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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산울림인지, 산울음인지

산울림인지, 산울음인지

모두가 외면해도 산은 끝까지 맞장구를 쳐준다.


덕유산 산행에서 만난 인영신 사장은 메아리 예찬론자다. 산은 무슨 얘기를 쏟아내든 다 들어주고 맞받아준다는 것이다. 메아리와 함께 수다를 떨면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고 나면 속이 다 후련해진단다. 산을 좋아하는 동기는 수 갈래로 난 등로만큼이나 많고 오르는 사람만큼 많다지만, 인 사장은 좀 특이했다. 그는 산에서 포효하는 소리에 적잖이 매료된 듯하다.


“사업에서 실패하면 자연히 집에서도 주눅이 들고 말에 령(令)이 서지 않게 됩니다. 지나가는 동네 개도 본척만척하지요. 사업에서 실패해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산에 올라 소리를 질러봤어요. 소리를 지르니까 후련하더군요. 노래방에서 흐느적거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죠. 내가 소리를 지르면 산이 받아서 되울려주고, 그 소리에 내가 우는 것인지 산이 우는 것인지 마음속에서 울컥한 것이 토해지다 가라앉는 느낌이 들더군요. 내 안에 또 다른 나, 어디 가서 한번도 속 시원히 울어보지 못한 내가 있는 거예요. 산은 내가 우는 소리를 묵묵히 다 받아주더군요. ‘그래 울어라, 여기서 다 울고 내려가거라. 산 아래에선 다신 울지 마라. 속 시원히 다 풀고 마음 헹구고 가라.’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실컷 울었죠. 원도 한도 없이 울고 나니 하늘이 다 푸르딩딩하게 보이더군요.”


인 사장이 산을 찾게 된 것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대한민국 산업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던 그의 회사는 아무리 애를 써도 대기업이 정한 마진만 취할 수밖에 없다 보니 가까스로 인건비나 따먹는 형편이었다.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은행 대출이자밖에 없었다. 더구나 대기업이 몇몇 업체를 경쟁시켜 가격을 조절하는 터라 뒷돈을 박다 보면 영락없이 잔칫집 개 신세였다.


잔칫집 개는 그나마 떨어진 고물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지만, 잔치가 끝날 때까지 문 밖에 서서 목 빠지게 기다려야 하는 하청업체로서는 죽을 맛이라는 것이다. 20년을 거래했어도 담당자나 임원이 바뀌면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집 앞에 찾아가 아양을 떨어야 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돌아설 때는 바람이 쌩쌩 부는 대기업 사람들을 만나면 늘 ‘을의 사람’으로 남아 있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나마 경기가 좋을 때는 직원들 월급봉투라도 채워줄 수 있어 참을 만했지만 경기가 하락하고 나자 그의 회사는 보란 듯이 팽 당했다고 한다.


“그 회사 방침이 바뀌어 퇴직 임원을 위한 자회사를 만들고 나니 막다른 골목에 떡 허니 서게 되더군요. 층층시하가 되니 이제는 그 구매대행사를 통해 납품하느라 전떼기 장사가 되어 버리더군요. 요령 있는 직원들은 슬그머니 그 회사로 옮겨가고 하나둘 경쟁업체가 문을 닫기 시작했죠. 대기업, 대기업이라... 한국에서 어디 대기업 이길 중소기업 있나요? 뭐 좀 될 듯하면 구멍가게까지 치고 들어오는 게 대기업인데. 말이 자영업자지 그 회사의 개만도 못한 게 우리 신세입니다.”


인 사장은 울화통이 터진다며 등산 재킷을 벗어던졌다. 치고개가 저 앞에 있었건만 그는 하다만 얘기의 끝을 보려는 심사다. 그의 등짝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솟아났다. 불현듯 나는 오래 전 시골집에서 키우던 소가 떠올랐다. 밭 갈고 모내기 하고 나무하고 타작마당에 짐 옮기고 눈길 헤치며 장터가고... 힘든 노역을 할 때마다 소의 등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솟았다.


“이러다 빚에 모든 게 넘어가고 말겠구나 싶어서 다 털고 지금은 조그마한 소매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목 좋은 곳을 찾다보니 대기업들이 모여 있는 오피스 근처로 가게 되더군요. 대한민국에서는 먹고살려면 대기업 언저리에서 놀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죠. 납품을 하든 구두를 닦든 식당을 하든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는 속이 좀 후련해졌는지 천천히 재킷을 꿰었다. 주말이면 대기업이 들어찬 시내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주5일제를 하게 되었다는 인 사장은 얼마 벌지 못해도 이렇게 산에 올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물었다. 

 

“산에는 왜 오십니까?”


“산은 뭐든 받아들이잖아요. 바람도 좋고 시커멓게 썩어 들어간 속을 땀으로 쏟아내서 좋지요. 혼자 있는 것도 좋고, 이렇게 동행인을 만나면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좋지요.”


그는 산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듯 ‘좋고’ 시리즈를 연발했다. 이래저래 산이 좋다는 인 사장은 배낭을 챙기며 우리 일행보다 앞서 일어섰다. 앞서가던 그가 여러 번 기합을 넣자 뒤의 산꾼이 한마디 퉁을 쳤다.


“여보쇼. 산짐승들 놀라겠소. 우리한테는 주말이지만 저들한테는 불안한 날일 수밖에 없잖소.”


그는 개의치 않고 연거푸 소리를 지르다 제풀에 그치고는 산길 모퉁이로 사라졌다. 오늘밤, 우리는 산장의 고요 속에서 이 어둑시니 같은 밤을 맞이하기로 되어 있다. 자연만이 억만 겹 말없이 놓여 있는 적막의 산에서 말이다. 이보다 더 크게 영혼을 울리는 메아리가 어디 있을까. 산은 밤이 되면 벙어리처럼 몸으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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