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내일이면 내일의 바람이 분다

by 전경일 2013. 4. 22.

내일이면 내일의 바람이 분다

 

하신상업을 운영하던 시기, 구인회의 정신적 단련 여부를 엿볼 수 있는 한 일화가 있다. 1942년 봄, 다도해에 물고기들이 몰려들자 구인회는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배에 함께 올라탄다. 그런데 별일 없을 것 같던 배가 난데없이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한 밤 내내 파도에 떠밀리며 견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다들 불안해 떨며 잠 못 이룰 때 구인회는 태연하게 코를 골며 잘도 잤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불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볼 때 구인회는 터무니없이 태평한 사람으로만 보였다. 그가 대답했다.

 

"어쩌겠나? 이미 이리된 것을. 마음 편하게 먹고 뭐 재미나는 이야기나 하면서 때를 기다리세. 내일이면 또 다시 내일의 바람이 불 테니."

 

아직 대기업 LG호(號)로 발전해 가기 훨씬 전의 일이었지만, 이 젊고 야심찬 창업자는 대담함을 든든한 사업 밑천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업 초기 진주 남강이 넘쳐 포목점을 휩쓸고 갔어도 의연히 일어난 그였다.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아니던가. 김필수는 훗날 구인회의 이런 모습을 통해 많은 인생수업을 쌓았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이 일화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구인회의 말마따나 어떤 경우든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이 마지막 장면에서 뱉는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른다.”는 대사와 아주 흡사하다. 그 태양이 나의 것이든 타인을 위한 것이든,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늘 자체를 준비하고 잘 살아 내는 것이며, 내일 바람에는 내일의 운명을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운명의 바람은 끝내는 준비되고 성숙된 경영자를 그가 원하는 곳으로 인도해 줄 테니까 말이다.

 

사업자들에게 어떤 경우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기중심을 꽉 잡아야 하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다. 구인회의 말은 그에 관한 충고가 아닐까 싶다. 담연, 태연, 의연의 '연(然)'자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흔들리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경영자는 닻처럼 꿋꿋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구인회라고 한밤중에 파도에 떠밀리며 정처 없이 흘러가는 배 위에서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런 상황에서도 중심을 바로 잡을 수 있으면 생각 여하에 따라 파도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듯, 두려움보다 흥이 날 수도 있다. 요는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주도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영자의 심적ㆍ정신적 자세이다. 이런 걸 가리켜 경영자의 깊은 내공이라고 하지 않을까.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