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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마흔으로 산다는 것

마흔이 마흔에게

by 전경일 2010. 5. 15.

이 시대 사십대들은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는가?

대학 시절에는 군부독재와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사람들. 온갖 굴곡진 현대사의 성공과 좌절, 희망과 절망의 경험을 함께 해온 사람들. 대학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사는 건 다 그런 거라고' 변명을 일삼기도 하는 사람들. 올곧이 떫은 땡감으로 자신의 뜻을 꺾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쉽게 쪽박을 깨버린 사람들. 다시, 민주주의 회복을 갈구하는 사람들. 지역주의와 학벌, 연고로 가득찬 기득권층을 증오하면서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 거기에 뛰어 들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돈과 명예가 따르는 성공을 누구보다 열망하는 사람들. 성공을 위해서라면 초심을 헌신짝 같이 던져 버리기도 하는 사람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달리 밥벌이를 위해서라면 철저히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세상 탓에 그렇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람들. 학력 차별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내 자식은 누구보다 남의 윗자리에 가 있게 하려고 사교육에 몰두하는 사람들. 머잖아 인생의 장년기를 외롭게 보내야만 하는 사람들. 자기 세대의 짐 때문이라는 핑계로 다음 세대를 돌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 20대 실업을 해결하기보다, 그들과 함께 밥그릇 싸움을 해야하는 삶의 여울목에 놓여있는 비정한 사람들.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책임이 막중한 사람들. 직장인들, 실업자들, 퇴직자들, 구조조정의 희생자들, 힘겨운 비정규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 무거운 사람들, 버거운 사람들, 길 잃은 사람들, 전짓불 들고 어렵사리 어둠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 내면의 어둠으로 세상을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 촛불든 사람들. 나이든 사람들.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들. 잠 못이루는 사람들. 그럼에도 어느덧 이 사회의 중추가 되어 있는 사람들. 어디선가 묵묵히 자기 일 수행하는 옆 집 아저씨 같은 주변의 사람들. 다시 도전하면 이번에 뭐든 잘 해 낼 것 같다고 불끈 주먹쥐는 사람들...
이처럼 대한민국 사십대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표정이 투영돼 있다.

지금, 대한민국 사십대,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사연 많고, 눈물 나는 이여! 가장들이여!

오늘부터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자 한다.


프롤로그

세월의 칼날이 내려친 자리에 어느덧 반백의 중년으로 남아 있는 사십대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눈물겹다 못해 가슴 저리다. 극단의 양극화로 신분 상승 기회조차 꿈꿔보지 못하는 사회,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폭이 너무 작은 사회, 열심히 달렸으나 텅 빈 자신만 뎅그라니 놓여 있는 걸 알게 되는 세대...
 
사십대에게 희망은 있는가? 마중물처럼 나를 부으면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을까? 사는 게 각박해도 울고 웃으며 주먹을 쥐고 달려가야만 하는 나이, 마흔….


대한민국 사십대의 애환을 달랜 20만부 베스트셀러 <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쓴 후 7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도서관 대여까지 합치면 대한민국 40대 인구 100만명이 읽었다는 내 생애 최고의 베스트 셀러... 
이제 나는 사십대 중반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로 달려가고 있고, 대한민국은 언제나 그랬듯, 변함없는 격랑의 소용돌이에 놓여있다. 지난 7년 사이, 정치적으로는 참여정부에서 실용정부로 바뀌었고, 두 전직 대통령이 안타까이 유명을 달리했으며, 부동산과 펀드 열풍이 불길처럼 번지더니, 세계경제위기 이후로는 주춤하다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듯 하다가 다시금 한없는 추락의 길로 접어드는 듯하다. 10년 전이나 7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혼동스럽고, 두렵고, 불안하다고들 한다.

세상이 혼동스러운 만큼 사십대 잠자리는 뒤숭숭하다. 지난 7년 사이, 적잖게 나이도 들고, 시련도 겪어봤을 대한민국 사십대들. 격랑 속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지만, 살면 살수록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는 사십대들…. 자녀 양육비, 사교육비, 집값, 구조조정, 해고, 비정규직 문제 등등… 무엇이 문제일까?

그간, 주변의 사십대들처럼 나도 많은 부침을 겪었다. 유력 포털사 임원에서 이동통신사 팀장으로 이직했다가 본의 아니게 회사를 떠나 내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아마도 이런 개인적 경험은 우리네 사십대가 처해있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회사형 인간에서 내 일을 시작했다는 걸 두고, 사람들은 인생 2막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마흔살이를 다시 보여 달라고들 했다. 내가 사는 삶의 궤적이 이 시대 사십대들의 공통분모라며….

<마흔…>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 빛과 그림자를 투영해 내고 있는가. 갈수록 탁탁하고 돌밭뿐인 사십대를 위한 희망의 등불은 무엇인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마흔 삶살이는 무엇인가?

지난 7년간 나의 경험을 통해 생활 속에서 돌아보고, 느낀 것들, 삶은 이래야 되겠구나, 하는 것들을 기록했고, 한데 묶기도 했다. 누구나 겪고 생각해 봤음직한 이야기를 독백하듯 잔잔하게 풀어내며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 나의 바램, 지향과 궤를 같이 하는 세상의 벗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스냅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내 소명을 다하고 싶다. 해서 이제 본격적으로 <마흔으로 산다는 것2>를 쓰고자 한다. 

살며 느끼는 것이지만, 평범한 하루라도 삶에 불꽃처럼 터지는 희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때면 기운을 얻는다. 마흔엔 속으로 우는 것도 때로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안다. 때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울컥함이 목젖을 뒤흔들며 눈물이 핑 돌지만, 사십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복되다. 동년배들과 호흡하며 이 순간을 사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았기에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더 행복하다.

앞으로 써내려갈 
상념스런 글편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 같다. 짧으나 긴 이 이야기들은 일상의 부유물이 차분히 가라앉는 침잠과 동시에 정신을 맑게 부상시킬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은 것들이 흔들어대는 힘이란, 아이들의 웃음처럼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는 자신에 주목하기 위해 타인이 남긴 긴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남긴 그림자를 누군가가 밟듯, 남들이 달린 그 길을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동질감이 생긴다.

<마흔>의 글편을 주워 모으며 이 시대 동년배들과 함께 걷는 오솔길에는 오늘따라 유난히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가끔, 홀로 묻는다. 그대도 외롭고 서러운 마흔인가? 뻔한 TV 드라마를 보면서도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런 마흔인가? 굳게 마음 먹고, 세상을 행해 당당하게 소리쳐야 하는 마흔인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부모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 마흔인가?

묻고 또 물으며 내 인생의 뚜렷한 길을 가고자 한다. 지천명이 낼 모레다. 종이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누구에게나  짧은 생애일지라도 우리 삶을 돌아 보며 세상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인생을 살고, 세상에 환한 전짓불 하나 큼지막히 밝혀두고 싶다. 나는 당당하고, 또렷하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전경일, <마흔으로 산다는 것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