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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창조적 힘의 원천은 우주적 교감과 사랑

by 전경일 2012. 4. 25.

창조적 힘의 원천은 우주적 교감과 사랑

 

바바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저명한 생물학자로서 초기 시절부터 유전적 전위(轉位)의 신비에 깊이 매료되었었다. 그녀의 연구는 비정통적이라고 무시되곤 했지만, 그녀는 연구를 계속하여 현대 유전학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매클린톡의 연구는 인간과 세상의 상호연결이라는 문제를 잘 보여 준다. 나아가 이런 연결 통로를 통해 어떻게 지식이 창조되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매클린톡은 자신의 연구 대상을 객관화하지도 않았고, 또 그것을 분석하여 데이터로 만든다는 개념으로 접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연결 가능한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세우고 그에 따라 유전적 물질에 접근했다. 작가인 에블린 폭스 켈러(Evelyn Fox Keller)는 매클린톡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녀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유전학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또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중요한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유전자를 독립된 개체라기보다는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상호의존적인 개체로 파악함으로써, 그녀는 유전자 조작이 크로모솜 위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켈러가 매클린톡의 전기를 쓰기 위해 그녀를 인터뷰했을 때, 매클린톡의 상호의존적인 전제조건은 유전자들 사이의 관계라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거기에는 유전자와 그 유전자를 연구하는 과학자 사이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켈러는 ‘어떻게 하여 매클린톡이 동료학자들보다 유전학의 신비를 더 깊게 볼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세히 들여다 볼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 물질이 당신에게 건네는 말’을 이해하려는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스스로 당신에게 다가오도록‘ 하는 개방성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유기체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매클린톡의 과학은 정확한 분석적 사고와 완벽한 데이터로 무장되어 있었다. 이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결코 옥수수에서 새로운 원리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 논리, 객관적 거리 등은 위대한 과학적 역설의 한 부분에만 해당될 뿐이다. 그녀는 지식의 핵심에 대해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자, 관계, 연결, 일체감(공동체 의식) 등이라고 대답했다. 켈러는 매클린톡의 천재성을 멋진 한 문자로 요약했는데, 이는 모든 천재의 특성에 해당된다.

 

“옥수수 열매와의 관계에서 매클린톡은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을 성취했다. 그 사랑은 친밀하지만 서로간의 차이를 절멸시키지 않는 그런 사랑이었다.” “나아가 옥수수와 전적으로 공감하고 옥수수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여 대상과 관찰자의 경계를 허물어 버림으로서 귀중한 지식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말은 과학의 핵심을 찔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진정한 관계(인간과 역사, 인간과 자연, 인간과 다른 인간, 인간과 사물)의 핵심을 찌른 것이기도 했다. 즉, 타자에 대한 존경 혹은 사랑을 옮겨간 지식의 방법과 삶의 방법을 말해 주기도 한다.”

 

창조를 얘기할 때 우리는 주어진 데이터의 분석 절차와 노력, 그리고 그 결과에 집중한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는 두뇌로는 개방적 인지 태도를 취하면서도 심장으로는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깃들 때 창조의 영감이 떠오른다. 모든 창조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적극적인 애정이 함께하며, 몰입이 동반된다. ‘몰두조건’이 내부에 충실하지 않으면 생각은 겉돌고, 끝내 타자의 내면에 숨은 비밀을 밝혀내는데 성공할 수 없다. 관심·사랑은 그 대상을 변화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과거에는 볼 수 없던(보이지 않던) 꽁꽁 쌓인 베일을 벗겨준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우리는 내면을 얘기하지만, 실은 외면, 다양한 체험, 인지, 화학적 반응, 상통(相通), 정서적 공감대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통섭적 경험이 함께 하는 것이다. 매클린톡은 옥수수와의 사랑에 빠져 옥수수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었고, 그런 집중력은 그녀에게 몰아일체의 경지에서 옥수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랑은 대상에 집중된 감정이다. 집중과 몰두 없이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 수 없다.

 

뉴턴은 어떻게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냐는 질문에 “나는 줄곧 그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는 항상 ‘거인의 어깨에 기댔다.“ 아인슈타인도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9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돼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 낸다.”고 대답했다. 골똘히 생각하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다보면 사물은 그 이면에 놓여있는 진실의 면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세종이《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가장 우주적이고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영감을 얻었을 거라는 점은 쉽게 상상이 간다. 《훈민정음》이 지닌 우주적 상상력(철학적 원리로서 음양오행(금, 목, 수, 화 토)과 모든 힘의 근원인 태극(太極, 음과 양) 운동을 문자 창제의 원리로 삼은 것.)과 발성기관의 모양을 상징한 점은 참으로 놀라운 창의적 발상이다. 이는 중국과 우리의 풍토와 성기(聲氣, 발성의 기운)가 서로 다르다는 풍토부동(風土不同)ㆍ성기부동(聲氣不同)의 통찰에서 나온 것이자, 말의 소리를 드러내는 글자 모양을 인간이 우주와 교감하는 방식과 우리 고유의 차이에서 착안해 낸 것이다. 이는 “역(易)의 근본적인 힘의 요소와 그 생성 원리인 태극에서 음양”까지 통섭하고, 인간의 구강구조를 과학적으로 꿰뚫어 봄으로써 글자 자체가 삶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게 한데 있다.

 

세종 시기 천문학을 주관하던 기관은 왕립천문대에 해당하는 서운관이었다. 서운관에는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 두 곳에 간의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훈민정음》을 창제 중이던 세종은 종종 이 천문대를 찾아 밤늦게 홀로 오르곤 했다. 《연려실기술이에 대해 “임금이 때때로 혼자 친히 첨성대에 임하여 윤사웅에게 명하여 천도(天度)를 논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세종은 ‘천상(天象)에 응하기 위해’ 밤 하늘을 응시했을 것이고, 하늘의 운행을 보며 삶의 운행의 이치를 깨닫고, 거기서《훈민정음》창제의 기본 원리를 확신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늘, 땅, 사람에 대한 상형과 발성기관에 대한 상형이 결합된 이 놀랍고도 탁월한 글자에는 이처럼 우주적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듬뿍 묻어난다. 창조 경영자로서 세종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세종의 상상력과 줄기 찬 노력의 결과물이《훈민정음》이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연구에 들어간 것을 대략 세종10년에서 15년경으로 본다. 따라서 적어도 한글은 10년에서 15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밤낮으로 애쓴 까닭에 안질이 나자 세종은 치료차 초정리 약수터에 갔는데, 거기서도《훈민정음》초고를 퇴고했다. 오랜 준비와 우주와의 교감,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 위대한 창조로 이어진 것이다.

 

오늘날 경영이 접하는 세계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런 까닭에 모든 것은 상효연계 되는 하나의 그물망을 이룬다. 우리가 경영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발상을 극대화하려면 따뜻한 마음으로 개개 변수가 상호작용하는 경영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직접 참여해 오감(五感)할 때에라야 우주는 지난하기만 한 질의에 대한 대답을 준다. 모든 천재적 노력은 우주적 질서에 맞닿아 있다. 복잡계로 진입할수록 경영이 물 흐르듯 가장 자연적이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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