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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나에게 묻는다

몰래 담배를 피웠다

by 전경일 2009. 5. 28.

어렸을 때 포천 사는 큰 이모네 집에 갔었다.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이었던가. 이모는 6.25 동란 중에 과부가 되셨다. 꽃다운 스무 살, 그 때 이복자를 가졌다. 개가도 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사셨다. 이모네 집에는 논이 꽤 컸다. 일하는 일꾼을 두었을 정도였으니까.

영섭이라는 친구였던가? 아무튼,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큰 이모는 군수품 장사를 하셨다. 시댁에서 물려받는 토지와 당신이 평생 가꾸며 벌은 돈을 조금씩 모아 근처에 논밭을 사셨다. 무슨 일인지 작은 형과 나는 어머니와 함께 그 해 여름 이모네 집에 갔었다.


그날 밤, 우리는 일꾼 영섭이가 꼬득여 <화랑>담배를 피웠다. 이모가 피엑스(PX)에서 빼온 게 분명했다. 영섭이는 중학생은 되어야 할 나이였지만, 학교 문턱도 못간 친구였다. 집안의 온갖 잔무를 도우며, 밥을 얻어먹고 있었다. 쇠죽을 끓이는 일, 고추 심는 일, 가마니 터는 일 등. 물론, 노임은 받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노임을 챙겨 야간도주를 했다고 했으니까.


처음으로 피워 문 담배는 군불 때는 냄새와 똑 같았다. 목이 칼칼했다. 그 때 내 기억으로 어른들은 이게 뭐라고 피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담배를 나는 그렇게 접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멋모르고 말이다.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우게 됐던 것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부터였다. 그 무렵 담배는 내게 하나의 상징물이었다. '담배=고민=성인' 내지는 '담배=멋'이라는 등식이었다. 한편으로 담배를 즐기는 걸 성인이 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 후 18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


그런 담배를 몇 해 전 끊어 버렸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컸던 것은, 나의 잘못된 믿음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 때문이었다. 담배와 고민과 성인은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 그릇된 사상에서 나는 벗어났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아내의 질책이었다. 담배 하나 끊지 못하면, 의지박약이다.


그때의 기억이 새로운 것은, 나는 담배를 통해 잘못된 믿음을 줄곧 지켜왔다는 것이다. 그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엔 이런 잘못된 믿음, 잘못된 습관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잘못된 믿음으로 우리 삶을 해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마찬가지로 나의 잘못된 믿음이 지금의 나를 규정하고, 나의 미래까지 제어하려 든다면, 나는 용기 있게 과거의 잘못된 믿음이나 습관 따위와 결별해야 하리라. 그럴 때 인생은 자신의 기대를 초월한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직원들에게 담배를 한가치 빌려 태웠다.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무엇을 하나?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뿜어내는 동안 나는 이 지독한 니코틴만큼이나, 여전히 내게 잠복해 있는 불안한 고용 환경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작스런 충격 앞에서 담배는 조그마한 위안은 되었을까?

문득, 어릴 때 내게 담배를 가르켜 준 영섭이가 생각났다. 그는 여전히 담배를 태우며, 숨 죽인 채, 미지의 세계로 도망을 치려고 궁리하고 있을까? 그는 무엇을 동경했을까?   


경호원의 거짓 진술로 드러났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위에서 담배를 찾고, 어제 공개된 고인의 생전 사진에 담배를 피워 물던 장면이 보인다. 담배를 피워 물며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 것을 알아 차린다. ⓒ전경일, <나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