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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탈 중심업무주의와 조직 유연성의 상관관계

by 전경일 2012. 4. 16.

탈 중심업무주의와 조직 유연성의 상관관계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조직 운영상의 유연성이 강조되고 있다. 예전에는 단일한 가치, 단일한 고객 성향, 단일한 시장 법칙이 작용했다. 많은 면에서 이른바 ‘해석 가능’했다. 이런 환경에서 시장 세분화나 맞춤형 서비스, 다품종소량 생산과 같은 개념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만들면 팔리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가장 보편화되어 있는 이런 개념이 불과 20년 전 만해도 생소하기만 했다는 사실은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시장이 드디어 공급자 마인드가 아닌 고객지향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은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고객접점을 더욱 넓혀 보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들이다.

 

공장에서도 한 개 라인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유연한 운영이 필요해 졌다. 필요시 라인을 즉각적으로 교체, 변경 가동할 수 있게 한 것은 경쟁력 향상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토요타 자동차의 주요 경쟁력 중 하나는 라인 운영의 유연성이다. 토요타시(市)에 위치한 모토마치 공장은 한 라인에서 다종의 차가 생산되어 나온다. 하나의 라인에서 동일한 차량만 생산되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방식(이른바 토요타 웨이Toyota way)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토요타의 눈부신 생산성에는 다름 아닌, 이 같은 멀티 프로세스형 생상방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 라인에서의 다종생산을 했던 경험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세종시대 농업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작물과 작물 사이에 다른 작물을 심는 이른 바 간종법(間種法)’의 개발이었다. 즉, 옥수수 사이에 녹두나 팥을 심어 한 두렁(라인)에서 두 세 종의 곡물(차량이나 휴대폰 등)을 수확해 내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세종 전까지만 해도 이런 농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는 그 당시 가장 혁신적인 농법 교범이었던《농사직설(農事直說)》의 성과로, 부단한 실험의 결과 라인(밭두렁) 운영은 보다 창의적으로 발전된다. 선진 농업지역인 삼남(三南)지방의 노동(老農)들이 지닌 농법, 농업기술을 현장경영을 통해 확보한 귀중한 지식의 보고였다. 세종시대의 이 같은 지식경영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경영에서 ‘간종법’의 지혜를 적용하면 업무 혁신과 프로세스 혁신을 가져온다. 우리 역사에는 경영의 현재적 의미가 도처에 널려있다. 그 지혜와 경험을 되살려 내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이 로마시대의 저 유구한 고전을 불러내 당대의 문화적 향연의 불을 지폈듯, 언제든 통용되는 경영의 교과서를 얻어 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역사상 1차 르네상스에 해당되는 세종시대는 ‘세종 웨이(Seijong way)'로 불릴만 하다.

 

어느 업무에서 건 공통되는 요소의 강화는 역설적이게도 차별화의 조건이 된다. 차별화는 공통요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편적 경쟁력의 하나로 삼는 바탕 위에 상품이나 제품에 격을 달리하는 혼의 요소(디자인, 마케팅, 브랜드력(力)을 포함하여)를 불어 넣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휴대폰 제조 및 서비스 업체 노키아(Nokia)는 생산 라인에 규격화된 전 세계 공통 부품이 80% 이상이나 된다. 어떤 라인을 가동하든 현지에 맞는 부품 20%만 공수하면 즉각적으로 라인 가동이 가능하다. 이 업체는 이 같은 유연성으로 이제 개방형 환경에서 서비스에도 뛰어들어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 점에서 훨씬 불리하다. 노키아와 여전히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유연성의 부족에 있다.

 

