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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관리/LG,GS동업비결_구씨,허씨이야기

서로 다른 산업을 엮어내는 컨버전스의 힘

by 전경일 2013. 10. 17.

서로 다른 산업을 엮어내는 컨버전스의 힘

 

미래형 산업이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마치 삶이나 역사가 어느 정해진 공식대로 움직이기보다 생존에의 방향으로 무한 뻗어 나가듯이 기업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방향으로 본능적으로 움직여 간다. 그러다보니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기회가 찾아오곤 한다. 관련 없던 이종 분야끼리 결합되며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 진다. 하이브리드니 컨버전스니 하는 말도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산업 탄생 과정이 하나의 세력을 만들고 나면 넘치고 그러면 또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여정을 떠나는 유목민적 삶의 전략과 비슷하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끼리 상호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면 어떨까? 산업은 이종 간 결합도 가능하지만, 이종을 배태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LG 발전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초기 크림 뚜껑을 만드는 데에서 훗날 금성사(LG전자)의 줄기가 뻗어 나오는 계기가 되는 것도 알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1957년경에 들어서자 국내 플라스틱 업계는 치열한 경쟁 양상을 보인다. 뒤늦게 뛰어든 군소후발주자들의 도전으로 기존 업체들조차 안정적 성장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경쟁은 가격 상의 우위를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이때가 되면 시장은 부가가치를 더 올려야 하거나 다른 산업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플라스틱 분야에서 경쟁이 격화되자 구인회는 전자부문으로 사업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여기에는 많은 자료 연구가 선행됐다. 경쟁분야가 아닌 새로운 신 시장을 뚫기 위해 구인회는 1956년 3차 생산시설 확장을 계기로 열경화성수지의 제조와 가공을 하는 금성 산업을 설립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공업회사이다.

 

구인회는 우연한 기회에 락희화학 서울 사무소의 윤욱현 기획부장과 투자 방향에 대해 얘기하다 책으로도 보고 말로도 들은 전자 산업이 유망하다는 점에 착안, 라디오를 생산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라디오 몸체(박스)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고, 우리는 플라스틱 식기류를 생산하는 등 플라스틱 사출 기술은 확보되어 있다. 그러니 그 안에 들어갈 기술과 부품을 확보하기만 하면 된다.'

 

어찌 보면 주객이 전도된 듯 한 생각이지만 작은 해법을 발판으로 미해결된 더 큰 분야를 개척하려는 구인회다운 생각이었다. 즉, 소규모의 성공을 디딤돌로 대규모의 성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타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성사가 라디오 몸체 안에 들어가는 기술에 대해 전혀 무지인 상태는 아니었다. 금성사에서는 이미 전기 소케트 등의 전기부속품을 생산하는 기술을 미약하나마 보유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기술력이 '우리가 되겠어?'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불을 지핀 것이다.

 

구인회는 금성 산업 기획담당 윤욱현 상무와 4개월간 일본과 홍콩을 거쳐 구미 9개국의 전자산업현황을 시찰하고 돌아온다. 귀국 후인 1959년 2월 구인회는 '금성 산업'을 '금성사(Gold Star)'로 개편하고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 차비를 보인다.

 

그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여행인 구미 시찰에서 구인회는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알다시피 '금성(金星)'은 영어로는 비너스(Venus)이다. 일본 소니가 워크맨이란 조어를 만들어 냈듯이 구인회는 'Gold Star'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 상호에는 구인회의 비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것은 훗날 해외 수출시 한국경제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국민 브랜드로 성큼 자라난다. 구인회는 금성사를 통해 미지의 거대 세계로 뻗어 나가는 그룹의 비전을 미리 보았던 것은 아닐까?

 

초기 회사명을 정할 때 구인회는 왜 '금성'이란 상호를 사용했을까? 그것은 금성이 "무궁함을 상징할 뿐 아니라 별이 갖는 화려함과 신비성이 있고 '골든 보이스'란 말처럼 오디오 제품의 이미지에 맞았기 때문"이다. 항구적으로 존속하고 번영하길 기원하는 창업자의 마음과 전자 기술적 의미가 결합되어 상호에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변신을 통해 이 야심찬 기업가는 경영학적 면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보여 주었을까? 그것은 이종 분야로의 진출과 거기서 얻어진 성과의 확대 재생산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구인회는 5척 5촌의 짧은 체격이었다. 체구 어디에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없다. 그가 다른 점이 있다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던 점 말고는 없다. 그런 그가 LG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배경에는 어떤 원칙이 작용한 것일까? 훗날 2대 회장이 된 구자경은 이점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흔히 대기업의 경영방식을 일컬어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표현으로 국민들이 많은 비난을 해왔지만, 그 이면에서는 우리 나름대로 말 못할 고민도 많았다. 물론 60, 70년대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나날이 늘어나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사업가 입장에서 그냥 놓쳐 버릴 수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다. 또 신사업, 성장사업, 성숙사업으로 사업의 성장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그 부침이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여 위험부담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다양한 사업에 진출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럭키금성의 경우에는 소위 먹고, 자고, 마시는 사업은 사업가로서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창업회장의 의지가 창업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업 방향 결정에 있어 중요한 지침이 되어 왔기 때문에, 어느 그룹보다 제조업이 비중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제조업인 화학, 전기ㆍ전자 두 부문의 매출액이 줄곧 그룹 전체 매출액의 80 퍼센트를 차지해 왔다."

 

이것은 LG가 성장 원칙으로 제조분야에 집중했고 그 두 축을 화학과 전자 분야로 집중해 낸 것을 뜻한다. 그 방식은 성공의 확대 재생산과 연결전략이었다. 동떨어진 산업을 엮어내는 컨버전스의 힘, 구인회는 이 둘을 강력한 제조업 우위로 묶어냈다. 이를 통해 긍정적 조건은 성공의 결과가 되고 이는 더 큰 확장의 근거가 되며 발전적 사이클을 만들어 냈다.

 

이런 야심찬 계획에 뛰어 들었지만 처음부터 성공이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엄청난 시련과 회의가 철벽처럼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