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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바다에 미치다

by 전경일 2013. 12. 2.

바다에 미칠 정도의 직업의식

미칠듯 작업현장을 그리워하는 직원들이 있는가

 

농사와 물질은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농사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김매고, 가꾸고, 기다려야 한다. 오랜 기다림의 연속이다. 하지만 물질은 즉각적이다. 생산물을 획득하는 과정이 단박에 결판난다. 한 번 무자맥질할 때마다 캐어지거나, 못 캐거나, 소득이 얼마가 될지 즉각 판가름 난다.

 

바닷속을 누비며 전복이라도 찾을 때면 생산의 즐거움은 곧바로 찾아온다. 그래서 위험천만한 바닷 속 일이지만 해녀들은 보람을 느낀다. 게다가 물질 자체가 다분히 모험적이다. 벤처기업적 성격이 있다. 물질 나가는 해녀들이 자나 깨나 바다 속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다에 미칠 정도의 직업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맥질할 때마다 누리는 스릴이 해녀들을 물질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해녀들은 바닷 속 기묘한 풍경을 청사진 펼치듯 구경한다. 눈만 감아도 앞바다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할 정도다. 중국 발해만의 대련(大連)까지 물질을 다녀온 해녀는 지금쯤 전복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혹시 누가 캐기라도 했는지 아쉽게만 여겨진다고 한다. 밭일을 하다가도 동산에 올라 멀직히 바다를 내다보면 눈앞에 바다밑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폭풍주의보라도 내려 물질을 할 수 없게 되면 “파도에 드러누울 정도로 속이 상한다.“고 한다. 생계의 갈급함이 가져온 격함이겠지만, 한편으론 무엇에 빠져들었을 때의 몰입감이 물질에 함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몰입의 경지는 일에 매진토록 만들고, 일을 즐기도록 만든다. 위험하지만, 삶을 위해 떨쳐나서게 한다. 피할 수 없기에 즐기지만, 즐기다보니 더욱 신명이 난다. 프로직업 의식이 몸에 밴 것으로 볼 수 있다.

 

뭍에서는 온갖 잡다한 생각과 삶의 거친 환경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바다에 풍덩 뛰어들면 거기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해녀들이 밭일보다 물질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프로세계에서 흔히 나타나듯, 집안에 있으면 온 몸이 찌뿌둥하고 쑤시지만, ‘테왁’을 걸머지고 바다로 내달릴 때에는 신바람이 난다. 바다에 뛰어들면 이내 몸이 쑤시던 것은 어느새 사라진다. 몸이 아파도 차라리 물질에 뛰어들겠다는 게 이해될 법 하다. 해녀들에겐 삶의 고통이 신명으로 거듭난다. 그런 신명은 삶의 고단함을 녹여 물질에 나서게 한다. 현실의 고통이 오히려 휘파람을 불며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경영 리더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여싸나 이여싸나

어떤 사람 복도 좋아

앉아 살리 우리네는

바람일랑 밥으로 먹고

구름으로 똥을 싸고

물결일랑 집안 삼아

부모동생 떼어 두고

오늘날도 물에 든다.

 

해녀들의 노래를 드을 때면 자연과 더불어 하나된 삶을 보는 듯하다. 일의 환경은 벅차고 고되나 바다 속에서라면 일도 나의 일부가 된다. 아무리 험한 세파가 몰아쳐도 일이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즐길 대상이 된다. 이 점은 아마 해녀들만이 누리는 해택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녀들의 물질이 휴양객의 레포츠처럼 즐기기만 위한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소득이 없으면 삶의 조건은 힘들어 진다. 따라서 즐거움은 생계를 위한 활동에 뒤따라오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일은 고되다. 오죽했으면 예전엔 “잠수(潛嫂) 먹성 밭갈소 먹성”이라는 속담이 전해질 정도였겠는가. 그만큼 물질하다보면 쉬 허기졌다. 밭가는 소처럼 먹성이 세다는 말은 역으로 해녀들의 일의 얼마나 고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인가. 마라도 해녀들은 남자들이 여자만큼 먹지 않는 것을 두고, “그렇게 일을 하지 않는데 어찌 밥맛이 있겠나.”며 오히려 남자들의 생활에 대해 동정하듯 말하기도 한다. 물론 빈둥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속이 상하면 저렇게 놀고 마실까? 속 편한 이는 안논다.”고 역설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문득, 당나라 고승 백장선사(百丈禪師)가 일갈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불로불식(不勞不食)이란 말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바닷속 세상은 어둡다. 앞뒤로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때로는 상어가 출몰해 작업을 중단하기도 한다. 바다 속 깊이는 삶의 깊이만큼이나 깊고, 헤아릴 수 없다. 그런 어려움과 난관을 딛고 얻어내는 보람은 남다르다. 해녀들은 바다에 영혼까지 젖어들어 있는 사람들이다. 일에 대한 이 정도의 몰입감이라면 못해낼 것이 없다. 프로들의 세계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경지인 셈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