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대부분 제도적인 것에서 나왔다. 따라서 문제점이 보인 이상 세종은 이를 개선하고자 신속하게 지휘봉을 잡아 들었다.
여러 현안 중에서도 토지제도를 중심으로 한 농정 개혁은 조세 기준을 명확히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했다. 더구나 세종이 이 문제를 핵심적으로 보게 된 배경에는 그것이 백성들의 ‘먹거리’ 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고, 그것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권력이 개입하며 탈법이 횡행할 여지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생 조선에도 이런 현상은 빈번하게 나타났고, 고려 말에는 관리들의 부정이 극에 달했을 정도였다.
따라서 세종은 우선적으로 농정기술을 보급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낮은 생산성 하에서는 결코 세종이 꿈꾸던 ‘풍평(豊平)’과 같은 풍요로운 세상을 기대할 수 없었고, 만일 그런 상태에서도 특정분야에 풍요가 집중된다면, 그것은 바로 분배상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세종은 고려조의 낮은 생산성이 국가 경영권 약화와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취지에서 세종은 국가 재정을 생산성 향상으로 개척해 나가고자 했다. 따라서 조세 정의는 핵심 사안이었다.
[과세 기준이 뭐냐? 이를 바로 하라]
조세정의를 구현하면서도 동시에 투자역량을 개선시키기 위해 세종은 새로운 세제(안)으로 ‘공법(貢法)’을 제시했다. 즉,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향상되고, 자연 조건에 따라 풍흉이 달라짐으로, 이를 반영해 세제를 좀 더 과학적이고, 형평에 맞게 바꿀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세종 11년에 편찬된 『농사직설』에서 세종은 공법(貢法)을 제시했다. 이 법은 그 후 수많은 논의와 실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론조사(리서치), 찬반 양론의 정책 대결, 실험적 실시를 통해 본격적인 실행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공법은 세종조의 정책 입안 및 집행에 있어 민주성과 효율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예다. 또한, 동시에 국가 CEO에 의한 일방적 지시가 아닌 전국민적 합의하에 정책이 집행되는 모범적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리하여 세종은 논밭의 품질에 따라 기준을 세분화시키고, 아홉 등급으로 나눠 이를 새로운 세법에 반영하고자 했다. 종전처럼 관리가 주관적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법 - 이 방법을‘손실답험법(損實踏驗法)’이라고 한다. - 이 아닌, 논밭의 등급과 풍흉에 따라 과세기준단위인 ‘결(結)’의 면적을 상이하게 조정해 적용하는 것이었다. 또 무리한 세금 징수를 막기 위해 결당 세율을 종전에 1/10에서 1/20으로 하향조정했다. 그 결과 과세 대상인 결이 증가했다. 이는 국가의 재정을 더욱 건실하게 해주었고, 세종시대 경영 원칙인 민생 안정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절세는 어느 시대나 인지상정]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적게 내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공법 실시의 찬반양론은 새로운 세법의 적용을 받을 때, 세액이 종전보다 많아지거나 적어지는 것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 질 수 있었다. 공법 실시를 두고 입장이 갈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세종은 이와 같이 조세 정의를 구현함으로써 일석이조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경제발전을 위한 투자역량의 증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적인 정책은 상호 연계되고 확산돼 세종시대 문화적 대 르네상스의 주요한 경제적 원동력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잉여 생산물은 바로 문화 창달의 기폭제가 된다. 배에서 쪼르르 소리가 나는데 전국민이 가무를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로 이 같이 단순한 이치를 세종은 국가 CEO로서 실천했던 것이다.
[머리를 써서 생산성을 높여라]
세종은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농부들을 관찰했다. 그토록 뼈 빠지게 일하고도, 먹고 사는 문제에 평생을 허덕거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 농민들은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 세종은 그들이 ‘자신의 백성’이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여러 문제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농부들은 효율적으로 작물을 재배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작물의 이랑 사이에 다른 작물을 심는 방식( 이것을 ‘간종법(間種法)’이라고 한다.)을 그 때까지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 사실 지금은 어느 농부나 다 이런 방식으로 농작물을 심고 있다.- 즉, 옥수수 밭 이랑 사이에 고구마를 심으면 수확을 더 거둘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종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농사가 그렇듯이 그는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도 한 이랑에 두 농작물을 심어야 수확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세종이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경작하는 지혜 경영의 가장 일반적인 예였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