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경영에서의 화이트 아웃 현상

by 전경일 2012. 11. 28.

마차를 쫓아가는 개는 일단 마차를 따라 잡고 난 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간 한국 사회의 성장 동력 중 하나로 평가 받아 왔던 벤치마킹의 한계를 드러내는 말로 이 보다 더 적당한 표현은 아마 없을 듯싶다. 글로벌로 나가는 한국 경제나 기업의 현지점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7부 능선쯤에 포지셔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히말라야를 기준으로 하면 산봉에 따라 대략 4천 미터에서 6천 미터 사이다. 여기서부터는 올라가면 화이트 아웃(white out) 현상이 발생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시야가 하얗게 표백된 다. 벤치마킹을 통해 어느 산업 분야에서는 선진 기업들을 따라잡고(또는 따라 잡고자 하나) 우리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것은 백색착시 현상 밖에는 없다. ‘남 따라하기’가 가져온 혹독한 댓가다. 이제 우리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같은 질문은 절박하다 못해 경영자에게 백척간두에 올라서 있는 느낌이 들게조차 한다.

 

그간 서구적 경영 효율주의를 좆은 결과 우리는 성찰을 지향하는 경영학을 껴안은 것이 아닌, 약탈경영이론으로 효과성에 매몰되어 자체의 창조력을 잃어 버렸다. 서구 경영학의 광신적 신뢰는 경영상황과 산업구조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기업을 대하는 게 아닌, 방법이나 수단만 집중적으로 채택하는, 경영 도구들의 단순집합으로써 경영을 대하도록 해 왔다. 그 결과 경영은 진정한 가치와 분리돼 개별적인 것으로 존재하게 됐다. 남을 경쟁상대로 설정하는 서구 경영학의 뿌리 깊은 경쟁논리는 치열한 상쟁(相爭)을 조장하며 상대적이고 배타적 경쟁논리만을 가져와 우리 것에서 경영의 근원을 찾고 이것들 간(間)의 조화와 통합을 이뤄내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져 왔다.

 

경영학은 컨설턴트들이 수행하듯 처방지향적 값싼 마술로 전락하고, 경영학의 쓰레기들은 기업 생태계에 범람한다. 기업은 지식의 베이스 캠프를 가장 낮고 얇은 곳에 치며 고객간의 관계에서 인간학을 중심으로 사업에 몰입하는 덕목마저 상실했다. 고객과의 ‘관계 맺기’와 ‘차이 짓기’는 천편일률적으로 ‘CRM'과 ‘차별화’라는 말로 대체되며 고객 심연의 깊은 마음을 읽는 노력과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현란한 서구 경영이론이 메뚜기떼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시기에 유행처럼 번지는 MBA식의 국부지식에 의해 경영은 전신 마취된 채 창조적 생명력을 얻지 못하고 빈사상태를 보여줘 왔다. 더구나 오늘날 경영자들이 좋아하는 경영이론의 상당수는 여기저기 엿찔끔식으로 묻혀서 붙여온 색다를 것 없는 죽은 이론에 불과하다. 암기식 경영의 일단이라고나 할까?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뒤가 없다. 새로운 것으로 향해 나갈 수도 없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속도담론이 휩쓸고 있다. 단발(單發)ㆍ단기병(短期病)이 고질적으로 작용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원천 지식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보다는 어플리케이션에 늘 바쁘다. 오늘날 시스템 인테그래이션(SI)업계의 딜레마는 자체 개발하는 것보다 외산 솔루션을 들여다 디스트리뷰팅 하는 게 남는 장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다수 기업들이 이 같은 사업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경영자의 단기성과 집착증은 거의 병적이며, 그들이 선택하는 행태의 뒷면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엔 무국적자본, 약탈자본이 뱀처럼 꽈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다. 전체 금융 시스템과 얽히고설키며 돌아가는 산업 구조가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원천(源泉)’은 도외시 된다.

 

이 같은 경영의 화이트 아웃 현상을 극복하고 정상까지 다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 전반이 창조를 화두로 새로운 경영의 판, 산업의 판, 정치경제의 판을 짜야 한다. 물론 기능적 교육이 아닌, 원천적 가치 중심의 교육으로 교육이 교육답게 백년지계로 거듭나야 한다. 대나무 죽순은 3년간 아무런 표면 활동도 하지 않고, 땅 밑으로만 퍼져 나간다. 그러다가 마침내 3년이 지나서 솟아오른다. 더딘 과정 속에서도 인내하며 원천 가치에 3할 이상은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만일 살고자 한다면 말이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하나의 무엇을 파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여기에는 많은 시도들이(실은 실패사가) 함께 한다. 창조는 그 자체로 경쟁을 뛰어넘는 경쟁력을 가져온다. 그러기에 창조가 몰고오는 초(超)경쟁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나의 무엇으로 안될 때 전체를 포기하고 망실해 버리려는 것은 근시안적 생각이며, 동시에 다양한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조차 무시하는 태도이다. 상호 연계성은 지식의 특성이다. 지식 경영은 기존 지식 위에 새로운 지식이 가상(加上)하며 누적되는 개념이다. 이 과정에서 창발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얕은 개울식 경영으로는 새로운 경쟁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폭과 깊이 면에서 탁월성을 갖추는 과정이다. “깊이는 넓이를 만들어 줄 수 있지만, 넓이는 절대로 깊이를 만들어 줄 수 없다. 깊이 없는 넓이는 천박하고 난삽하며, 넓이 없는 깊이는 옹졸하고 답답하다.”는 견해는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될만하다.

 

우리의 경영은 7부 능선에서 교착상태를 맞이하고 있고, 화이트 아웃 현상에 직면해 있다. 성상가상으로 악천후가 뒤덮고 있다. 어떤 기업도 경영자부터 모든 직원에 이르기까지 ‘창조자’가 되지 않으면 이 능선을 넘어갈 수 없다. 역사상 ‘초역사적인’ 창조적 발상으로 파미르 고원을 넘은 고선지의 정복 루트 개척에는 위대한 사고의 밑바탕이 됐다. 한니발, 아틸라, 나폴레옹 등의 공통점도 모두들 불가능하다는 알프스를 넘은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창조해 내지 못하면 모두들 이 능선에서 죽는다. 수많은 모방의 산에 갇혀 죽은 기업들로 기업사는 넘쳐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