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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3대 57년간 동업이 끝나는 날

by 전경일 2013. 3. 25.

3대 57년간 동업이 끝나는 날

 

2005년 3월 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구 LG타워)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이 열린 것이다. 이날부터 LG그룹은 LG와 GS 그룹으로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공식 작별 선언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구본무 회장의 가슴엔 창업 3세대로서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것은 구회장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3대 57년간에 걸친 동업시대가 끝나고 이제 분리된 두 그룹 앞에는 각자의 처녀항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57년간의 동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구 LG그룹 임직원들은 물론, 창업자들, 주주들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고자 했다. 누구도 쉽지 않은 동업, 하지만 57년을 한결같이 해온 동업 아니던가! 그 길고 험난했던 여정이 이제 성공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 뿌듯합니다.”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 때부터 계속돼 온 구씨ㆍ허씨 간 57년간의 동업은 이날로 마무리 된다. 회자정리라! 만남이 뜻 깊었던 만큼 헤어짐도 각별했다. 락희화학 설립 기준년도인 1947년을 기준으로 볼 때 정말이지 긴 세월 동안 대한민국 기업사와 함께 숨 가쁘게 달려온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구 회장을 향해 사돈이자 그룹 경영의 동반자였던 GS그룹의 허창수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 박수를 했다. 행사장에는 구회장이 그룹 회장이 되며 새로 마련한 CI이며, 구호인 ‘사랑해요 LG’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랑해요, LG······.'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창업자 세대들은 이 노랫말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회사를 일으켜 세우고 키워왔으리라. 이 같은 심적ㆍ경험적 공통분모는 두 그룹이 헤어져도 앞으로 든든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였다. 이날은 그룹이 분리되는 피날레에 해당되는 순간이었다. 보름 전에도 구회장은 당숙이자 LG그룹을 초기부터 키워 온 구자홍 회장ㆍ구자열 부회장에게 LS그룹을 떼어 넘기며 새로운 출범을 축하해 주었다. 모두들 이제는 새로운 길을 떠나는 여정이었지만, 만인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구인회······.'

 

이날은 기업을 공동으로 키워내고 그 과실을 풍족하게 나누는 잔칫날이기도 했다. 이날의 작별 식에 가장 아쉬웠던 점은 57년을 함께 해온 구씨ㆍ허씨 양가 창업자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 할 수는 없었다는 점이었다. 창업 1세대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대신 그들의 2대, 3대, 4대가 함께 모여 뜻 깊은 식을 거행했다. 그들이야말로 창업자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의 상속자들이자 동업의 수혜자들이었다.

 

LG는 57년 전 두 가문이 손을 잡은 때로부터 대를 이어 완벽한 동업을 이어 나왔고, 이날 성공적인 분할을 마무리함으로써 동업이 완성된다. 이때의 분할로 회사가치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분할 후 5년이 지난 2010년 3월의 성적표를 보면 GS그룹을 떼어낸 LG그룹의 행적은 눈부신 도약의 나날이었다. 욱일승천하듯 뻗어나가는 LG의 성장사를 보는 듯하다.

 

처음 자본금 300만 원으로 출발한 락희화학공업사는 1년 만에 3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1대 구인회 회장, 2대 구자경 회장을 거쳐 현재 구본무 회장으로 오면서 눈부신 글로벌 성장을 이뤄낸다. 2005년 그룹이 분리될 때 LG는 자본금 8,794억 원, 자기자본 2조 7,534억 원, 자산 3조 9,949억 원, 부채비율 45 퍼센트의 회사가 되어 있었고, GS는 자본금 4,735억 원, 자기자본 1조 5,264억 원, 자산 2조 1,801억 원, 부채비율 43퍼센트의 회사로 출발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2010년의 성적표는? 간단한 수치만 살펴봐도 놀랍기만 하다.

 

"LG는 2009 말 현재 자본금이 7조 4,000억 원으로 247만 배 늘었고, 매출액도 125조 원으로 41만 배 넘게 성장했다. 창업 시 20여 명이던 종업원은 국내외 18만 6,00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분리되어 나간 GS 그룹의 경우엔 어떨까? 현재 GS그룹의 총수를 맡고 있는 허창수 회장이 이뤄낸 성적표 또한 순항 중임을 잘 보여준다.

 

"계열분리 전 LG와 한 지붕 아래 있을 지금 GS의 계열사 매출을 합한 금액은 23조 1,000억 원이었으나 2008년 GS의 매출은 49조 8,000억 원으로 5년 동안 2배 이상 성장했다. 자산 규모도 2004년 18조 7,000억 원에서 지난해 39조 원으로 109 퍼센트 늘었다."

 

내용만 보면 창업 57년과 분할 후 5년 만에 두 가문은 재계 수위에 드는 두 그룹을 서로 나누어 가진 셈이다. 그룹위상도 나날이 안착되어 가고 있다. 두 집안이 시작한 동업치고는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결과다.

 

그렇다고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이들의 미래가 과거처럼 낙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두 그룹이 헤쳐 나가야 할 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LG는 3D TV에서 삼성과 사생결단을 벌여야만 한다. 과거 일본의 소니가 베타맥스(BetaMax)를 먼저 개발해 놓고도 마쓰시다의 VHS 표준과 맞붙어 고배를 마신 것처럼, 표준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향후 재계의 판도를 바꾸는 메가톤급 주도권 경쟁이기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LG전자는 전자산업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다.

 

GS그룹은 어떤가? 매출과 자산이 증가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재계 순위는 7위(공기업 제외) 그대로다. 또 계열사가 GS칼텍스, GS건설, GS리테일, GS홈쇼핑 등 주로 내수 시장에 국한되어 있다. 내수형 에너지ㆍ유통 회사라 초대형 글로벌 그룹으로 커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분할 후 그룹을 키우고자 공격적 인수ㆍ합병(M&A)전에 나섰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망스러웠다. 하이마트, 대한통운, 대우조선해양 인수 시도도 다 실패였다. 다만, (주)쌍용의 경우가 용이 될지 용꼬리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런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두 그룹의 성적표는 대단하다. 그룹은 분리되었지만 동업할 때 누리던 효익(效益)을 분할 5년 지나서도 충분히 누리고 있다. 분리 이후 재계 10위 권 내 안착했으니 말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우리가 명확히 알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동업은 망한다.'는 고정관념은 틀렸다는 것과 산업에서 더 크게 상생하고 커나가는 파트너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만큼이나 흥미롭고 감동적인 것은 그룹 분리 시 두 집안은 친구로 헤어졌다는 점이다. 두 집안 모두 '돌아서는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보여주었다. 이들의 우호적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지금으로선 다툼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구씨ㆍ허씨 양가는 어떻게 해서 57년간 불협화음 없이 성공적인 동업 관계를 유지해 올 수 있었을까? 더구나 어떻게 동업을 했기에 조그마한 락희화학을 현재와 같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낼 수 있었을까? 동업을 한다면 으레 서로의 욕심 때문에 쪽박 깨지는 게 다반사인데 어떻게 그런 엄청난 상생ㆍ상승효과를 낼 수 있었을까? 구씨ㆍ허씨 두 집안이 함께 해온 동업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그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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