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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

힘과 국제관계의 상관성이 글로벌화를 촉진하다

by 전경일 2010. 3. 30.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과 다양한 문화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광개토태왕의 경영의 특징은 개별성이 아니라 상호관련성에 집중된다. 바야흐로 제국적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국토의 확장과 함께 고구려는 국제성을 강화시켜 나간다. 나아가 글로벌화의 중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낸다. 고구려가 지닌 국제적 발상은 스텝지역을 비롯한 다양한 종족과 문화를 연결하고 아우르는 확장성의 결과였다.

국토가 팽창됨에 따라 다종(多種)과 이기(異)의 문화권과의 교류가 더욱 가속화되며 제국다운 면모를 지니게 된 것이다. 예컨대, 고구려는 전통적으로 농업정착문화권에 있는 한족과 이에 대립하는 유목문화권의 흉노(匈奴)·선비(鮮卑)·유연(柔然)·돌궐(突厥)·거란(契丹)과 같은 제(諸)스텝세력, 나아가 동북만주에 산재하며 시대에 따라 달라 불리던 숙신(肅愼)·읍루(挹婁)·물길(勿吉)·말갈(靺鞨) 같은 부차적 스텝세력과 부단히 접촉하면서 그들의 다기한 문화와 교류할 수 있었다. 나아가 동북아가 처한 변화의 한 가운데 서서 오히려 변화를 주도하며 자체의 우월한 군사력으로 화전양면(和戰兩面)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유지해 나갔다. 힘없이는 결코 이뤄 낼 수 없는 중추적 역할이었던 셈이다.

흔히 유목제국의 성립사에서 애기하는 바처럼, “유목사회와 농경사회의 중간지대인 변경지역에서 발흥하여, 양측의 사회·정치구조를 숙지하고 있는 세력이 유목제국을 건설한다.”는 주장은 고구려를 이해하는 데에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실제로 고구려가 지배하던 땅에서 훗날 누르하치의 만주족 청(淸)이 발흥하게 되는데, 이들의 강력한 경쟁력 중 하나가 바로 농경정착민인 한족과 유목민 사이에서 양쪽 모두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환경적 조건 때문이었다. 상황의 유·불리를 알고 선별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며 강화해 나갔던 것이다.

이는 양측의 강점을 경쟁력으로 수용하고, 상대의 약점을 잘 알기에 이를 공략 포인트로 삼은 것을 뜻한다. 고구려가 처한 이런 지정학적 위치는 제국의 다양한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크게 일조해 국력 신장에 따라 글로벌화가 가속화 되었다. 또 이런 요인이 선순환 작용을 일으키며 국력을 가일층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바야흐로 제국 경영의 선순환적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고구려의 발전과정은 오늘날 많은 선진적인 기업, 즉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글로벌 기업의 활동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불리한 조건을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시키고, 기반 기술이나 상품을 개발해 이를 다국적 형태로 전 세계에 확대해 나가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글로벌 시장 창출은 기업 위상을 제고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신·구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영역을 접합함으로써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지점은 늘 소요가 발생하지만, 한편으로 먹이가 풍부해 다양한 어종들이 모여든다. 고구려가 처해 있던 지정학적 여건이 바로 그랬다. 동북아 패권의 강자들이 명멸하며 시차적으로 출몰하는 다이내믹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 태왕의 고구려가 있었다.
ⓒ전경일, <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