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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누르하치: 글로벌 CEO

강자는 변방에서 출현한다

by 전경일 2010. 7. 19.

중국의 오랜 전략 중 하나는 주변 세력들이 강한 힘으로 결집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한족은 타민족의 단결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다. 한족은 그 자체로 중국을 형성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변방에서 새로 생겨나는 힘과 그것을 막고자 하는 한족 내부의 힘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중국 지배 권력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족의 중국을 중국 전체로 이해하는 것은 중국을 형성하는 다양한 힘을 무시하는 태도다.

외부의 힘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법으로 한족이 취한 정책이 바로 ‘분할 통치(divide and rule)’였다. 그러나 이 같은 한족의 정책은 내부에로 눈을 돌리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들불처럼 피어올랐다. 변방에 소홀한 틈을 타 그동안 감추어왔던 세력들은 그 모습을 보다 확실하게 드러냈다. 마치 대나무가 그 싹을 땅밖으로 드러내기 전에 이미 땅속에서 무수한 뿌리의 군락을 형성하다가 일시에 땅을 뚫고 나와 하늘을 뒤덮는 것처럼 이민족들은 갑작스럽게 중원에 출현했다. 그 첫번째 전략은 기존의 분할통치의 룰을 깨는 것이었다.

변방은 선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따라서 중국의 문물제도에 대한 선별적 흡수는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자체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전적으로 중국화되지 않고, 전적으로 굴복하지도 않았다. 이런 외적 조건은 자기를 잃지 않는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을 잃을 때 세상 전부를 잃는 것이라면, 여진족은 끊임없는 저항의지로 마침내 중국을 얻고, 지배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족의 이 같은 분할 통치가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금에 의한 요의 붕괴는 송(宋)의 무분별한 이이제이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요를 내치고자 여진과 동맹한 송은 결국 이민족에 대해 써먹던 핵심 전략인 이이제이가 송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며 남송(南宋)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요를 제압한 금은 요처럼 북방 변경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중국과 그 사람들을 지배했던 것이다.


장성을 통해 이적을 막으려는 오랜 중국 한인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국경은 변방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民意를 알고, 정치를 균형으로 바라본 강희제의 통찰이 훗날 청의 흥기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전경일, <글로벌 CEO 누르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