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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돈 버는 인연은 가까이 있다

by 전경일 2013. 3. 27.

돈 버는 인연은 가까이 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열이면 열, 동업은 하지 말라고 쌍수 들고 말린다. 동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이다. 형제나 친구간이라 해도 결국 의(義) 상하고 갈라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 LG그룹의 구씨ㆍ허씨 집안은 지난 57년에 걸친 성공적인 동업을 마무리 지음으로서 동업 불신에 대한 세간의 상식을 뛰어 넘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공적인 동업을 이뤄 낼 수 있었을까? 이들의 동업엔 어떤 원칙과 불문율이 있는 것일까? 두 집안의 동업의 비밀과 혼자서는 이루기 힘든 성공의 열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구씨ㆍ허씨가 손을 잡게 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1946년 1월 부산에서 사업구상을 하던 구인회에게 장인 허만식의 6촌인 허만정이 찾아온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그 무렵 구인회는 진주 일대에서 포목점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동업이 이루어진 배경을 추측해볼 수 있는 소문이 있다.

 

'저 사람은 돈이 가는 길을 안다'.

 

진주 일대에서 소문난 장사꾼으로 이름이 짜했던 구인회에 관한 평판이었다. 그는 그 만큼 장사에 밝았다. 장사에 밝은 사람에게 돈과 사람을 맡기기 위해서 허만정이 찾아 온 것이다.

 

두 집안의 연원은 실로 오래 전부터이다. 동업사를 알기 위해선 두 집안의 연혁과 집안 관계, 사업의 뿌리 등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구씨ㆍ허씨 두 가문의 인연은 구인회 회장의 8대조인 구반공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반공의 부친이 현풍현감으로 재임할 때 진주의 만석꾼인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들었고 이후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원래 구인회의 조부 구연호는 홍문관 교리(校理) 출신이었다. 구인회의 집안을 지금도 고향에서 구교리 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씨 집안은 딱히 구분하자면, 조선후기 실사구시를 내세웠던 남인 계통에 속한다. 구연호 이전 몇 대까지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후기 정조(正祖) 사후 실학의 입장을 띤 남인들은 권력에서 밀려나며 풍비박산 된다. 그나마 구연호가 벼슬길에 오르게 된 것은 대원군의 당파 타파 정책 이후 남인 계열의 채제공이 영의정이 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당파가 치열했던 그 무렵, 허씨 집안은 반대파인 서인 계통이었다. 보통 같으면 극렬하게 맞붙어 둘 중 하나가 죽어야 싸움이 끝났을 텐데 이상하게도 두 집안 간에는 친교가 계속 이어졌다. 몇 대째 계속된 두 집안간의 친교는 화목의 근거가 됐고 두 가문이 계속해서 겹사돈을 맺는 배경이 된다. 이는 두 집안이 훗날 동업으로 손을 잡게 만들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LGㆍGS 두 그룹이 출범하는 계기가 된다. 몇 대를 뜸 들여 서로간의 신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동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도 여기서 부터이다.

 

구씨 집안에는 훗날 LG그룹의 창업자가 되는 구인회가 있었다. 그로부터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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