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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개인과 공동의 목표를 동시에 잡아라

by 전경일 2013. 8. 14.

개인과 공동의 목표를 동시에 잡아라

팀웍과 개인별 기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경영이란 무엇인가

 

해녀의 물질은 철저하게 개별 작업이다. 개인의 역량과 노력 여하에 따라 수입이 정해진다. 그렇다고 바다에서 단독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하는 해녀들은 혼자 보다는 항상 무리를 지어 바다로 나간다. 서로 의지하며 변화무쌍한 바다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기업으로 말하자면, 리스크 관리 기법이다. 이런 이유로 개별 작업이어도 공동체적 정신이 작용한다. 어장의 관리나 어장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 또는 입어자격과 입어 날짜를 정하는 것도 모두 공동체적 작업이다. 해녀작업을 둘러싼 작업환경은 따라서 공동체적 의사결정이 뒤따르는 협업체적 성격이 짙다.

 

물론 여기에는 경쟁의 논리도 작용한다. 즉 남보다 더 빨리 넓은 지역을 헤엄쳐 다닐 때 소득이 많아지는 경쟁 환경 자체와 물질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규제’ 논리가 동시에 작용한다. 요는 이런 경쟁이 공동체 의식과 절묘히 합치된다는 점이다. 이 앙상불을 뭍의 기업 조직 운영에도 충분히 적용될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해녀 사회는 본질적으로 협업에 근거한다. 거친 바다와 싸우는 일 아닌가. 일테면 삶을 가져오는 작업환경이자, 반대로 삶을 죽음으로 전환시키는 적(敵)이 바다인 것이다.

 

해녀 사회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물질을 혼자 하는 건 아무리 소득이 많아도 금지된다. 물질을 하고 안하고는 개인 자유지만, 물질을 하러 나간다면 함께 나서야 한다. 해녀들은 반드시 같은 시간에 들어가서 같은 시간에 뭍으로 나온다. 불시에 닥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 같은 잠수 작업은 마치 스쿠버 다이버들이 꼭 지키는 ‘버디 시스템(buddy system)’과 같다. 다이버들은 안전을 위해 꼭 그룹핑을 해서 바다에 뛰어든다. 바다라는 환경 하에 상호의존적 협업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위험한 물 속에서의 공동 물질><사진자료: 해녀박물관>

 

해녀들은 안전을 최우선시 한다. ‘실적보다 안정이 중요하다(safety first).’ 이런 원칙은 세계적인 다국적 회사 듀퐁의 경영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듀퐁은 안전우선 주의하에 작업하고, 이를 전 세계 지사에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안전의식이 떨어지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도 없다. 재해율 0.0036%로 미국전체 산업계 평균재해율 2.15%의 60분의 1 밖에 안된다. 안전 제일주의를 철저히 지키기 때문이다. 해녀사회가 안전에 민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해녀들이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일은 물질 중에 동료가 목숨을 잃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안전 관리를 중시한다. 물질을 하러 갈 때 바닷가 옆의 뭇 무덤들을 볼 때면 해녀들은 더욱 겸손하고, 삶의 숙연한 자세를 갖게 된다.

 

해녀는 해녀마을 사람답게 사는 방법이 따로 있다. 어촌사회다운 공동체적 결속이 함께 한다. 농사만 짓는 순농촌과는 달리 세시풍습이 해마다 되풀이되며, 해녀회(潛嫂會)라는 자생적 집단의 합의에 따라 해녀 사회의 규율을 스스로 마련하고 관행을 지켜 나간다. 다른 마을로 시집가면 친정마을 바다에서 물질할 권리를 빼앗긴다든가, 혼자만 입어하는 일을 삼간다든가, 하는 것도 이런 규율이 반영된 결과다. 해녀마을은 대부분 반동반어(半農半漁)로 순전히 농사만 짓는 마을에 비해 공동체 의식이 훨씬 강하다.

 

해녀 사회의 특징은 공동 목표를 지향하면서도 나름 경쟁의식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개의 상반된 ‘이해(利害)’가 조화를 이루는 게 놀랍다. 톳 채취는 공동입어, 채취, 판매, 분배 대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산물은 각자 채취하고 채취한 양에 따라 소득도 달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공동의 성과와 개인별 성과가 공존하면서도 전체의 이해를 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조직과 개인의 균형이 잘 맞춰져 있다. ‘조직 먼저’지만, 개인의 독자적인 경쟁력은 철저히 보장해 준다. 마치 경영현장에서 요구되는 팀웍과 개인별 기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다. 해녀 사회가 원시적 경영조직이나 관리 체계가 아닌, 21세기형 능력주의와 팀웍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데서 잘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물질하는 해녀들은 삶의 경영현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 문화를 쌓고 지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영학이나, 조직운영에 대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해녀들은 어떻게 이런 지혜를 쌓게 되었을까? 삶은 지혜를 가져온다. 해녀사회를 보면 불현듯 무릎을 치게 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