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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나에게 묻는다

머리카락을 발견하다

by 전경일 2009. 2. 6.

머리카락을 발견하다

“세상 모든 건 다 때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는 것. 하지만 그땐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납기는 꼭 맞춰야 해! 기한 지나면 다 끝장이라구!”

사회에 나와 첫 직장에서 상사한데 듣게 된 얘기도 ‘때’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때, 내가 다니던 회사는 대기업이었지만 통신 장비를 납품하는 계약상으로 보면 분명히 ‘을’인 회사였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창업을 못할 것 같아.”

오랬 동안 다니던 회사를 나오며 아내한테 한 얘기다. 아내는 묵묵히 응원하며 나를 따라주었고, 나는 조그마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하고자 합니다.’

이사직을 사임하면서 내가 내민 사직서였다. 사직서를 쓸 때, 나는 이제 그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는 낡아가고 싶지 않았다.

 

“타이밍을 놓치면 마케팅 코스트가 10배 더 들어가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회사에 입사해 내가 사업 임원으로 있으면서 여러번 되뇌였던 말이다. 하지만, 세상 일은 늘 올바른 선택만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때... 

내 인생에 ‘그 때’는 언제이었는가? 살며 수많은 ‘때’와 만나왔으나, 대부분은 사회적인 시간에 불과한 때였다. 거기엔 한 개인에게 너무나 중요한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앞으로 어떤 때를 만나게 될런지 모른다. 사회생활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때를 조만간 만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를 만나거나, 어뻐면 불행하면 병들어 누워있을 때를 만날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원히 먼 길을 가야할 때? 아마... 내 앞에는 수많은 때들이 머뭇거리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혹은, 어떤 때에는 잔인하게, 어떤 때에는 비정하게, 어떤 때에는 남들에게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행운아라면 보다 럭키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마흔이란 시간을 살아왔지만, 때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나는 나의 시간의 때를 내 나름의 가치와 소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요즘 와서 부쩍 예전의 시간과 지금의 때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시간을 보게 된다. 빠르다. 너무 빠르게 머리칼이 탈색되고, 얼굴이 푸석푸석해지며, 피부는 탄력을 잃어 가고 있다. 나는 늙어 가는 것이다. 안단테로 왔다가 000로 가는 내 젊음. 나는 늙음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그런 며칠 전, 거울을 보다가 내 흰 머리끝에서 검은 머리가 솟아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기랄! 질겁했다. 나는 회춘하는 건가?

내 인생의 첫날은 이런 식으로 오는 건가? 웃다 못해 나자빠질뻔한 몸을 추스르고 나서 나는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동시에 겹쳐지는 묘한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내 나이가 벌써 이럴 때는 아니지...

그러면서도 기분 좋은 날처럼, 그날, 나는 첫날처럼 눈부신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