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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종합예술가로 진화하는 경영자들

by 전경일 2012. 11. 14.

종합예술가로 진화하는 경영자들

 

경영관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과거처럼 만들면 팔리는 시대에서 디자인이나 심미안적 요소 같은 것들은 상품에 반영될 여지가 별로 없었다. 공급자 중심의 마인드가 경영의 지배사상으로 굳건히 자리 잡던 시대의 경영관이 이랬다. 이 시기는 생산 행위 자체가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 세계적인 회사들은 기업 가치를 브랜드 파워와 0.6초의 승부를 가르는 디자인 경쟁력에 두고 있다. 생산기지는 저가의 노동력이 제공되는 곳이면 어디든 이전 할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들, 그리고 남미가 그 공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 기업의 본사나 핵심부는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에만 집중한다. 핵심가치를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은 모두 아웃소싱 대상이다. 유나이티드 컬러로 유명한 베네통 같은 회사나 휴대폰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인 노키아 등은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이다.

 

글로벌이 가속화되고, 사람들의 소비를 유인하는 요인이 감성적 요소로 바뀌면서 경영은 이제 미학적(美學的) 영역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안목없는 경영자는 과거 생산 공장의 관리자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예술이 생활 곳곳은 물론 기업경영의 향방을 결정짓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감성적 영역은 기술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기술 자체가 하나의 감식 기능을 수행해 내야만 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왜 이런 새로운 미학적 관점이 부상하고 있는 것일까? 양극화내지 편중화의 덫에 걸린 세계화의 문제는 차치하고, 기업에 일정 수준 이상의 미적 감각이 대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부의 일정한 증가가 마르크스의 이론처럼 양적 팽창이 질적 전환을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양은 중시되지 않는다. 맞춤형 재화들은 이런 트랜드를 반영한다. ‘삶의 질’ 문제는 소비되는 상품 및 서비스의 품질을 요구하고 있고, 이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업 경영에 반영된다. 경영자의 수준 높은 안목이 요구될 것이 당연하다.

 

“다니엘 골만(Daniel Goleman)은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나 팀은 우수한 분석적, 기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력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보여 준다. 우수한 분석적, 기술적 능력 역시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성공을 보장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생각뿐만 아니라 감성에도 관여하는 것은 개인이 지닌 중요한 에너지, 창조력, 방대한 경험 등을 기업의 자원으로 현실화 할 수 있다.”

 

유엔 자료에 의하면, 인터넷이 등장한 이전과 이후의 차이로 전 세계 기업들의 감성지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은 서둘러 디자인 역량에 주력하고 있다. 《포춘(Fortune)》100대 기업의 경영자들이 강조하는 것도 감성적 역량과 이성적 역량이 결합된 창조능력이다. 이는 경영에 나타난 밀레니엄 현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1997년 이전의 경영자와 전세계적으로 확산 보급된 2000년 이후의 경영자는 종(種)부터 다르다. 로컬이 오랫동안 가치영역에서 제외된 것은 국부적 문화가 지닌 ‘힘’을 무시한 결과였다. 그러나 로컬의 시장을 겨냥한 보편타당(universial)한 상품과 컨텐츠의 등장은 시장을 크로스 오버해서 얻어 낸 결과였다. 월트 디즈니나 워너브라더스는 동양인, 동양문화·전통·신화·설화 등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로컬이 원천 컨텐츠의 제공처이자, 소비 시장이 된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금융센터인 월 스트리트에서조차 스시(일본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를 먹을 줄 아는 사람은 적어도 일본, 한국 등을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국한됐다. 그 무렵엔 동양 음식을 맛보지 않은 촌뜨기 미국인이 ‘글로벌 인(人)‘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서양에 낚시배를 타고 나가면, 회를 뜨는 어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베트남 쌀국수나 인도의 커리를 맛 보는 것은 이제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로컬의 가치가 보편성을 띠며 월드와이드하게 확장되어 가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는 예에 불과하다.

 

세계화는 재화의 극대화, 효율성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확장된 부의 확산 개념이지만, 몽골이 서유럽을 정복해 나갈 때 화약, 종이 등이 지구의 절반이나 되는 지역으로 전해지며 유럽의 르네상스를 잉태케 한 요인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로컬에서 세계로(from local to world wide) 모든 재화를 순간 이동시키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시장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가 종(種)의 혼혈, 합성, 하이브리드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영자의 유전적 형질은 이제 로컬이든, 글로벌이든 문화적으로는 그 자체로 세부적인 느낌, 디테일, 델리케이트(delicate)한 감각을 드러낼 수 있는 문화적으로 진화된 상태를 필요로 한다. 국부적 가치가 글로벌로 픽업되며,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어떤 정서적 지향, 정신적 만족을 찾는지를 아는 것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극도의 단순한 ‘고객만족’ 개념 정도로는 담아낼 수 없다. 감각적으로 극도로 짜릿하고, 쿨하고, 쾌적하며, 섹슈얼한 느낌, 한편으로 정신적으로는 고요, 안정, 선적(禪的) 세계 같은 깊은 세계관이 결합되어야 한다.

 

요즘의 경영자들에게 요구되는 본능은 바로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미적 감각이다. 경영자들이 역사에서 광맥을 캐내고, 철학에서 심오한 지혜의 우물을 파고, 예술에서 감각적이며 정신적 위안을 찾으며 르네상스형 종합예술인으로 진화해 나가는 것은 경영의 방식이 달라지는 시대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것임에 틀림없다. 전문성은 그 자체로 전문적이기에 한계를 드러내고, 타 분야의 지식을 총체적으로 끌어 앉지 못한 까닭에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21세기 경영은 접하는 문제조차 복합적이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식과 경험,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경영이 직면한 복잡성을 헤쳐 나가는 한 방법이 된다.

 

예술 문화는 재삼 강조하지 않아도 21세기 기업 경영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경영자들이 진화해 나가는 것도 알고 보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류사적 경험의 일부인 셈이며,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 요구하는 경험론과 방법론이 작용해서 그런 것임을 알 수 있다. 타 분야를 통섭해 창조해 내려는 노력이 경영자의 생활 속의 규범이 되어야 하고, 실행의 원칙이 되는 이유도 이 때문 아닐까 한다.

 

요즘 경영자들은 점차 예술가들을 닮아 가고 있다. 그들은 품위 있는 언어로 말하고, 시서화악(詩書畵樂)에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이런 예술적 기풍이 그들을 남들과 다르게 만들고, 이 같은 차이가 다른 차원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게 한다. 예술은 영감을 불러오고, 경영을 다른 치원을 열어 보인다. 이런 트랜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어느 한 두 가지 요인으로 생존했다는 믿음은 오랫동안 이 무차별적인 경쟁과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그 이상의 원인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초파리의 유전자보다 그리 많지 않은 인간 유전자의 진화 배경에는 세계를 통합적으로 보는 DNA 코드가 삽입돼 있는 게 분명하다. 경영자들의 유전자는 어떤 염기 배열을 취할까?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