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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디지털 생태계에 등장한 초(超)인류 창조계급

by 전경일 2012. 11. 22.

디지털 생태계에 등장한 초(超)인류 창조계급

 

20세기말에 태동해 21세기를 변모시키는 주역은 단연코 인터넷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혁명은 바야흐로 공급자형 인터넷에서 시작해 생산과 소비를 동시해 수행해 내는 프로슈머형 인터넷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터넷에 의한 지식의 전 세계적 접근이 2000년 초까지의 물결이었다면, 지금은 지식을 쌓아 포개어 놓은 층위인 ‘앎켜’에 소비계층이 만들어 내는 생산형 컨텐츠가 추가되며 지식의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편리성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툴(tool)의 보급은 웹 2.0, 퍼스널 미디어, UCC(user created contents), PCC(personal created contents) 등을 가져오고, 상호연계된 창조적 계급, 창조집단은 2008년 봄부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촛불 시위에(정치적 의미는 여기서 차치하고) 와이브로(wibro)를 통해 개인이 실시간 생중계함으로써 기존 미디어의 위세를 꺾어놓는 미디어의 참신성을 보여줬다. 1980년대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 시도했던 1인 기자·촬영기사 역의 실험적 저널리즘은 실패했지만, 1인 다역의 저널리즘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쌍방향 인터넷의 힘을 빌려 성공적으로 꽃핀 셈이다. 그것도 개인들의 창조적 IT 응용력이 발휘되며 이루어진 개인 미디어의 진정한 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참여형 컨텐츠의 등장은 ‘짝뚱’내지 ‘거짓’이라는 의미의 ‘합성(合成)’문화가 확산되며 단성(單性) 위주의 가치가 보다 중층적 가치를 지닌 합성(合性)사회로 발전해 나가는 가정을 예측케 하고 있다. 기술과 문화의 선성(善性)이 초국적 인터넷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적 컨버전스는 기술 이상의 사회적 컨버전스, 문화적 컨버전스를 불러오고 있다. 이런 융합사회의 특징은 지식과 경험이 상호간 연계·교차·혼융되며 아우름, 넘나듦, 뛰어넘음이 자연스럽게 일상에 드러나는 차세대 디지털 세계의 만화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 지식(정보) 공유 채널인 인터넷이 인프라로 깔리며 지역·문화간 경계를 무너뜨리며 탈정부, 탈지역, 탈국가의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가간 장벽을 허무는 정치, 경제적 초국적 체제보다도 강력한 초국가적 디지털 생태계가 만들어 지며 지역·문명 초월체인 초(超)아이콘 시대로 인류가 접어들고 있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기술적으로 컨버전스가 가져오는 ‘하이브리드(hybrid)’는 다이내믹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융복합적 지식사회의 일면은 마치 세종 시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역동성을 엿보는 듯하다. 즉, 그 무렵 창조적 기풍이 만개한 조선사회의 특징이었던 ‘활발발(活發發)’이 수많은 과학 발명품을 탄생시킨 ‘활발견(活發見)’·‘활발명(活發明)’을 이끌었듯 2008년 대한민국 사람들과 그들이 사용한 기술과 기술을 통한 사회적 담론생산은 창조적 디지털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 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술과 정치·사회적 응용은 이렇다고 치고, 이번에도 기업들은 ‘혁명가(즉, 얼리 어답터들)’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기업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개인이 창조하는 컨텐츠가 사업의 키를 움켜쥐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물론, 보수언론에 광고를 실은 광고주에 대한 압박 움직임을 통해 대중이 만들어 내는 담론을 포함한 컨텐츠의 칼날이 날카롭고,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는 점도 아울러 배웠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경영의 관점에서 기업이 배운 가치는 더 있다. 창조시대에 부응하는 참신가치, 융복합형 인재, 개인 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미체의 등장, 광고의 진화, 기업의 위기관리 대처능력 등 적지 않은 교훈이 뒤따랐다. 눈 밝은 기업들은 과거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해커들을 채용했던 유행처럼 UCC생산자들에 주목하게 됐다. 이미 오래 전 코카콜라의 코크 플레이는 브랜드 친밀도를 강화하기 위한 홍보 미디어였고, 그 후로 등장한 막강한 개인미디어 서비스들은 기업이 개인의 입과 눈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오디언스의 시간과 관심을 사는 것이 아닌, 그들이 생산한 컨텐츠를 사는 식으로 마켓 플레이스도 변하고 있다.

 

디지털 생태계에서의 ‘앎켜’는 과거 켜켜이 앉은 먼지와 같이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산 지식이다. 나날이 업 그래이드 되는 ‘지층(知層)’을 쌓아 올리면서 그 사이사이에 기업이 요구하는 경영의 키워드를 집어넣을 수 있다. 거기엔 기업이 바라는 총체적 가치가 고스란히 반영될 수 있고, 효과는 승수 작용을 일으키며 무한 확산될 수 있다. 농심의 ‘쥐새우깡’은 결정적인 타격 대상이 되었지만, 다음의 ‘아고라’는 폭발적인 페이지뷰를 가져왔고,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 커뮤니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디지털이 가져오는 창조적 개인과 집단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들을 경원시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히려 불리하게 돌아가는 경영 환경 밖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고객평을 중시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면, 그런 기업은 조만간 기업사에서 영구히 지워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달리 경영자들은 디지털 생태계에 등장한 이들 초(超)인류 창조계급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이들의 활동은 경영의 바로메터가 되기도 하고, 위험의 징후를 알리는 레드 플래그(Red flag)가 되기도 한다. 창조 시대의 가치는 PC 자판을 두드리거나, 디지털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누르는 만인의 손끝에서 나온다. 경영자들은 이들을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이들의 활동을 가치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와 다른 방식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때, 그 뒤편에 서 있기만 한다면 어떠한 경영도 여신(女神) 포르투나의 민머리 얼굴을 붙잡을 수 없다. 운명이란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경영자인 그대의 행동에 따라 이 배의 앞머리를 장식하는 여신은 그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항진해 나갈 수 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