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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돌에서 꽃이 필 때 해야 할 것들

by 전경일 2020. 6. 24.

매일 굳은 것들을 만난다. 어제 먹다 남긴 프라이팬에 더께진 굳은 기름, 지난해 여름 사다 쓰고 남은 굳어버린 수성 페인트, 마개를 잘 닫아 놓지 않아 말라버린 푸른 잉크병 속의 물감, 아침이면 수염을 깎다가 거울에서 발견하게 되는 굳은 중년의 얼굴,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에 올랐을 때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나를 빼닮은 굳어버린 표정의 남자들 안색, 굳은 어깨, 굳은 손, 굳은 대화, 굳은 꿈, 굳은 희망…….

 

나는 돌이었다.

 

한때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젊음을 지나, 결혼하고, 애들을 낳아 키우며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인생의 쓴맛을 어느 만큼 알게 된 중년 나이에 호우에 쓸린 벼포기 같은 나. 매일 매일 찾아오는 일상에 한 번도 ?”라고 제대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굴러오기만 한 돌. 그 돌을 밀어내며 강물은 나를 에워싸다가는 흘러갔다.

 

그리고 이제는 쉰을 훌쩍 넘긴 시기, 그나마 식어가던 용암은 제 모양이란 것도 미처 갖추지 못한 채 굳어버리고 말았다.

꿈에라도 그려본 내 모양이란 게 없었나, 꿈꿨던 대로 모양을 빗을 겨를이 없었던가, 제 모양을 만들기에 게으르기라도 하였던 것일까…….

나다운 것이라곤, 또한 변변하게 내놓을만한 거라곤 어느 하나 번듯하지 않은 짱돌보다 못한 막돌. 그 돌이 내가 보낸 일상이었고, 퇴화한 내 의식이었으며, 패기를 잃은 나의 뒤늦은 의욕이었다. 나란 존재는 이렇게 묻히고 퇴색했으며, 삶의 성취와 멀어져 왔다.

 

나의 실상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써 끝난 건 아닐 테지, 위안하면서.

 

애초에 돌이 될 운명이었다면 넉넉히 부드러워 사람들 손에서 사랑받기라도 해야 했을 텐데, 각이 서고 날이 서 석공조차 다듬기에도 꺼려지는 돌. 어느 담장에 틈새막이라도 쓰이지 못하고 발에나 걷어차이는 돌. 그 돌이 나였다면.

 

처음엔 그럴듯한 그릇이든, 조형물이든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시간은 나를 굳혀 버리고, 나도 모르는 새에 돌 속에 갇힌 나는 자신을 한탄하였다.

왜 되는 일이라곤 없는가?’, ‘왜 이것밖에 되지 않나?’, ‘왜 이 모양 요 꼴인가……

너무 한심해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땅을 칠 노릇이었다.

 

나란 작자의 실상은 시간을 소진한 낭비자이며, 의사결정을 보류한 유예자이며, 꿈을 압살시키고 마음껏 조롱한 비열한이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이룬 듯한 착시 속에서 자위해 온 게 반평의 삶 아니었나. 삶의 드높은 지평에서 나는 스스로 물러서기를 반복해 온 셈이었다. 더 큰 도전을 하지 않음으로써 물결에 밀리는 조각배와도 같이 하구로 흘러내려 갔다.

 

그런 내게 절박한 심정은, 세상의 격변은 삶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임계치였다. 이번엔 정면으로 부딪쳐 끝장내 보라고.

이 같은 각성이 든 것은 매번 찾아오는 전세 만료와 사업 부진과 임대료 상승과 시장 축소 등 현실적 요구가 빚어낸 결과이리라. 특히나 이번에 찾아온 놈은 유달리 다르다. 더 크고, 강하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싸워볼 의지조차 잃게 만든다. 해서 사람들은 두 손 든 채 관망만을 한다.

 

오랜 세월 돌 속에 있던 나는 오히려 삶에 슬기라는 게 조금은 생겨 이렇게 요동치는 시기에는 굳은 신념과 빠른 행동이 판을 바꾸는 전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때가 늦으면 모든 것은 다시 굳어지고 모 한 포기 내릴 땅마저 굳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한다. 틀림없이 끓은 물속의 달걀조차 병아리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마는 시기라는 것을.

 

해서 나는 내 인생에 찾아올 노년의 초입에 이르기 전에 단단한 기초를 놓고자 기존의 나를 부숴 쇄석자갈을 만들고, 콘크리트 역암(礫巖·자갈돌)이 되어 나를 굳게 놓으리라 작심한다.

주기적으로 밀어닥치는 역경에 늘 허겁지겁하였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이 도전의 시대를 기회로 삼아 나의 모든 상태를 한 차원 높여 놓기로 결의했다. 더는 누군가 흔들어대도 따라 흔들리거나 추락하지 않기로 굳게.

 

어제의 무기력과 실용에서 눈을 뗀 삶을 끝장내지 않는 한 내게 쓸만한 장년이란 게 찾아오고, 품격있는 노년이 기다리고 있을까?

쩨쩨하게 술값 계산을 할 때마다 민기적거리는 중년이 될 것인가? 막걸리병 들고 평일에도 북한산 찾는 장년이 될 것인가? 지하철을 타고 뺑뺑이 도는 노년이 될 것인가……?

가장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들에 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해답을 구하여야 한다. 강한 반석처럼 결심을 굳혀야 한다.

 

만약 한없이 누추한 생활이 나를 지배하도록 허용한다면 나의 삶은 총체적으로 허물어지고, 산산이 조각난 파편이 되어 버릴 것이다. 따라서 시퍼런 칼끝으로 허벅지를 찌르듯, 각성의 날을 세우는 시기가 지금(NOW)’인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것은 공유경제의 시대 내가 이루려는 일의 절반은 온전히 내 몫의 자본과 노력만을 들어가는 게 아니라 협력자들의 노력과 시간도 빌려 와 함게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러니 마다할 리 없다.

 

돌이 된 시간, 돌이 된 표정, 돌이 된 퇴행적 사고, 돌이 되고 만 경제적 수단…… 이 모든 것에서 불꽃 이는 꽃을 피워 내리리라. 떨치고 나아가는 도전은 나를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기품 가득한 삶으로 인도해 주리리. 전반전보다 더 화려하고 강렬한 후반전이 되도록 내 인생의 모든 미답의 영토에 번영의 씨앗을 뿌리라라. 인생 중반 이후는 알곡으로 채운 드높은 가을을 맞이하리니. 삶에 주어진 뚜렷한 소명을 아는 순간은 돌에서 눈부신 꽃이 피어난다.

 

감사, 격려, 도전, 승리하는 나와 우리의 새 삶을 위하여 축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