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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나에게 묻는다

촌지를 받은 선생님

by 전경일 2009. 2. 17.

촌지


사범대를 나와 중학교 선생님이 된 내 친구는 처음으로 발령받은 학교에서 촌지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받을까 말까. 온갖 생각이 그 앞에 내밀어진 봉투 앞에서 해일처럼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 전광석화와 같이 수만 가지 생각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튀어 오르는지, 일시에 터져 나오더라고 그는 말했다. 거절을 할까, 말까 하면서도 당장 아쉬움이 그를 유혹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작은 것에의 흔들림. 그 다음의 무너짐. 애써 웃는 어색한 웃음...


첫 촌지의 추억을 갖고 있는 친구는 끝내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나는 몹시 궁금했지만, 진실이 묻혀버릴까 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안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 부모님 생각이 나더라고 그는 말했다. 얼마 전 형제들끼리 모여 연로하신 부모님의 한약 값을 보태기로 한 가족회의가 떠오르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봉투를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침을 삼켰다. 학부모를 보내고, 잠시 교무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직원 화장실을 찾았다고 한다. 봉투를 열자, 거기에는 새파란 만 원권이 스무 여장이 들어있더라는 것. 뛰는 가슴을 누르고 그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하루해를 너무나 길게 보냈다고 했다.


돈은 받았으되, 마음은 불편함으로 가득 찼고, 마음의 불편함은 형제들 앞에 거리낌 없이 내 놓을 수 있는 약값의 든든함으로 양해되었고, 무마되었다고 한다. 그러며 이 돈은 정말이지 단순한 선물에 불과할 뿐이다. 결코 뇌물이 아니라는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자기 합리화란 그런 것이지.’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별로 두근거리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촌지다. 한마디의 마음의 표현일 뿐이지... 


며칠 후, 친구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반 아이의 아버지가 그만 차에 치여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홀아버지 수발로 얘는 학교에 계속 빠졌다.  친구는 수업을 파하고 집에 보관해 둔 촌지 봉투를 들고, 병원을 찾아가 봉투 채 애 아버지 앞에 내 놓았다고 한다. (순진한 녀석... 그래서 녀석 별명이 순둥이다.)


친구는 빨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속으로 민망할 게 분명했다.


“나는 뭐 그렇게 올바른 선생은 아닌가 봐. 아무튼 받았으니까. 아이 아버지께 전달하고 나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하더군. 내 간뎅이가 콩알만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봉투였던 셈이지. 우리야 그냥 콩알 인생으로 살아가야지 뭐.”


이렇게 얘기한 친구는 처음으로 받게 된 촌지봉투는 결국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돌아갔다며 말을 끝맺었다. (싱거운 녀석.)


친구처럼, 아마 이 나라의 선생님들은 간뎅이가 더 작아져야 할런지 모른다. 몰론, 마음이 더 말랑말랑 해야 할 건 두말 할 나위없다. 이렇게 촌지를 아낌없이 쓰는 선생님이 있는 한, 우리 애들을 맡기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촌지. 그래, 겨우 손가락 한 마디만한 마음일 뿐이지. 그래서 촌지지.

정말이지, 촌지 앞에선 어떤 심정이 들까?

나는 뭐든 다 이해할 것 같았다.   

ⓒ전경일,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