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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새롭고 남다른 등로를 찾아

새롭고 남다른 등로를 찾아

작아져서 비집고 들어가라. 거기서 새로움을 맞이할 것이다.


천길 낭떠러지 벼룻길(아래가 강가나 바닷가로 통하는 벼랑길)을 헤쳐 나갈 때, 된비알(몹시 험한 비탈)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를 때, 너설(험한 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삐죽 나온 곳)을 조심스럽게 지나 갈 때, 몸 하나 간신히 붙이고 자드락길(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건널 때, 어녹고 있어 휘딱이게 되는 얼음길을 내디딜 때 우리는 그 길이 탐탁지 않아도 길이라 부르며 걷는다.


길을 탓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길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지나갔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누군가가 통과한 길을 두고 길을 탓한다면 그건 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길을 만나면 그 길이 어떻든 반가이 맞아야 한다. 성난 길, 화난 길, 뿔난 길, 모난 길, 굽은 길, 막힌 길, 성한 길, 무너진 길 모두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자신의 길을 놓아야 하는 산꾼 경영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인생과 사업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누가 놓아준 길이든 길이 있으면 마냥 고맙다. 그 길을 걸으며 산꾼 경영자는 자신의 길을 새롭게 놓는다.


산 위보다 산 아래에서 생존의 길을 놓아야 하는 경영자들은 탄탄대로는 아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어떤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시밭길도 헤치고 막힌 길도 뚫고 간다. 없는 길은 놓으며 간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지닌 의지, 헤쳐 나가려는 전략은 늘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늘 뻥 뚫린 길만 앞에 놓여 있다면 무슨 감흥이 일겠는가? 간신히 손톱 하나 걸칠 수 있는 가파른 절벽에 몸을 의지하며 쉼 없이 가야 투지도 더해지는 법이다. 그래도 내가 겪은 어려움이 후발주자에게도 똑같이 진입장벽이 되어준다면 그만한 고생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독점적으로 먹을 수 있는 과실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것 아닌가!


암벽등반을 하듯 자기분야에서 온갖 간난고초 끝에 사업을 일궈낸 홍대웅 사장은 깎아지른 절벽을 보면 달라붙고 싶어진단다. 그리고 어디 비빌 틈이라도 있으면 그걸 붙잡고 오르기부터 한다. 허공을 밟고 올라가라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 아니냐고 말할 정도다. 참으로 사업을 악착같고 억척스럽게 일궈낸 사장다운 투지다.





“사업이라고 하면 모두들 거창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사업은 대로(大路)를 지나는 게 아닙니다. 소롯길이나 개미 하나 지날 만한 길 같지도 않은 길을 간신히 통과해 정상까지 오르는 겁니다. 쑤시고 비집고 들어가는 거죠. 없는 틈도 만들어내야 하고 빈틈은 용케 찾아내야 합니다. 실오라기 하나라도 통과할 만한 틈이 있다면 닫히기 전에 잽싸게 틈입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업의 길을 뚫어나가는 겁니다. 대기업이 기술과 자본력으로 방어벽을 친 모든 사업 영역에서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눈 시퍼렇게 뜨고 아주 가는 길이라도 놓아야 합니다. 그 길에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 비즈니스 모델을 힘차게 박아 넣어야 합니다. 호시탐탐 경쟁사가 머물고 졸 때를 기다려 조용히 침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정상에 진입하고 나면, 더는 오합지졸로 보지 않게 될 겁니다. 승리하기 위해선 피터지게 싸워야 하죠. 조그마한 바위조각이라도 붙잡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사니까요.”


대기업에 다니다 10년 전에 창업한 그는 막상 대기업에서 나오고 보니 대기업의 울타리가 보통 높은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안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밖으로 나오자 자신이 온갖 방어벽이 둘러쳐진 곳에서 생활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안에서 배운 것으로 안을 공략해야 하는, 안의 틈새를 치고 들어가야 생존할 수 있는 사업목표가 그 앞에 숙명처럼 놓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밥은 고사하고 절벽에 매달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안에서 배운 것은 안을 이해하고 도모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특허의 장벽을 넘어서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험난한 등로를 오르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는 3년 넘게 관련 특허를 분석해 가까스로 두터운 암벽을 타고 넘어갈 루트 하나를 개발했다.


“그 촘촘한 특허의 그물에 그만한 개미구멍이 있으리라고는 상대 회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쩌면 너무 좁은 틈이라 간과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전 세계에 특허 등록을 하고 기술개발에 들어가 상용화했을 무렵, 대기업은 득달같이 특허 침해 소송을 걸어왔다. 홍 사장은 방어 전략을 펴 가까스로 합의에 이르렀고, 특허를 상호 교차해 사용할 수 있게 범위를 넓혔다. 그제야 하청업체로도 받아주지 않던 대기업은 홍 사장을 당당한 파트너로 인정했다. 당연히 매출도 뒤따랐다.


“만일 내가 그 등로에서 편한 길을 택했다면 아예 진입조차 못했을 겁니다. 찾아가서 아쉬운 소리 해봐야 문전박대당할 게 뻔했죠. 기술 분야에선 특허라도 걸어놔야 어느 정도 교섭력이 생깁니다. 그러니 철벽을 뚫고 들어갈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길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아요. 그럴 땐 직원들과 함께 마른하늘만 쳐다보게 됩니다. 고사목처럼 말라죽게 되는 거죠.”


이 악물고 일궈낸 그의 사업은 안정궤도에 진입했고 그는 더 큰 산을 오르려 준비 중이다. 기술 기반 사업에서는 작은 산, 즉 가까스로 쌓아올린 산에 머물다간 누군가가 자신을 늘 주시하고 내려다보는 것 같아 발을 편히 뻗고 잘 수 없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경쟁자가 더 뛰어난 기술로 휩쓸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한시도 떨쳐낼 수 없다.


“산에 오르고부터 대기업 장벽이 아무리 높아도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산은 그대로 있지만 내가 쌓은 산은 점점 자라게 될 테니까요. 내겐 그런 믿음과 확신이 있었죠.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어요. 만약 이 사회가 공정한 룰을 적용한다면 그건 얘기가 좀 다릅니다. 지금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시작할 때와 전혀 다릅니다. 나는 암벽에 몸을 붙인 채 내 거점을 확보했고 저들이 방심하기를 늘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저들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나를 내려 보겠지만, 그 높이는 점차 달라질 겁니다. 내가 매일 목이 부러져라 저쪽을 응시하고 있거든요. 그들은 나를 낮은 데서 춤추고 있는 불나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겠지요. 언젠가는 내가 그들을 내려다보는 날이 꼭 올 겁니다. 이 손을 보세요.”


그가 내민 손은 두꺼비 등처럼 두툼했다. 더욱이 바위틈에 짓이겨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손으로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내가 ‘산꾼으로 다져진 손’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때, 그가 내 뒤를 치는 말을 흘렸다.


“죽어라고 제품 만들며 고생할 때 그만 실험용 알코올 병이 터지면서 불에 그슬린 상첩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의 화력을 가장 크게 높였고 내 몸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룬 산이 더 큰 산에 가려지는 게 아닌, 석양을 받아 붉게 타오르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생과 사업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등 뒤로 석양이 불을 뿜어대며 눈부시게 빛났다. 우리는 오래 전에 폐쇄되었다가 최근에 개방된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곳에는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