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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살이 이야기

올해의 사자성어 ‘생생지락(生生之樂)’을 떠올리며 정치를 생각한다

by 전경일 2012. 2. 6.

『논어』는 정사(政事)를 덕(德)으로 하는 것은,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여러 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居基所 而衆星共之)”고 한다. 따라서 군왕 리더십의 핵심은 인과 덕을 통해 뭇별인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2012년 올해 사자성어에 ‘생생지락(生生之樂)’이 선정됐다는 말을 뒤늦게 듣고 불현 듯 내가 쓴 <창조의 CEO 세종>이란 책에 나오는 생생지락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세종은 유교적 덕목과 질서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태종의 셋째 아들로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3자가 국왕이 된다는 것은 종법질서에 크게 어그러지는 것이었지만, 세종의 탁월한 군주다운 면모는 국가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태종의 마음을 움직여 끝내 국왕의 자리에 오르게 한다.

22살의 국왕은 지금으로 치자면 대통령 취임사, 즉 즉위교서에서 몇 가지 국가 경영의 철학을 밝힌다. 그 대원칙은 “인(仁)을 펴서 나라의 정사를 전개하겠다(시인발정 施仁發政)” 는 것이었다. 취임 일성에서 유교의 생생함, 위민(爲民) 경영을 실천자로서 사명을 다 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세종이 천명한 
‘백성이 주인’인 사상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세종 경영철학의 밑바탕은 민본사상인 바, “백성은 나라의 근본(‘민유방본 民惟邦本)’으로 국가 경영권이란 하늘인 백성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국왕은 하늘인 백성을 대신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대천이물(代天而物). 이런 국가경영상 확고한 철학적 신념은 세종으로 하여금 국왕이 된지 6년과 19년 후에도 아래와 같이 언명하게 하는 것이다.

국왕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니,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양육하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세종실록』 6년 6월 기미)

국왕의 책무는“오로지 애민(愛民)하는 것이다.”(세종실록』19년 1월 22일)

그리하여 세종은 자신의
경영 지표로 ‘민본’을 삼고, 자신의 정신 속에 항시 ‘하늘(天)’인 백성을 새겨 넣으며 평생을 살아갔다. 그 때문에 정치를 하는 요체로 세종은 다음과 같은 민생론을 주장하며 이의 완수를 위해 평생 멸사봉공하였던 것이다. 

세종이 내세운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뽑아 보라면, 올 해의 사사성어 중 하나인 ‘생생지락(生生之樂)’이다. 이 말은 원래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중국의 고대 상나라 군주 반경이 만민들로 하여금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꾸짖음을 들을 것이다 라고 말한 데서 따온 말이다. 세종은 역사 속 인물의 모범을 찾아 이를 세종정부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다. 다음은 바로 그것이다. 

“(세종 정부는 조선의 백성 여러분에게)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드리겠습니다.(生生之樂)”

600년 전 세종 정부의 슬로건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떤가? 너무나 21세기적이지 않은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바로 ‘대평화’와 함께 ‘경제적 풍요로움’ 을 동반하는 세종의 경영관이 압축된 말이다.

세종정부가 어느 특정 계급만 위한 게 아니라, 모두가 다 함께 밝고(희,熙) 너그러운(호,皞) 상태, 즉 ‘희호지락(熙皞之樂)’을 목표로 했던 것은 상위 1%만을 위한 오늘날 국가경영 시스템에 크나큰 경종을 울린다.

다 같이 밝고 너그러운 상태! 이 얼마나 위대한 경영(정치)적 슬로건인가.

세종은 이런 희호지락의 세상을 꿈꾼다.

“우리 백성들의 생명을 길게 하고, 우리나라의 바탕을 견고히 하며, 가정과 사람마다 넉넉하여 예양(禮讓)의 풍속을 크게 일으켜, 때로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되어 다함께 ‘화락하는 즐거움을 누려갈 것이다.”(세종실록』 26년 윤 7월 임인)

이것이 다가 아니다. 보다 궁극적이며 중요한 정치 원칙, 삶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드높은 평화에의 경지’, 즉 ‘융평(隆平)’ 이다. 조선 초 수많은 피를 흘린 정국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세종은 분별없는 경쟁과 갈등과 대립국면이 아닌, 상호 이해와 조화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정적조차 충신의 반열로 끌어 올린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 창업을 거부한 자들이 수없이 복권되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 중에 하나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해법이 되는 세종 정부의 경영 철학을 살펴보자.

그것은 다름아닌,
상향식 경제발전과 분배를 동시에 잡겠다는 이른바 ‘풍평(豊平)’이다.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 다른 차원의 국가 경영, 정치 세계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극단적인 '성장 vs. 분배' 의 갈라진 주장은 양쪽 모두 철학 없는 정치의 산표본이다. 어찌 이 둘이 분리될 수 있단 말인가? 성장 없는 분배는 공허하고, 분배 없는 성장은 다수를 절망케 한다. 정치인들은 왜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하는 커다란 숙제에서 빗겨나 반쪽짜리 숙제로 피신해 가는가? 그럼으로써 국민들이 이 문제에 휩쓸려 절망하도록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