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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조2

누르하치, 나는 오랑캐다 1583년 한 젊은이가 명나라 군사들에게 쫓기는 몸으로 백두산에 숨어든다. 얼마 후 그는 의협심이 가득 찬 여진 소년 7명과 의형제를 맺고 13명의 기갑병으로 처음으로 군사를 일으킨다. 비록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13벌의 갑옷 밖에 없었지만, 이는 13명의 창업 동지의 몸을 감싸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거병을 했어도 다른 동지들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게다가 일족들도 외면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자 마저 나타났다. 얼마 지나자 그 밑에는 30여명의 동지들과 수하의 100여명의 부하가 생겨난다. 사나이는 이제 최소한의 자원을 가지고 뜻을 펴고자 일어선다. 때마침 조선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동북아의 세력판도를 급변시켰고, 그는 이 틈을 타 사분오열되어 있던 자기 부족을 통합시켜 나간다. .. 2010. 4. 25.
중국대륙을 M&A한 청태조 누르하치의 경영 비결 겨레의 숨결이 스며있는 광활한 만주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불과 1천 여 년 전에는 ‘천하 경영’을 앞세운 광대한 제국, 고구려가 역사의 중심으로 우뚝 솟았고, 그 후로는 불운한 조국, 발해가 이 땅에서 명멸해 갔다. 빈 땅엔 풀씨가 날아들 듯, 그 후로 이 땅은 영원히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랜 시간 중국의 압제를 받아 온 여진족이 초원의 잡초처럼 무성하게 일어났다. 금(金)에 이어 두 번째로 세운 나라가 청(淸)이다. 여진족의 청은 서쪽으로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명(明)과 맞닿아 있었고, 동남쪽으로는 임진왜란으로 피폐된 조선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청을 세운 이들 여진족은 강대국 틈바구니 숨어 보이지 않게 힘을 축적해 나갔다. 기나긴 굴욕의 세월 끝에 그들은 드디어 창업에 성공하게.. 2010.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