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배려가 투자다

by 전경일 2013. 9. 9.

미래를 위한 투자, 해녀들의 배려 문화

해녀 사회의 배려의 문화는 오늘날 기업이 추구하는 상생의 조건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역량의 한계를 보이며 자연히 성과는 하향 곡선을 그린다. 물질에도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체력이나 판단력 면에서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녀는 험한 물질이라는 직업 특성상 어느 직업보다 몸이 상하기 쉽다. 해녀들은 대략 15살에 물질을 시작해 나이가 들고 경험이 노련해지면 상군, 대상군이라 불릴 정도로 최상의 역량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느 직종과 마찬가지로 해녀라고 해서 영원히 대상군으로 남을 수는 없다. 세월에 따라 몸이 말한다. 물론 같은 해녀로 출발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하군에만 머무르는 해녀도 있다. 노력 여하와 관계없이 능력에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잘 나갈 때, 어렵고 힘든 시기를 준비하는 것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공통적이다. 기업이 위기관리를 잘 하고, 지금 잘 나갈 때 새로운 도약을 위한 혁신의 노력을 한다든지, 새로운 성장분야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뭍의 직장인의 삶도 이와 같다. 평균 50대에 퇴직을 한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 평균 연령상 적어도 앞으로 30년 동안은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해녀 커뮤니티는 은퇴 이후를 어떻게 준비할까? 이들은 해녀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역량이 떨어지거나 나이든 해녀에 대해서는 뭍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무한 경쟁 논리와 달리 철저하게 배려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운영 방식도 장기적이고, 인간애적이다. 제도와 관행, 조직 면에서 나만 못한 사람들과 은퇴 시점이 다된 해녀들에 대해 배려하는 든든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해녀 커뮤니티의 배려 문화는 나이 들면 험한 물질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다. 모두 언제고 능력이 줄지 않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비교적 경쟁열위에 있는 사람들을 소외감에 찌들지 않도록 한다. 그런 차원에서 뭍의 경쟁논리와 다르다. 능력이 떨어지는 해녀들에 대해서는 더 높은 차원의 도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에 맡는 일이 주어진다. 예컨대, ‘파래좀수’, ‘볼락좀수’, ‘퍼뜩발’, ‘세발짜리’, ‘고망좀수’ 같은 하군 해녀들에 대해서는 능력에 맞는 바다에서의 작업이 주어진다. 누구라고 목숨을 걸고 먼바다로 가나고 싶겠는가마는 이런 배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해녀들이 정한다기 보다 바다가 철저하게 역량에 따른 일자리를 제시한 것 아닐까 싶다.

 

예컨대 마라도 같은 곳에는 환갑을 넘긴 할머니들만 입어할 수 있는, 안전하고 해산물이 풍부한 어장이 따로 있다. 이를 ‘할멍바당’이라고 부르는데, 할머니 해녀들만 물질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그 점에서 약육강식의 경쟁논리만 판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미가 물씬 풍겨난다. 물론 그 혜택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떨어질 때면 자신이 누리게 된다.

‘할망바당’에 대한 배려는 규범화되어 있어 향약 31조에 명시될 정도다. 서로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배려의 문화가 해녀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할머니 해녀를 위해서는 ‘벼랑’이 덜 가파르고 미역을 비교적 쉽게 캘 수 있는 어장이 보장돼 있다. ‘할망바당’의 수혜자는 할머니뿐만 아니라, 생계가 어려운 병약자나 독신 총각까지도 해당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게 해주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역량이나, 여건이 허락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손쉬운 바다는 양보하고, 상군, 대상군들은 먼바다로 나가 채취한다.

 

능력이 떨어지는 하군들을 위한 바다밭도 따로 있다.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마을에는 할머니 해녀의 단골 바다밭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평균 수심 2~5m 밖에 안돼 어린 해녀들이나 멀고 깊은 바다밭에서 일할 수 없는 할머니 해녀들을 위한 바다밭이다. 연어처럼 해녀로써 한 인생이 낮은 바다에서 시작해 중군ㆍ상군이 되면 먼 바다에 나갔다가 다시 낮은 바다밭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해녀 사회의 기본 정신도 공존, 공영, 공익이다. 이 공동의 사업 환경을 함께 가꾸고, 이를 지켜 나가는 게 우선순위이다.

 

언젠가 자신도 늙고 기력이 부치게 되면 찾게 될 보험을 미리 부어두는 것과 같이 젊어서 베푼 배려는 되돌아온다. 노약자를 위한 배려의 문화를 보면, 어느 현대 조직의 배려문화도 따라오기 힘들다. 인생사가 그렇듯, 경쟁도 있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의 문화는 오늘날 기업이 추구하는 상생의 조건이다. 해녀 사회는 이처럼 말에 그치는 공존이 아닌, 실질적 공존이 무엇인지를 뚜렷히 보여준다. 우리가 배워야 할 대목 아닐까.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