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장경영/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회사 내 작은 영웅들

by 전경일 2009. 2. 13.

회사 내 작은 영웅들


의류관련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권 인식 차장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장탄식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국내 모기업 총수가 천재급 인재의 중요성을 부르짖은 다음, 자기네처럼 오순도순 모여 가족처럼 운영해야만 하는 중소기업에서조차 덩달아  사장이 핵심인재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새로운 입사 기준에 따라 특별히 채용된 사람들은 해외 물깨나 먹은 사람들이라고 그는 귀뜸했다. 대부분은 현장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식이라고, 그런 게 맘에 안든다고 그는 참았던 불만을 터뜨렸다. 새로 입사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든 게 잘못되었고, 개선되어야 할 사항으로 보이는가 보다고 그는 끝내 불만을 참지 못했다.


그들 말마따나 생산과 관련된 일이니만큼 현장의 업무가 계량화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거기서 습득된 오랜 지식은 단순히 숫자로 표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도 늘 같은 처방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20년 근속의 고참간부들이 견디다 못해 경쟁사로 넘어가게 되면서 회사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후배 사원들이 작업을 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경쟁사로 이직한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는 것. 그것이 그 회사 인사부서에 흘러들어가자 그 회사에서는 상대 회사에 엄중 항의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모두 핵심인재론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통 직원들의 가치를 간과한데서 나온 행태라는 게 권 차장의 주장이었다. 얘길 듣다보니 일견 타당성 있는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선무당이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는 인사 정책상의 균형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계기였다. 또한 기업 성공을 위해 정말 관심 가져야할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 계기였다.


기업에서 후원해야 할 직원은 누구일까? 보통의 직원들은 정말 가치실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조직이 원하는 바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사람들이며, 늘 피교육 대상자이기만 한가? 그들은 찬밥에 불과한 사람들일까? 많은 경우, 현실은 정반대의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많은 성공적인 기업가들이 겪은 경험에 의하면, 조직을 살찌우는 직원은 과분할 정도로 똑똑한 직원도, 인사고과에서 늘 슈퍼A만 받는 소수의 핵심인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늘 부분적일 뿐이라는 것. 대부분 조직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든 회사가 창출해 내고자 하는 경영 전반을 다 이해하고, 대변해 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어느 사업도 현장에 깊숙이 파고들어 계속 어느 영역을 파고 들 때 소기의 목적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결국엔 누가 인내 하며 머리를 좀 더 쓰냐는 문제라는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 기업사는 직원들의 지나친 똑똑함이 회사를 망치는 경우를 수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명 기업인들의 그칠 줄 모르는 금융 스캔들, 회계장부 조작, 내부자 거래 혐의 등은 바로 소수의 똑똑한 인재들이 주도하는 비밀스런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기업에서 오랫동안 연구 개발한 핵심 기술을 외국 경쟁사에 몇 십억씩 받고 팔아넘기는 직원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 그 회사에서는 잘 나가는 소수의 인재들인 셈이다. 반도체 유출 사건으로 유명했던 S사의 이전 사례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역량 있는 소위 스타급 인재들을 싸잡아 하는 말은 아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조직은 균형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최근 들어 부쩍 보통의 인재들을 키우고 지키려는 노력보다 스타급 인재들에 연연하는 것들이 강세를 떨치고 있는 걸까? 거기에는 ‘스타 1명=1만명’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외견상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경영에 나타나는 미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어느 시대나 기업의 힘은 특별함과 보편성의 절충이다. 보통의 직원들이 행하는 활동에 앞서 스타급 인재들이 중요한 기여를 하는 건 사실이다. 중요한 일에서 돌파구를 열어젖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문제는 그들의 역할이 일단은 그 정도에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전지전능한 능력평가를 내릴 때 조직에선 비극이 시작된다. 예컨대, L사의 핵심 두뇌들은 놀라운 개발 성과를 내고 있다. 학력도 높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상품으로 이어지는 단계에는 수많은 고졸 생산직 직원들의 참여가 있다. 이들은 단순하기만 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기술을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생산 과정에서 고객 접점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판매직 사원도 마찬가지다. 박사급 인력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다. 


어느 기업이든 기업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지식이나 기술 자체에 리더십이 있는 건 아니다. 나아가 사업의 본질도 사람의 일반적인 요구를 수렴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런 이유로 기업 성공 요인은 성공적인 노력과 꾸준함의 결과다. 한순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일어난 무수히 많은 회사들을 보라. 회사 내 개발품이 동시에 수많은 잠재적 경쟁자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이 동시 출시하며 시장이 교란되는 것을 보라. 이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집중시켜야 할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통 직원들은 오랜 시간 기업의 역사를 만들고, 사풍을 다듬으며, 사업의 노하우과 고객과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회사 내 주요한 재원이 된다. 그들의 외견상 밋밋해 보이는 이면에는 기업이 정작 필요로 하는 근면과 성실, 그리고 직장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꾸준함이 함께 하고 있다. 이 점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조직의 경쟁력이다. 장기적인 역량에 해당된다. 만일 보통의, 평범한 직원들에게서 이런 로열티를 찾지 못한다면, 회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을 파악하지 못한다.


현장으로 달려가 보라. 여전히 조직 내 찬밥이지만, 상품을 만들어 내고,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실제로 고객을 확대재생산해 내는 직원들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기업에 힘을 주는 작은 영웅들이다. 회사가 이런 보통의 인재들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그 기업은 성공할 것이다. ‘보는 눈’은 기업의 핵심 경쟁력임에 틀림없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