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인건비 상승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것이 산업화까지의 논리였다.

 

 

그러나 정보화가 진행된 20세기 말부터 지속되는 인재기근 현상은 2005년을 기점으로 () 루이스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번에는 핵심인재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심지어는 핵심인재의 가치가 기업 가치와 동일시되기조차 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기업들은 핵심 인재를 찾고자 하는 전쟁(war of telents)에 뛰어 들고 있지만, 지금처럼 인력기근에 목마른 적이 없다. 오히려 사람이 기업이라는 판에 박힌 얘기가 현실이 되면서 초우량 기업들은 잡지 못한 물고기가 배를 집어삼켜 버리는 괴물이 되어 돌아오지나 않을까 오히려 부담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의 사람에 대한 욕심은 여전히 21세기형 HR분야의 진화와는 거리가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인재로 보는 분절형 인재관에 매몰되어 있다. 기업이 표준화, 전형화 되어 있는 틀을 깨며 개성과 독창성을 수용하더라도, 여전히 통섭형 인재까지는 눈이 못 미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판박이 하듯 수없이 뇌까렸던 글로벌 표준조차 전 세계적으로는 이미 거대한 변화 국면에 접어들어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산업 대비 후행적 변화를 추구하는 가장 보수적인 대학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현상들은 급격한 한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잘 보여준다.

 

 

수년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융합형 학과들이 대학에서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각 학문들(전공이라 불렸던)은 별거 상태가 아닌 결합상태, 심지어는 근친 교배의 상태에 까지 다가와 있다. 잡종우세의 임계치에 도달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융합은 새로운 창조를 가져오고, 다양한 결합을 통한 시너지를 고조시킨다. 전문성을 살리더라도 한 분야의 전문성을 뛰어넘어, 다른 분야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인간경제 활동의 총체인 경영이 한 눈에 잡힌다. 우리에게는 그 같은 교육의 경험이 있다.

 

 

세종시대를 찬란하게 빛내게 한 학습과 교육 시스템은 바로 통섭이었다. 그 당시 교육은 유교의 전()과 경()에만 머물지 않았다. 세종은 유능한 인재들이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도록 한 전경지학(專經之學)’ (한 가지 경()이나 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정통할 것을 주문한 것)을 지시했다.

 

 

집현전 학사들에게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을 나누어 주어 매일 매일 각자가 읽고 연구한 범위를 장부에 기록해 매월 말에 보고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조선의 일대 문풍흥기를 위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도록 했다. 세종이 이러했던 것은 국가 경영에는 평범하게 보통의 깊이로 알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넓고 깊은 우물을 파야 했다.

 

 

세종 자신이 중국의 대표적 수학 고전인 산학계몽算學啓蒙을 꿰었고, 재임 중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라는 지시를 여러 번 내리기도 했다. 산학계몽은 당시 중국의 대표적인 수학 고전으로, 수학물리학천문학적 지식이 합쳐진 산학의 정석이었다. 이 책은 쉬운 문제부터 고급 수학까지 다루고 있었고, 특히 중국에서 발달한 방정식인 천원술(天元術)’도 들어 있었다.

 

 

세종이 수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식 달력( , 역법曆法) 개량에 수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산학은 장영실을 비롯해 수석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개발품의 정밀도를 따져 보는데 가장 중요했고, 천문 지리의 원리를 규명해 내는데 주요 학문 분야였다. 세종시기 찬란한 천문기기들은 바로 이런 통섭형 인재들의 크로스 오버하는 간()학문적(필자가 주창하는 이른바 간학間學‘) 지식과 실험 정신이 깃들어져 만들어 낸 것이다.

 

 

세종시대의 고양된 창조력은 마치 르네상스 시대와 그 시대의 천재들을 연상케 한다. 르네상스 거장들의 일은 전문 분야별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그림물감을 조합하다가 금속을 녹이는 화로 앞에서 풀무질을 해댔다. 회화와 조각, 도시 계획, 인체 해부, 기계공작 등 광범위한 분야에 손을 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도 이렇게 성장했다. 그들은 분류할 수 없기 때문에 '만능인'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마치 세종 시대의 인재들과 너무나 흡사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르네상스는 창조하는 행위가 이해의 '바른길'(strada maestra)‘로 인식되던 시대이다. 그들은 세종시기처럼 시대의 흐름에 맞춰 나갔지만, 창조력으로 새로운 시대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지식 사회의 파라곤(paragon, 모범, 본보기, 전형典型)이었던 것이다.

 

 

모든 직원이 통섭형 인재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란 불가능할런지 모른다. 그럴 경우에 조직은 각자 전문성에서 발휘되는 호기심을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틀이 필요하다. 마치 실험과 연구와 사업 현장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낙숫물 받듯 담아둘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아이디어는 증발해 버리지 않고 하나의 실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미 휴렛팩커드는 10여년도 훨씬 전에 오픈 북(Open Book) 시스템을 도입, 누구든 프로젝트를 발의할 수 있고, 프로젝트에 참여를 원하는 사람을 기존 조직이 관성으로 잡는 것을 금하고 있다. 21세기의 기린아 구글의 유명한 10:20:70의 법칙도 이를 잘 보여준다. 기존 업무에 충실하되, 5일 중 하루는 20퍼센트 자신이 원하는 창의적 프로젝트에 몰두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것이다.

 

 

창조적 아이디어는 아이디어 마켓에서 일정 수 이상의 직원의 동의를 얻어내면 프로젝트화 할 수 있다. 인재가 재산이라는 선언을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런 시도들은 속절없이 좌절되고 말 것이다.

 

 

구글의 방식을 뛰어 넘는 것은 구글 너머의 창조적 기업을 이루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구글 방식을 뛰어 넘는 게 전 직원의 통섭형 인재화이다. 지식의 넘나듦, 상호 교류와 확장, 크로스 오버형 아이디어의 발굴은 전인적 인재로 직원을 키워 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육성된 인재들이 차세대 핵심인재들이다.

 

 

경영자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조직도 성공을 바랄 수 없다. 21세기 인재관의 전변에 대해 경영자는 적극 수용하고, 그 필요를 전 사회적 요구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세상과 경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미래를 창조하는데 필수적이다. 우리가 아는 한, 세상은 어느 정도는 준비되어 있다. 요는 누가 강력하고 중단 없는 실행력을 조직에 불어넣느냐 하는 것이다. <초영역 인재>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