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경영/나에게 묻는다

친구 장례식에 가다

by 전경일 2009. 2. 6.

친구 장례식에 가다


‘아직 죽어서는 안 될 친군데...’

정말이지 아직 죽어서는 안되는 친구가 죽었다. 세상 사는데 선하고, 남 좋은 일 많이 하고, 늘 서글서글하기만 하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 꼬마인 애 둘에 이제 삼십대 후반인 부인까지 남겨놓고... 이러면은 안되는데. 운명이 이렇게 가혹하고 모질면 안되는데 하고 나는 넋을 놓았다.

너무나 어이없는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장례식장 한편에서 혼자 술을 따랐다. 술에 취할수록 내 기억은 이리저리 헤매었지만, 나는 또렷하게 친구 부인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 표정 하나만은 잊을 수 없다. 울음, 절망, 깜깜한 앞날, 애들의 입, 황당한 친구처지, 남들의 이목과 눈빛, 빛 빛...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제는 사라진 것이다.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는, 다시는 같이 누워 대화를 하거나, 서로의 살을 덥히고, 쓰린 가슴을 어루만지는 그런 남편이 없어진 것이다. 눈물은 이럴 때 흐르라고 있었는가? 너무 울어 이제는 목소리만 꺼이 꺼이 하는 친구 부인 옆에서 애들은 울다 마른 때국물 얼굴로 딱지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

“우리 아빠 온 댔어~”

딱지놀이를 하던 아이가 먼 친척벌 되는 형아 한데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왈깍 눈물을 쏟았다. 제기랄... 세상은 왜 이리 공평하지 않은가! 선한 사람들은 왜 이리 쉽게 떠나는가? 오래전 고향 친구라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장례식장에서 나는 친구를 보내고 혼자 남아 하염없이 술잔을 따랐다. 세상은 뱅뱅 돌다가도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어지럼증 나기 전에 내려놓아 주어야 하는데, 왜 운명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둥지부터 터는가.

친구의 죽음. 가장 가까이 있던 친구의 첫 죽음을 목격하면서, 나는 죽음이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친구의 죽음은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나 나에겐 처음으로 다가올 것이다. 언젠가 내게 닥쳐올 죽음도 이런 것이리라. 내 주변에서 이렇게 죽어가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그것이 나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가까이 하던 친구의 죽음을 본 내 나이는 그와 동갑이었다.

 

친구의 죽음을 통해 내가 다시 태어난 날, 나는 과거의 나를 죽였다. 그날은 내가 내 인생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첫날이었다.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세상의 풍파와 싸우며, 밀어내 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살아 있다는 것을...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눈부신 깨달음을 맞이했다. 

ⓒ전경일,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