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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

5세기, 그때 둥북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by 전경일 2010. 3. 24.

4세기 전반, 동북아를 둘러싼 각국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루어진다. 위기와 기회가 병존하고, 5호 16국이 각국의 득실에 따라 역학 관계가 성립되었다. 이것이 국제 정치의 본질이었다. 실익은 그 어떤 대의보다도 중요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생존과 멸망의 선택이 놓여있던 극도로 첨예한 대립과 우호, 경쟁과 협력의 국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 시기 동북아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예컨대, 동진(東晋)과 연(燕)은 우호관계를 맺었고, 중간의 후조(後趙)는 고구려와 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게 된다. 반면, 고구려는 연을 적대시하는 후조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한편으로 동진과 동시교섭 정책을 펼친다. 이런 와중에 후조와 연, 연과 고구려는 군사적 충돌을 벌이고 군사적 지원을 하는 등 삼각관계는 복잡하기만 했다. 서로가 살고 번영하기 위해 타 세력을 붙잡아 매고, 소멸시켜버리고자 하는 팽창주의의 일환이었다.

이런 국제 정세는 동북아 국가들이 철저하게 자국의 이해를 중심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철저히 자국의 이해를 중심으로 끌고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국제 정치에 반영된 것이다. 마치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광개토태왕이 즉위할 무렵 국제정세는 이렇듯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전진이 멸망한 이후 성립된 후진, 후연, 서진, 후량 등이 중국의 북방과 서방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고, 남방의 맹주인 동진은 꾸준히 영토를 확장하며 신진세력들과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국제 정세를 한반도에도 그대로 반영돼, 5세기에 접어들면서 삼국 간에는 전쟁과 화친이라는 양 국면이 동시 진행된다. 백제는 산동과 요서 지역을 차지하며 한편으로 가야와 왜를 끌어들여 연합세력을 형성해 고구려에 대항한다. 마한을 병합한 후 백제는 남부지역의 해양 능력을 보강하여 낙랑 대방이 전담했던 대중(對中)교역을 대신 차지하고, 일본 열도와 한반도 중부이남, 그리고 중국지역을 잇는 광범위한 교역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백제의 팽창을 보여주며, 나아가 국세가 널리 뻗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런 목적으로 백제는 황해중부의 해상권을 완전 장악하기 위해 북방진출을 꾀한다. 특히 근초고왕 때 이르러 보다 강하게 백제의 북방진출 의지는 표출되는데, 이러한 백제의 북방진출 의도는 남방진출을 꾀하는 고구려와 정면충돌하는 상황을 빚게 된다. 고구려는 한강북부를 선제공격했으나 패하고, 오히려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사망하는 실로 처참한 참패를 겪게 된다. 이후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양국 간 무력 충돌은 계속된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대결국면이 전개된 것이다. 한강은 이처럼 전략적 요충지이자, 삼국 팽창의 교두보가 되는 거점이었다.

한편, 신라는 강성해진 고구려에 조공을 하면서 백제의 연합세력을 경계한다. 무력을 통한 교류가 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다양한 화친적 교류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는 결국 삼국이 단일한 통일 국가로 가기 위한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보여준다. 삼국 중 고구려는 대내적으로 중앙집권을 이뤄 국가다운 통치 체제를 확립한다. 나아가 동북아의 주역이 되고자 한다. 이후 국제 정세는 고구려의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활약상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는 고구려가 국제무대에서 막강한 비중을 차지하며 대약진을 시작했다는 것, 즉 고구려 대번영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국제적 역학관계가 그렇듯 어느 요인은 다른 요인에 영향을 미친다. 고구려 대 활약의 환경적 요소는 중국이 5호 16국으로 분열되어 있는 국제정세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 즉 어느 국가나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요인이 친화적으로 작용하며 내재된 역량이 더욱 힘을 발휘할 때 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 무렵 고구려가 처한 환경이 그랬다.

중국의 분열은 고구려 성장의 밑받침이 된다. 하지만 환경적 요인만이 아닌, 고구려 확장의 주요 요소는 다른 데 있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예리하게 통찰하고 내부적 역량을 키워 국운 융성의 전기로 삼은 바로 그 중심축에는 광개토태왕이 있었던 것이다. 태왕은 동북아에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신속히 행동에 옮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작게 보아 압록강 중류유역에서 거친 땅을 기반으로 보잘 것 없이 출발한 고구려가 이후 드넓은 영토를 확장해 가며 천지사방으로 뻗어 가는 대제국이 된 데에는 태왕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결국 역사는 환경과 그 환경을 해석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인적 요소, 즉 리더의 역량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경일, <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