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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

고구려는 전사들의 국가

by 전경일 2010. 3. 26.

고구려는 주지하다시피 처음부터 강대국으로 창업된 게 아니었다. 경제적 기반도 열악하기만 했다. 거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구려는 출발부터 전사국가(戰士國家)를 지향했다. 군사력으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팽창책은 국초부터 일관된 정책이었다. 이는 이후 고구려가 환경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힘으로 주변 세력을 통합하고 지배해 나가는 방식이 된다. 철저하게 힘에 의한 정치, 힘에 의한 균형, 힘에 의한 확장책을 꾀함으로써 국세를 떨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의 발전과정에는 대내외적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 즉, 환경이 전형적인 전제적 군사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배경이 되는 셈이다. 고구려가 창업 이래 군사편제와 군사역량을 강화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나아가 온 국민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나왔다. 이 같은 군사적 팽창정책은 외부의 집요한 위협을 몰아내고 내부를 통합하는 계기가 된다. 나아가 중앙집권을 이뤄내는 근거가 된다. 즉, 힘과 방향을 한곳으로 모아 벡터, 즉 지향점을 한곳으로 모은 셈이다. 그 방향은 대륙경영, 곧 독자적 세계관을 지니며 세계제국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전제적 군사 국가로서 고구려의 모습은 5세기 이후 크게 바뀌게 된다. 이 시기부터 고구려는 동북아에서 독자적인 생존권을 확보한 제국으로 발전해 나간다. 특히 5세기 이후 광개토태왕, 장수왕, 문자왕대에 이르러서는 동북아에서 독자적인 생존권을 마련한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한다. 이는 건국 이래 군사동원체제를 편성, 유지, 확대해 온 결과였다.

이처럼 전사 국가적 성격이 짙었던 고구려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륙관계사에서 한 획을 긋게 된다. 민족 웅비를 떨치게 되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환경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국제 정세를 주도하면서 대처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북아 국제정세의 환경을 만들어 내는 주역이자,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체로 자리매김된다. 힘의 중심에서 힘의 균형자 역할을 톡톡히 해 낸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의 한족(漢族)과 뚜렷이 구별된다. 동시대 한족세력이 북아시아 스텝(steppe) 에서 흥기한 제유목세력(諸遊牧勢力)에게 위축되고, 정복되던 것과 뚜렷히 성격이 달랐다. 오히려 한족을 에워싸고 다양한 종족들을 아울렀다. 중국은 그들의 오랜 국제 정치 전략에 따라 이민족의 국가들을 번리(藩籬, 울타리)로 삼으려 했으나, 오히려 이 시기에는 주변 강국에 의해 포위되는 형국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 말해 새로운 시장의 리더와 경쟁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점은 고구려가 어느 정도 제국다운 면모를 드러냈는가 하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고구려는 생산여건은 열악하기만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즉, 힘이 맞부딪치는 지점에 놓여 있어서 환경을 유리하게 전환시킬 수 있었다.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국가의 위상이 달라진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가 맞닿은 세력들은 하나같이 강국의 위상을 지녔다. 화북지방의 중국 세력과 북방의 유목민족들, 한반도 중부 이남의 백제와 신라 및 왜의 세력은 힘이 넘쳤다. 바로 그런 강국들과 마주치는 힘의 접점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또한 대륙과 해양을 공유하고 있었다. 중국 본토 및 요동 지역과는 황해북부를 경계로 삼고 있었고, 백제와는 황해중부 이북을 경계로, 왜와는 동해를 경계로 삼고 있었다.

또한 이 지역에는 동아시아의 대다수 종족이 모여 있었다. 문화도 수렵삼림문화, 유목문화, 농경문화, 해양문화 등 모든 형태가 혼재되며 맞닿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정착성와 이동성이 상호 작용하는 지역적 특성을 지녔다. 다시 말해 변화가 일상인 조건에 놓여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고구려의 지정학적 위치는 뻗어 나가지 않으면 주변 세력들에 의해 생존이 끊임없이 위협당하는 형국이었다. 피나는 생존 투쟁을 해야만 그나마 국가 차원의 지속경영의 조건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국토발전 방향은 요동으로 뻗어가는 서진설(西進設)과 남으로 뻗어나가는 남진설(南進設) 양축을 확장 방향으로 삼았는데, 이는 어떤 경우든 고구려가 처한 입지가 줄곧 확장을 통해 안정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진이든, 남진이든 고구려의 확장은 천하경영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전경일, <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