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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전함 디어로지호와 코로나 사태에서 배우는 짧지만 강한 교훈

by 전경일 2020. 3. 24.

1943년 전함 디어로지호()가 독일 잠수함의 어뢰를 맞았다. 파도는 거칠고 바람은 거세게 불어오는 가운데 선원들은 부상을 입은 채 사해에서 가라앉을 듯 위태로운 작은 고무보트에 타고 있었다. 짧은 토론을 거친 끝에 그들은 이렇게 행동했다. “힘센 사람들이 배에 남아 물을 퍼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교대로 뱃전에 매달리자!”

 

이런 협력의 결과 어떻게 됐을까? 결국 모든 선원들이 구조됐다. 처음에 선원들은 전체가 죽지 않으려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짜낼 수 있는 모든 슬기와 모험을 통해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아무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을 굳건히 지킨 것이다. 희생보다 전원구조를 먼저 생각한 이 발상은 놀라운 결과를 빚어낸다. 모두가 구조된 것이다.

 

이 같은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위기 상황에서 선원들은 올바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장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리려 숙고했다.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위험이 다가올 시간과 생존에의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해 빠른 시간 내 최적의 판단을 내렸고, 즉시 행동에 옮겼다. 물론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사태는 제어 불가능한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을 것이다.

 

또한 전혀 다른 시각에서 현실인식을 조합하고 창조적 사고로 난관을 뚫고자 했다.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는 실은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인 경우가 하다하다. 따라서 다양하고, 유연하며, 의지에 가득 찬 접근법은 문제 자체를 무야(無也)시키는 주요 요인이 된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리더와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선원들에게는 인간의 놀라운 힘을 이끌어 내는 전원 일치된 리더십이 있었다. 희생보다 더 강한 것은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이고, 지혜이다. 위기 상황에 접해 그들은 가장 멋진 보트 위의 의사결정체와 실행조직을 만들어 내고 이를 작동시켰다. 이것이 주요 성공요인이 됐다.

 

디어로지호 선원들 이야기는 코로나 사태를 겪는 우리에게 위기 상황에 임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 훌륭한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이 미증유의 사태에 접해 초기의 혼란을 신속히 수습하고 한국이 취한 여러 현명하며 혁신적인 방식은 앞으로 매우 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당연히 이 사태 이후 우리의 국가 운영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게 분명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너무나 성숙하고 훌륭한 시민 의식으로 우리가 짐작해 왔던 선진국의 최상위 선진의식보다도 훨씬 높은 위치에 우리의 시민의식을 헌정해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거라는 자부심이다. 물론 대외적으로 상승된 한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 가치는 수십조 원을 넘어 설 것이다. 한국의 이미지는 일본이 올림픽을 한번이 아니라 두 번 치룬다 해도 그보다 훨씬 더 멋지고 강하게 세계인의 머릿속에 이미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가치를 합친 것 보다 더 중대한 교훈을 지금 우리는 얻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인간적인 이성적 대응과 행동을 수행한 가장 모범적인 인간 행동의 양태를 우리의 시민 사회는 보여주고 있으며, 코로나 방역치료 현장 곳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인 누구도 감히 상상치도 못한 기적을 우리 시민들은 또다시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굳건한 시민의식의 기초 위에 코로나 국면 종결 의지는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위기 국면을 겪으며 점검해 봐야 할 것들도 여실히 수면 위로 드러났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취약점과 맹신이 판치는 비이성적 영역을 똑똑히 분별해 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코로나 이후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자연히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여 보다 나은 대안을 만들어 가는 데 일조하리라고 본다.

 

봄이 지닌 특별한 의미는 매서운 겨울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이렇듯 훌륭하게 이겨내는 우리 자신을 보며 이 땅 산하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봄을 반기지 않을 까닭이란 없다. 바야흐로 승세는 바이러스가 아닌 우리가 움켜쥐게 될 테고, 그에 따라 상황은 호전되기 시작할 테니까.

 

이 코로나 국면 속에서 우리는 보다 증강되고 고양된 우리의 수준에 맞게 세계인 앞에서 또다시 큰일을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해서 이 역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분들을 떠올리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슬픔과 고초를 겪는 속은 쓰라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찬란한 내일을 맞이할 준비로 가슴 벅차 온다. 우리는 희망이다. 전경일 소설가, 인문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