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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미래의 경력 닻 내릴 곳 찾기

by 전경일 2012. 4. 16.

미래의 경력닻 내릴 곳 찾기

미국의 심리학자 쉐인(Schein)은 30년 전 ‘경력 닻(career anchor)이론’을 밝히며 개인들이 변화의 풍랑에 좌초되지 않는 무게중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어느 한 두 가지 주요 가치, 목적에 닻을 내림으로써 직업적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말하는 경력 닻 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에 대한 지각, 요구와 동기에 대한 지각, 조직과 삶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와 가치에 대한 지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력 닻 이론은 발전해 현재 8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1. 기술, 기능 역량의 닻 : 주로 일 자체에 흥미를 갖고 자기 역량의 기술적 내지 기능적 영역에서의 진보를 선호한다.

 

2. 관리 역량의 닻 : 정보가 부적하거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 내지 분석에 관심이 높다. 공통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관리를 도전과제로 여긴다.

 

3. 안전, 안정의 닻 : 직무안정과 장기간 한 조직에 복무하는 것을 선호한다. 조직 가치와 기준에 잘 적응하며 변화가 잦은 직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4. 사업가적 창의성의 닻 : 자신의 프로젝트를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얻어 내는 것을 즐긴다. 이 프로젝트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며, 완성된 무언가를 관리 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더 흥미가 있다.

 

5. 자율, 독립의 닻 : 최대한 자유가 있는 작업 상황을 선호한다. 스스로 작업 일정을 계획하고 작업 속도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을 원한다. 보다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승진의 기회를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

 

6. 봉사, 헌신의 닻 : 세상을 개선하는 것을 추구하고, 사회를 돕는 것에 대해 자신의 가치와 작업 활동이 일치하기를 원한다. 기술보다는 가치에 맞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7. 순수 도전의 닻 : 장애를 극복하거나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높다. 일상적인 관행이나 업무로 인해 열정을 쏟을 수 없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고 한 가지 목적만을 추구한다.

 

8. 생활양식의 닻 : 자신의 일상생활과 직장생활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다. 가족 우선의 가치와 지원 프로그램을 지닌 조직을 선호한다.

 

이런 경력 닻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직무선호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조직의 관점에서 보다는 개인의 경력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개인의 경력 추구와 맞물린 조직성과의 향상은 상호연계 되어 있다. 경력 닻 이론은 인간이 가진 복잡한 지향성을 어느 한 두 가지로 국한하는 게 아니다. 대신 다양한 관점에서 어떤 가치에 주안점을 둘지 선택하는 문제라고 본다. 어느 분야에서건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선호도나 조건에 맞는 경력 닻을 내려야 한다. 즉, 자신의 욕구에 의한 경력 닻 보다는 시대의 요구에 맞는 닻을 내리는 것이 개인에게도 성취동기를 크게 부여할 수 있고, 기업에도 직무에 맞는 직원들을 뽑아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력 닻은 다양한 개인 선호도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보다 복잡하고 중층적인 가치가 기업과 개인 간에 요구되고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전 세계적 경쟁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는 단순히 개인 선호도를 반영하거나 밀도 높은 경쟁을 피하려는 개인 의지에 쐐기를 박고 있다.

 

불과 30년 전의 개인 옵션 사항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주로 비지니스가 이루어지는 경쟁 분야의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선택의 폭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21세기 들어 기업조직 내 인재관에 대한 가치 변동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기술진보와 세계화에 기업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조직의 강화, 다기능 전문가의 등장, 혁신·창조의 강화, 팀웍 중시, 자기개발의 강조, 수평적 관계의 확산, 직급 파괴, 팀제 확산 등은 경영에서 시대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 ‘경력 닻’ 이론으로만은 다 설명하기 어렵다. 효율성과 효과성에 기반한 능력 및 성과주의는 단순히 업무 성과만을 바로메타로 해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 보다는 보다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해 내려는 욕구로 개개인들을 바라보게 한다.

 

이제는 과거처럼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내는 단순근로자 의식으로는 창조는 커녕, 현실의 장벽조차 뛰어넘지 못한다. 조직은 개인에게 경쟁력 차원에서 다차원적 가치를 지닐 것을 주문하고 있고, 이 대열에서 낙오하는 개인은 점차 설 곳이 없어진다. 다시 말해 만능형 인재상이 기술이 백업되는 시대에는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개인은 창의, 혁신, 비전, 가치, 생산성, 성장 등 다방면에 걸친 생존과 직결된 요소들에 경력 닻을 내리지 못한다면, 수시로 변화하는 경영현실에 쉽게 침몰하고 만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개인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육체노동자에서 지식노동자로의 전환이 대세라는 피터 드러커의 진단은 이제 지식노동자에서 전인형(全人型) 지식노동자로 개인 성장을 꾀하지 못할 때 성공과 발전의 조건이 날아가 버린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각 개인이 지닌 경력은 복합적 구조를 띠어야 하며, 혼융될 필요가 있다. 이미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통신 기술과 가전 기술의 통합을 통해 가사노동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 채 바꾸어 가고 있다. 지식조차도 단순 지식이 아닌, 정보로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해체와 재조립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가 부여돼야 한다. 경력 닻은 모든 닻을 내릴 수 있든 사람에게 어느 닻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만일 경쟁 환경을 도외시 한 채로 무풍지대에 닻을 내리고자 한다면, 거대한 쓰나미에 한 순간 휩쓸려 가고 말 것이다. 한 두 개의 닻이 아닌, 수십, 수백 개의 대안을 마련해 폭풍이 몰아치는 현실과 당당히 맞설 때 기업과 개인인 산다. 미래의 경력닻은 우리가 어디에 정박할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어디서부터 다시 항해를 시작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닻은 올리고, 돛은 펼쳐들면, 항해를 도우는 순풍은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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