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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부모코칭이 자녀의 미래를 바꾼다

아빠는 위아래로 열변을 토하시는군요-말을 하기 보다는 들어주어라

우리 부부가 진지하게 아이들 가정교육에 대해 토론한 적 있는데, 어느 면에서 서로 약간씩 어긋나는 점을 발견했다. 부부가 생각이 다 같을 수 있다면, 같이 살아가며 배울 게 무엇이 있을까. 물론, 상호보완적 기능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 특히 내 경우는 아이들하고의 대화 중 그 같은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곤 한다. 여러 면에서 나는 아직 ‘덜 된 아버지’인 게 분명하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주로 부모는 가르치려 들지만, 실은 많이 들어주고, 많이 말하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종종 잊곤 한다. 물론, 이 점에 관한 한 나는 덜 배웠거나, 덜 깨우친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가장은 카리스마를 발휘해야 하는 것으로, 그것이 권위인 것으로 오랫동안 생각해왔으니까 말이다. 아버지는 강한 것, 뭐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산이다. 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간다움이다.


기존에 내가 가졌던 신념은 너무나 한순간에 어이없이 무너졌다.

딸아이에게 ‘인생에서 승자가 되는 법’ 따위의 열변을 토하다 나는 그만 방귀를 뀌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가족 중 누군가가 재치 있게 농담을 했다.

“아빠는 위아래로 열변을 토하시는군요!”

나는 그때 무안했지만, 아내는 재치 있게,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얘기하다보니까 생긴 거다. 이건 NG니까 빼주렴.”

나는 이쯤에서 열변을 멈춰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의 일로 아버지 됨의 다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온몸(?)으로 말한다고 먹히는 게 아니다. 나직하게 얘기하고,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백번 열변을 쏟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생리적 실수를 할 리도 없다.

그동안의 나의 아이들에 대한 태도는 ‘세상에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아버지가 가르침의 대화를 독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식 아니었을까? 아니면 ‘너희들과 참된 대화를 실컷 나누지 못했던 것은 시간이 너무 없고 너희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야’ 이런 식 아니었을까? 일방이 지닌, 스미지 않고 그저 흘러가버리고 마는 현상을 간과했던 셈이다.

만일 나처럼 이 같은 생각을 해온 아버지가 있다면, 그건 자녀와의 관계가 총체적 냉담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좋은 대화란 추임새 있는 대화를 말한다. 상대의 의중을 헤아리면서 말하고 듣는 능력은 어려서부터 배우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는 쉽사리 배울 수 없다. 그것은 인성을 형성하는 하나의 태도이다. 그런 대인관계의 성공적인 태도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체화된다.

요즘 아이들의 문제점으로 상상력이 낮거나, 문장 구성력이 허술하거나, 인문학적 배경이 없어서 다양한 사고를 전개시킬 수 없다는 것 등은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채워질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게 하려면, 그것은 부모의 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인내, 끈기, 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자신과 대화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부모는 자녀에게 듣기 공부를 가르치는데 맹점을 드러낸다.

자녀와의 최선의 대화는, 필연코 나를 듣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기술이다. 그건 뛰어난 인성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 부모의 삶을 생활로 듣게 하고, 부모의 행동을 일상에서 보게 하며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 부모의 이 같은 행동보다 더 큰 울림이나 웅변이 어디 있을까.
ⓒ전경일.이민경, <부모코칭이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