기업이 지닌 생산방식의 차이는 인재관에도 반영된다. 마크 L. 렝닉-홀은《인재구축과 지식경영》에서 “자원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법의 하나로 범위는 다소 좁더라도 서로 특성이 다른 인적자본을 보유한 직원으로 구성된 인력을 (규모 면에서) 많이 유지하는 것”을 경쟁력의 한 요소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을 취하면, “다른 상황 하나 하나에 맞춰 인력 구성 형태를 다르게 조합, 동원, 재조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마치 건축공사에 필요한 다양한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전기공, 목수, 실내장식업자, 배관공 및 기타 다양한 기술자를 모아서 일을 추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존-스타이너도 나이나 경험이 각자 다른, 다양성이 돋보이는 팀을 조직해야 각양각색의 아이디어와 문제해결법을 모색할 수 있고 성과도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에디슨은 평생 걸쳐 열 명 정도의 핵심 협력자를 둔 것으로 유명하다. 그를 밑밭침 해 준 사람들은 “영국의 직물직공, 스위스의 시계공, 물리학 석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수학자, 아일랜드의 전기기술자, 독일의 유리세공기술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전기공학자, 귀머거리 전신기술자” 등이었다. 이들을 한곳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에디슨의 경우, 이들 모두가 힘을 합하여 수백 건의 발명특허와 제품을 양산해 냈다. 즉, 즉 세계를 제패한 최고의 드림 팀이 탄생했던 것이다. 마이클 J. 겔브와 사라 밀러 칼디코드에 의하면, 에디슨은 그 엄청난 발명을 하는 데에는 동료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1875년 에디슨 주변에는 이미 그의 최측근으로 불릴 만한 네 명의 직원들이 있었다. 최우수 실험가이자 믿을 만한 친구였던 찰스 배츨러, 모형제작 전문가 존 크루에시, 연구실 조수 제임스 애덤스, 기계기술자 존 오트가 바로 그 네 명이다. 이들은 모두 에디슨에게 꼭 필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무랄데 없는 성격에, 베우고자 하는 열의뿐만 아니라 성과 달성을 위한 몰입”까지도 같았다. 그 외에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에디슨의 공상적 개념을 방정식으로 만든 수학자 겸 물리학자 프랜시스 업톤, 그리고 연구실 조수인 존 로슨과 마틴 포스까지 모든 이들이 에디슨과 함께 했다. 에디슨은 이들에게 단 ‘두 번의 클릭으로’ 조직 내 모든 직원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에디슨이 이들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들을 가까이 둔 것은 전문가 집단으로 하여금 특정 프로젝트에 활력을 불어 넣고, 일을 진척케 하며, 전문성이 각 공정내지 기능에 투입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으로써 전체 발명 프로젝트의 지휘자로서 전체를 바라보는 통합적 시각을 갖고자 했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은 특정 업무를 수행하며 그 자신도 지식이 광합성되는 현장에서 지식의 양과 깊이를 더해 갔다.

 

오늘날 우리 기업에서 이 같은 전문가를 움직이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량은 어떠해야 할까? 다분히 전 공정, 전 과정을 꿰뚫 수 있는 통합적 시각, 경험, 지식을 지녀야 한다. “범위는 다소 좁더라도 서로 특성이 다른 인적자본을 보유한 직원으로 구성”하면 각 기능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럴 때 전체 공정이 특별히 문제없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간다. 다분히 매카트로닉스형 인적 구성이다. 그러나 전제투망(透望) 역량과 창조 역량은 부분의 합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협소분야의 전문가를 고유의 중심업무가 있는 전문가 집단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들의 전문성은 이런 메카트로닉스 유형의 일에 잘 맞아 보인다. 전문성이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며 성과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큐빅을 돌린다고 생각해 보자. 한 면의 조합은 다른 면에 영향을 미치고, 다른 면의 잘된 구성이 또 다른 면의 조합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분의 곱은 언제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현재의 조직 운영이 모든 사람을 프로젝트 매니저형 인물로 대체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육성할 수는 있다. 마치 르네상스 시기 도제들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경험케 하고, 그곳에서 통합적 경험을 쌓아가게 한다면, 창조성은 보다 발현된다. 유연한 사고와 조직 운영은 창조력을 강화하는 내부의 가장 혁신적인 활동에 해당된다. 그걸 어떻게 다면적 사고로 확장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경영자에게 주어진 숙제이며, 경쟁의 관건이 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 사람이 특정 분야에 전문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전 분야를 꿸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분과형, 분절형, 중심업무형, 메카트로닉스형 교육과 업무를 통해서는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창조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방식보다 훨씬 크고 심지어는 복잡하기까지 한 사고의 매트릭스(즉, 틀)를 개발해 내야 한다. 그건 생각의 패턴을 바꾸는 것이다. 이 전과 달리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뿌리부터 달리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의 밀도 높은 경쟁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가 정교해 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땐 아프리카 들소처럼 둔한 발굽 때문에 목숨을 사자에게 내 주어야 한다.

 

때로는 중심업무에서 벗어나 전체를 일람케 하는 것은 경영이 추구하는 목표에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탈중심업무의 기회는 전문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성을 드높일 수 있다. 어느 한곳에만 매달려 있다 보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일이 지향하는 바가 뭔지 잊기 쉽다. 물론 조직도 유연하게 다른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사물과 사물간의 연결은 전체를 염두에 둘 때 각 기능들이 보다 효과를 드러낸다. 복잡계 전문가인 빌 웰터(Bill Welter)와 진 에그몬(Jean Egmon)은 창의력은 복잡한 것이지만, “상상력은 우리들 모두가 이미 갖춘 능력과 경험에 기초”하며,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연습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기업 인사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직원들의 잦은 직무전환은 깊이를 더 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전체를 보고자 하는 의욕을 꺾는 같은 챗바퀴와 같은 업무 방식이다. 생각 없이 하는 반복적인 일에서는 우주적 발견을 얻어 낼 수 없다. 경영자 자신은 물론 직원들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려면, 현재의 중심업무를 벗어나 자유롭게 관찰하는 경험을 부여해야 한다. 많이 본 조직이 많은 것을 이룬다. 창조시대의 경영자는 다견(多見)ㆍ다문(多聞)의 지식으로 다관(多觀)할 수 있어야 한다. 달관(達觀)은 그럴 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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