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경영/부모코칭 | 아버지의 마음

뷁?, 방가방가? - 아이의 언어를 배워라

by 전경일 2009. 10. 9.

중견 기업의 중역인 이 씨는 어느 날 집에 일거리를 가져갔다가 급히 이메일을 체크할 일이 있어 아이 공부방에 놓인 PC를 켜게 됐다. ‘뷁’, ‘방가방가’ 등 온갖 언어가 늘어선 PC 자료실을 보고는 이 씨는 기겁을 했다. 도저히 자신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문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애들 세상이 딴 세상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내가 이렇게 아이들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아버지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라며 실망하는 눈치였다. 자녀의 언어는 물론, 그들의 문화에 빠져 들지 못하면서 아이들과 소통한다는 건 무리다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후로 그는 짬짬이 시간을 내어 아이들의 문화를 익혀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에는 그들 나름의 문화가 있고, 그곳에는 소위 커뮤니티라는 게 있어, 시대적 정서나 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다. 특히나 사용자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는 한 순간 전 네티즌들에게 전파된다. 실험삼아 몇 개의 채팅어를 수첩에 적어 암기한 후, 그는 토요일 저녁 아이들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써보기로 했다. 적당한 단어가 쓰일만하게 대화를 유도한 뒤, 그는 기회다 싶을 때 익힌 표현을 쓰기로 했다. 때마침 아이가 이번 주에 잘한 일을 자랑삼아 늘어놨다.

“역쉬, 우리 아들 훈남이야!”

일순, 어안이 벙벙해지는 듯하다가 얘가 갑자기 웃어젖히며, “아버지도 그런 말 쓸 줄 아세요?” 하고 반문했다. 가족들은 식탁에서 한참을 배꼽잡고 웃어댔다.

그날의 에피소드는 이 씨가 자녀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씨는 자녀에게 이런 속어가 좋은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너희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그날의 식탁 풍경을 그는 이렇게 묘사했다.

“아이들이 당연히 놀랬죠? 아버지가 뭐 딱딱하지 않고 젊어졌다나, 아마 덜 고지식하게 보였나 보죠…….”

자녀와 대화가 막히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주요원인은 다른 세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세대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새로운 생활 방식에 뛰어들었을 수 있다.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를 바꾸려 한다면, 그건 갈등만 초래할 뿐이다. 어느 시대건 주도권은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밖에 없고, 그게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양보하시고, 그들 세대에 오히려 소속되려고 노력하시라.

이전 세대는 다만 자녀를 잘 이끄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된다. 세대 간 갈등을 줄이는 건, 내 방식이 아닌, 그들의 방식을 알고 그들 방식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들 시대에 우리는 이방인일 뿐이다. 그걸 모르는 가장은 늘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물론, 잦은 호통 소리와 아이들이 귀를 막는 살풍경도 벌어질 것이다. 원하는 게 이런 건 아니지 않는가?

노먼 M. 롭센즈는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10가지 방법>에서 우리는 “식구들 개개인이 특별히 싫어하는 일과 좋아하는 음식 등은 잘 알고 있지만, 식구들의 감정에 대해선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고 말한다. 동거자로 같이 살고는 있지만, 정작 아는 게 별로 없다는 뜻이다. 같은 공간에서 살기에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알게 되는 것들, 사소한 공동의 경험들, 욕구나 요구들 외에 정서적인 부분까지 깊숙이 들어가 본 적은 거의 없다. 마치 가까이 있는 타인 같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그들과 함께 서로 알기 위한 시도를 먼저 해보자.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상호 이해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알고자 하는 노력은 대화로 이어지고, 이는 서로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서로 간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자녀와 그저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진정한 면을 찾을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보자. 사랑이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가정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런 관심은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격려와 후원의 메시지가 되며, 아이들이 부모 가까이에 정신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를 잘 알게 되는 것은 보너스에 해당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 많이 알 것 같지만 의외로 아는 게 적다. 이거 의외로 놀라운 일 아닌가?
ⓒ전경일.이민경, <부모코칭이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