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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

요동확보는 제국발전의 핵심요소

by 전경일 2014. 2. 26.

요동확보는 제국발전의 핵심요소

 

고구려가 제국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결정적 계기는 태왕이 요동을 확보하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동북아의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요동은 풍요로운 곡창지대이면서 동시에 철의 산지이다. 개평(蓋平)·해성(海城)의 철광(鐵鑛)과 은광(銀鑛) 및 염산(鹽産), 그리고 요양 부근의 철광은 군사력 유지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요동을 장악하면, 동시에 이 두 자원을 모두 확보하게 되고 그만큼 전략적으로 우위를 지닌다.

 

전략적 요충지인 요동을 장악하기 위해 태왕은 원년(391년) 7월에 대(對)거란 군사행동을 개시한다. 이는 요동쟁탈전에 있어 거란과 모용씨가 연계해서 공격해 올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거란에 대한 고구려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들 두 세력이 힘을 합치면 위협적일 수 있으므로 요동장악의 걸림돌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이때 태왕이 친 거란은 가비능(軻比能)을 원조로 하는 선비(鮮卑)의 한 분파였다. 원래 시라무렌(Sira Muren) 유역과 라오 자무렌(Lao-Xamuren) 유역인 요해 지방(遼海 地方)에 분포하여 살며 수렵·어로 및 말 사육(馬飼育)에 종사하던 유목민족이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8년(378년)에 거란족과 첫 접촉을 하게 된다. 그리고 태왕 원년(391년)에 고구려는 이들에 대해 제1차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이들은 북위(北魏) 때에 이르러 고구려의 압력이 가중되자, 그중 일부집단이 대능하(大凌河) 유역의 요서방면으로 이동한다. 이들이 훗날 정복왕조인 요(遼)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유목민의 역사에 줄곧 등장하는 중앙으로의 진출 기회가 거란족에게도 부여되었던 것이다.

 

고구려는 395년 ‘대거란 시라무렌 유역 방면작전’을 단행함으로써 거란에 대한 고구려의 우위를 재차 확인한다. 동시에 대(對)모용씨 공동전선을 구축한다. 이 사실은 모용희(慕容熙) 생전 세 차례의 대(對)거란·고구려군사행동 중에 두 번이 거란·고구려에 대한 군사행동이었다는 점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때 대(對)거란 시라무렌 유역방면 작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태왕의 귀환로가 □성(□城))을 통과해 역성(力城)을 지나 북풍(北豊)을 경과하는 행군로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지역이 바로 양평도(襄平道)이다. 양평(襄平)은 역성과 더불어 요동군 8개 속현에 속하며, 북풍(심양 서부)도 요동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태왕은 귀경로상에 위치한 제성들을 순례하며 토경을 확인하고(유관토경遊觀土境), 사냥도 하면서 돌아오는(전렵이환田獵以還) 길에 자신의 통치영역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대(對)거란 작전이 전개된 391에서 395년은 고구려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이 시기에 고구려는 정치, 군사적 경쟁 우위를 강화하고, 경제적 요충지인 요동을 얻게 되는 것이다. 명실상부한 제국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점과 면의 정책 중 특히 축성(築城)을 통한 면(面)의 확대 정책이란 카드를 내민 것이다.

 

태왕은 이 같은 정책에 따라 요동성(遼陽, 즉 襄平)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 신성(新城), 목저성(木底城), 남소성(南蘇城), 안시성(安市城, 遼寧省 英城子, 즉 舊海城縣), 건안성(建安城, 요령성 개평현 동북의 고려성자), 개모성(蓋牟城), 백암성(白巖城, 요령성 요양현 小附村의 岩州城), 비사성(卑奢城, 요령성 金州의 馬家屯會) 등 수많은 성과 산성을 구축, 군사 거점화한다. 고구려 전개의 최전선으로써 제성은 요동을 얻고, 지키기 위한 전략의 세부 실행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 요동을 발판삼아 고구려는 영주(營州, 즉 朝陽)를 거점으로 하는 북위(北魏)를 견제하고, 요서지방에 교두보를 확보한 백제와도 각축을 벌였다. 이처럼 요동은 고구려 제국의 성장 엔진이었다. 요동은 고구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우선 요동을 얻게 됨으로써 고구려의 자원역량이 크게 강화된다. 이것은 고구려의 제국 운영 능력이 더욱 확대된 것을 뜻한다. 요동 정벌은 이처럼 비전과 전략이 최적의 전술과 실행력을 만나 현실경영의 성과로 부각되는 것이다.

 

요동은 고구려 제국을 움직이는 또 다른 심장이다. 이것을 잃으면 우리 민족은 하나의 심장으로 세계를 응시해야 하는 불안감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반면에 얻었을 때에는 중국의 코앞까지 우리 세력을 뻗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중국 한족의 방어는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태왕의 고구려군은 고토회복의 경영 미션과 실질적 이해를 갖고 이를 넘어섰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