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물과 뭍에서 이루어지는 해녀 경제 공동체

by 전경일 2013. 9. 26.

물과 뭍에서 이루어지는 해녀 경제 공동체

해녀는 바다의 경영 리더이자, 뭍의 경제인이며, 교육자이다

 

삶의 조건이 척박하면 무너지는 사람도 있고, 굳은 의지로 다시 곧추서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의 척박한 환경과 열악한 삶의 조건은 살면서 ‘큰 일’을 당할 때 상호 협력하는 공동체 경제 시스템을 고안해 냈다. ‘접’과 ‘모둠’이 바로 그것이다. 공동체 일원끼리 갑자기 발생하는 어려움을 공동으로 풀어 나가기 위해 만든 상호 부조는 제주의 척박함을 넘게 한 힘이 됐다.

 

일테면 상(喪)을 치룰 때 어려움을 넘는 쌀접ㆍ단포접, 혼수품을 마련하는 단수계ㆍ이불접 등이 있다. 또한 하루 한끼 식량에서 조금씩 덜어내 비상식량을 모으는 ‘냥대바지’가 운영되기도 했다. 이 같은 마을 단위 비축미 제도는 지역 단위의 저축제도로 발전되기도 했다. 특히 ‘돈계’는 60년대 후반까지 제주의 젊은이들이 뭍으로 유학을 떠날 때 자녀들의 학자금마련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 시기 돈계는 가장 흔한 소규모 금융 시스템이었다. 또 밭일을 함께 해 나가는 ‘수눌음’, 함께 고기잡이를 하는 ‘그물접’ 등이 있었다. 명실상부 뭍과 물에서 동시에 진행된 공동체적 경제가 척박한 환경을 넘어서게 한 힘이 됐던 것이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이들은 무엇을 했을까? 마을 단위로 공동목장을 구입하기도 했고, 마소를 공동으로 방목하기도 했다. 보다 적극적인 경제 활동 차원에서 마을 단위로 돈을 모아 목장을 구입, 운용한 것. 이를 ‘목장계(접)’라고 한다.

 

뭍과 물의 경제가 어우러진 제주사회였지만, 특히 해녀조직인 ‘잠수회’는 제주 여성의 저력을 보여준 가장 모범적인 사례에 속한다. 제주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은 것은 물론, 활발한 지역 공동체 활동을 전개했다. 잠수회는 힘들게 물질을 해서 모은 돈으로 해방 후 지역에 초등학교 및 마을 공동 시설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자원을 마련키 위해 이들은 마을의 공동어장 한 구역을 떼어내서 ‘학교바다’란 이름으로 거기서 나오는 미역 판매금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남제주 지역 대부분 마을에 초등학교가 세워진 것은 바로 해녀들의 이 같은 공헌 때문이다.

 

이런 자립적 경제운용 시스템으로 제주경제는 적잖은 버팀목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성가한 자녀를 위한 ‘안거리살림’과 ‘밖거리살림’를 구분해 집안의 고방은 안거리에 두되 실질적인 식량창고는 두 곳에 두어 두 공간이 자유의사에 의해 가정경제를 운용하도록 했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가계를 최소단위로 나눔으로써 생산성을 최적화 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효율성 중시와 자율적 운영 시스템으로 부모 자식간 경제적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나아가 이런 분권화, 자율화, 독립성으로 자기 책임 하에 가계가 운영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기업들의 분사제도나 소사장제 성격이 짙다.

 

어느 조직이나 정해진 자원이 어느 정점에 집중되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한다. 제주 사람들은 이 같은 지혜는 물과 뭍에서 부족한 자원을 쪼개고 모아 새로운 삶의 재원으로 만든 것 이외에도 보다 탄력적인 가계경제를 운영했다는 면에서 현대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공동의 노력으로 공동의 바다밭을 운영하여 공동체에 기여한 점은 오늘날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적인 모습에 해당된다. 해녀가 바다의 경영 리더이자, 뭍의 경제인이며, 교육자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