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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경영/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직장생활은 자기 수양과정

by 전경일 2010. 3. 18.

오래 전, 나의 상사 한분은 직장을 가리켜, “절간이 따로 없네.”라는 말로 정의했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 얘기일터인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심장(深長)해서 잊지 않고 지금도 간혹 떠올려 보곤 한다. 남들과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 회사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다. 경쟁은 건전한 발전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그로 인해 불필요한 무효경쟁을 양산해 내기도 하고, 또 인성이 피폐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모적 갈등은 직원들을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만들고, 서로간의 인격을 좀 먹게 할 수 있다. 인간적이기보다는 무망한 야망에 휩싸이게 하는 게 적극적인 자세로 오인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엔 조금은 야비해 져야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걸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가? 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끝까지 가는 경우란 없다. 결국엔 제 마음을 다스려 남을 이끌 힘을 얻을 때,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이다.

정해진 목표를 놓고 남보다 나아지려는 욕망을 가지게 되는 곳이 직장이다. 회사가 가진 자원은 물론이고, 자신이 지닌 자원조차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곳이 직장이다. 아무래도 심적 고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도 때론 절간에 들어선 수도승처럼 심신을 다스려야 하는 곳이 직장이다.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격적 수양을 쌓게 될지, 그저 단순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미건조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갈지 결정된다. 누구에게나 수양의 환경은 주어졌으나, 누구는 그걸 활용하고, 누구는 주말에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마저도 적잖은 관심과 노력이 들어니 대단한 일이기는 하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훈육할 수 있다면, 그만큼 훌륭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남들이 7급수 같은 물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도, 어느 곳에서는 자신과 세상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직원들이 있기에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고, 직장은 메마르지 않는다. 희망이 보인다.

직장 내 보통 인재들은 인성 면에서 어떨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특별히 훈련을 받은 사람은 아니어도 내면의 곧음은 드러난다. 사람에 부댖기며 어느 한 축이 무너진 데가 있어도 살며 가다듬어 온 정서는 표출된다. 세상일은 파도와 같아서 아무리 거친 돌의 표면이라도 매끄러운 조약돌로 빚어내곤 한다. 만일, 보편적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보다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뭐 특별하지 않기에 사람들과 어울리며 기울인 심적 훈련은 보통의 사람들을 훌륭한 인격적 존재로 거듭나겠금 만들어 주곤 한다. 직장은 그런 의미에서 결코 우리 삶에 작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삶에 전반적인 구성요소가 된다.

내 상사 한분은 내가 보기에도 풍부하게 완성된 인격을 갖추신 분이었다. 그 분과 종종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훌륭한 인격을 갖춘 걸 보는 것 같아 많은 점에서 배우고 있다고 말하니까, 그 분은 자신에게는 인격이니 하는 말들이 과분한 얘기라며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그 분은 당신 스스로 한사코 그 같은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평은 하나 같이 저절로 고개를 수그리게 되는 분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 분 말에 의하면, 직장 생활 30년 동안 철없던 나이를 보내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고 한다. 내가 왜 진작에 이걸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후로 주변의 힘들고 고된 상황을 외면하는 일이 없었다. 후배 사원들의 어려움에 몸소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준 것은 물론, 상처를 한 동료와는 밤새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런 이유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주례를 서게 되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말이 딱 맞지. 그러면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사람 있겠나? 사람은 다 같은 걸, 누구나 자기가 존귀하게 여겨지길 바라지. 나부터도 안그렇겠나? 그렇게 대하면 되는 거네. 직원들에게도, 고객들에게도. 이게 가장 건강한 관계지...”

평소의 과묵함 그대로 상사는 자신이 평생 지켜 온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피력해 주었다. 그 분은 나와는 부서가 달랐는데, 언제나 공장설비에 대해 가장 꼼꼼하게 챙겼다. 그 분이 맡은 업무에서 사고가 난 경우는 단 한 차례, 십 여년 전, 회사에 악의를 품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고의적인 방화사건 말고는 없었다. 새벽 4시면 “특별히 아침에 어디 갈 데가 없어서” 회사에 출근한다는 그 분은 출퇴근 시간이 구분 없는 일과를 보냈다. 출근 도장이 필요할리도 없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온갖 배고픔을 겪어 본 그 분은 시골 농부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논물보러 나가듯 회사에 나와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30년 정근상을 받고 퇴직을 하던 날, 그 분은 떨리는 음성으로 단상에 올랐다.

“저는 배운 게 없어,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살고, 이 회사가 내 회사다 하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회사 덕분에 아들 둘과 딸 둘을 다 키워 성가시켰고, 이제는 머리가 허애져 손자들 곁으로 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가 그리울 것입니다. 다들 보고 싶고, 내 손 때가 묻은 기구들이 보고 싶어질 겁니다. 누구보다 모자란 저였지만, 그런 모자람 때문에 묵묵히 일하다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되었네요. 늘 참고, 한 발 양보해 주세요. 직장 생활은 그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퇴임사가 끝나자, 남아 있는 동료직원들은 전원 기립해 박수를 쳐 주었다. 회사 사랑을 그 분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다들 느낄 수 있었다. 각자 자기 일터로 돌아가는 직원들의 마음엔 뭔가 흐뭇하고, 정겨우며, 정말 다른 종류의 뭉클한 감동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상사를 떠나 인생의 선배로부터 듣는 진정한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기업엔 바로 이 같은 분들이 필요하다. 바쁘게 머리를 굴려도 정작엔 가치를 창조해 내는 것은 다른데 있다. 그것은 자기소임이라는 걸 묵묵히, 돌쇠처럼 하는 것이다. 회사의 인적 재산은 보이지 않지만, 바로 이런 데 있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원칙이 회사를 지키는 것이다. ⓒ전경일, <평범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