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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스무 살 청년 구인회의 도전

by 전경일 2013. 4. 3.

스무 살 청년 구인회의 도전

구인회는 1907년 8월 28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구재서와 진양 하씨 사이에 6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그는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6세 때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며 자란다.

 

13세가 되던 1920년 어느 날, 그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허만식의 장녀 허을수(1905년생)와 결혼한다. 조부 만회공 구연호의 셋째 딸이 허만식의 둘째아들 허인구에게 출가했지만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던 두 집안이 다시 한 번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전에 실패했어도 다시 사돈을 맺어보자, 이런 식이었다고나 할까. 이후 구씨와 허씨 집안은 무려 8건이나 겹사돈을 맺으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 간다.

 

결혼 후 구인회는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해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때가 1921년이다. 이 무렵 구인회는 훗날 대한민국을 이끄는 두 명의 미래 기업가를 만나게 되는데 삼성의 이병철과 효성의 조흥제가 바로 그들이었다. 세 살 아래인 이병철과 구인회는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고, 훗날 효성그룹의 창업주가 되는 한 살 위 조홍제와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축구로 교우 관계를 쌓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학교가 원래 훗날 GS그룹을 낳게 한 허씨 가문의 만석꾼 허준이 1921년에 땅을 기증해 설립된 면학 전당이라는 점이다. 학교가 세워지자마자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 미래의 경영자들은 함께 공부하는 인연으로 만나게 된다. 이처럼 허준이 기증한 땅에서 그들은 부자열전에 드는 꿈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키워 나갔고, 그 중 한명인 구인회는 허씨 가문과 평생에 걸친 동업 관계를 맺는다.

 

보통학교 입학은 구인회의 인생은 물론 기업가로 커나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가 맞이한 변화는 새로운 시대와의 조우였고 낡은 패러다임을 찢어버리는 개화의 물결 이었다. 구인회가 목도한 식민지 현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세상은 급변하건만 우리에겐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역량이 거의 없었다. 민족자본이 싹트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일제 강점기였다.

 

이 시기에 구인회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손위 처남 허선구였다. 그는 그때 이미 외지에 나가 새바람을 맞아들이고 있었고 중외일보(中外日報)를 경영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을 보는 눈도 남달랐다. 어느 날, 허선구는 매제에게 변화하는 시대를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며 보통학교에 편입하도록 권유한다. 장인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혀왔다.

 

1924년 봄 큰딸 구자숙이 태어날 때 구인회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처가의 도움으로 상경한다.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그 무렵 구인회는 학교에서 교내 독서 클럽에 가입해 시골에서는 볼 수 없던 방대한 양의 책들을 접한다. 그때 그가 어떤 책을 접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요즘말로 독서를 통해 다양한 지식과 세계관을 형성하고 미지의 세계를 꿈꾸게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독서경영의 원초적 경험을 쌓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공부한 지 2년만인 1926년 3월 구인회는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중퇴하고 만다.

 

1925년에 장남 구자경이 태어나면서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과 학비를 대주던 장인이 사망한 후로 유학생활이 어려워진 것이 그 이유였다. 조부가 차제에 유학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하라고 한 것도 낙향을 결정하게 된 요인이었다. 가장으로서 하루 빨리 독립해 뭔가 하고 싶다는 의욕이 일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여러 요인이 작용해 젊은 구인회는 새로운 인생길에 접어들 게 된다.

 

귀향한 구인회는 무엇을 할까 상념에 젖은 채 고향에 내려와 훌훌 세상을 둘러보았다. 이 시퍼런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은 많았지만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래도 사업! 그가 심혈을 기울여 하고픈 것은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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