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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대화를 통해 현실문제의 해법을 찾다

by 전경일 2014. 11. 21.

꿈의 대화를 통해 현실문제의 해법을 찾다

 

어느 특정한 일에 너무 골몰하면 꿈마저 현실 같아진다. 장군은 종종 꿈을 꾸었다. 난중일기에 나와 있는 모든 꿈은 예시와 결단을 동반한 것이었다. 이기는 꿈, 현실의 아픔을 드러내는 꿈 등 장군이 꾼 꿈에는 미해결의 관심사와 미래사가 농축돼 있고 비전이 드러나 있다. 장군이 평소 얼마나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해 잠재의식 속에서도 고심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장군의 꿈과 접속해 대화한다. 400여 년 전 장군을 만나러 가는 길, 그 단초는 장군이 꾼 꿈에 관한 여러 기록을 통해서이다. 장군의 꿈은 난중일기에만 36회 나오고, 기타 다른 기록까지 합하면 전체 41회나 된다. 임진년에는 2번 꾸었으나 그 내용을 알 수는 없다. 그 후로 다시 꿈이 등장하는데 특이한 점은 전란이 막바지에 치닫는 정유년에만 무려 13번이나 꾸었다는 점이다. 오랜 긴장 상태와 건강 문제가 잦은 꿈을 꾸게 하고 장군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한 게 아닌가 한다. 이 시기, 장군은 종종 피를 토했고, 자주 혼절하는 등 심신이 극한에 달한 상태였다. 온 몸이 흥건히 젖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나는 장군의 이런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수루에 올라 천지신명께 기도드리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 왜적을 무찔러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지금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꿈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장군은 꿈을 통해 현실의 긍정적인 면을 해석하고자 했다. 난관은 그것을 대하는 경영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듯이 장군은 꿈을 통해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적극적인 해법을 찾고자 했다.

 

새벽에 앉아 꿈을 생각하여 보니 처음에는 나쁜 것 같았으나 도리어 좋은 것이었다. (1592828)

 

맑았다. 새벽 꿈속에서 큰 대궐에 이르렀는데, 그 모습이 서울 같았다. 영의정과 마주앉아 이야기했는데, 임금이 피난 가신 일에 대해서 말하다가 눈물을 뿌리며 탄식했다. 적세는 이미 스러졌다고 한다. 서로 일을 의논할 즈음에 좌우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잠이 깨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1593년 초1)

 

꿈에 적의 모습이 나타났으므로, 새벽에 각 도 대장에게 알려서 바깥 바다에 나가 진을 치게 했다. 날이 저물어서야 한산도 안쪽 바다로 돌아왔다. (1593825)

 

맑았다. 날이 거의 샐 무렵 꿈속에서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과 함께 이야기했다. 한참 동안 둘이 다 의관을 벗어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서로 나라 걱정을 털어놓다가, 결국은 억울한 사정까지 쏟아놓았다. 얼마 뒤에 바람이 불고 비가 퍼붓는데도 헤어지지 않고 그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만약 서쪽의 적(여진족)이 급히 쳐들어오고 남쪽의 ()적까지 들어 덤비게 되면 임금이 어디로 가시랴하고 걱정만 되뇌다가, 더 할 말을 몰랐다. 전에 들으니 영의정이 천식으로 몹시 고생한다던데, 나았는지 모르겠다. 늦게 경상수사가 와서, “배가 견내량으로 나간다고 보고하고 떠났다. (1596113)

 

맑았다. 꿈속에서 돌아가신 두 형님을 만났는데 서로 붙들고 울면서 말씀하시길, “장사도 치르기 전에 천리 밖으로 떠나와 군무에 종사하고 있으니, 대체 모든 일을 누가 주장하겠느냐. 통곡한들 어찌하랴하셨다.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오셔서 이렇듯 근심하고 애달파하시니, 비통함을 금치 못하겠다. 또 남원의 추수를 감독할 일도 걱정하셨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1597년 초6)

 

맑았다. 꿈에 원공과 한 자리에서 만났는데, 내가 원공 윗자리에 앉아서 음식상을 받자 원공이 즐거운 빛을 보이는 것 같았다. 의령현감 김전(金銓)이 고령에서 와서 병사의 처사가 뒤죽박죽이라고 많이 이야기했다. (1597년 초7)

 

장군은 꿈을 현실에 적용하기도 했다. 극도의 몰입 경지가 펼쳐 보이는 세상이다. 김완이 쓴 임진일록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전한다.

 

한밤에 통제사가 청하여서 들어갔더니, “요즘 밤 꿈들이 불안하니 군사에 관한 일과 정탐하는 일을 엄밀히 지켜라고 한 것이 있다. 이때가 정유재란이 일어났던 시기요, 일본에 있던 가등청정이 조선에 상륙했던 날이다. (1597115)

 

장군은 이런 정황을 예견하고 있었으며, 군사작전도 자신이 꾼 꿈의 풀이와 함께 그 사실을 부하들과 의논하여 작전에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자기암시를 통해 해법을 구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몰입은 현실의 꿈을 실제화 한다. 그만큼 적을 쳐부수는 일에 몰두했다는 증거다. 1594920자 일기에서 장군은 이렇게 쓰고 있다.

 

새벽에 바람은 그치지 않았으나 비가 잠깐 들었다. 홀로 앉아 간밤 꿈을 생각해 보니, 바다 속에 있는 외로운 섬이 달려가다가 내 눈 앞에 와서 주춤 서는 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아 사방에서는 모두들 놀라고 나만이 혼자서서 끝내 그것을 구경했었다. 참 장쾌하였다. 이것은 왜놈이 화친을 애걸하고 스스로 멸망할 징조다.

 

장군의 꿈과의 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596710일자에는, “어떤 사람이 화살을 멀리 쏘고, 또 어떤 사람이 갓을 발로 차서 부수는꿈을 꿨다. 이는 적의 괴수를 모조리 잡아 없앨 징조라고 여겼다.

꿈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들 면()의 죽음을 예견한 꿈이 현실화 되었을 때에는 가슴이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23전 전승을 한 장군도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였다. 장군은 다정다감했으며, 인간적 풍미가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아들 면의 죽음을 예감하고, 부고 통지를 받았을 때에는 아버지로서 애간장이 다 녹는 슬픔에 빠져 들었다.

 

4(새벽 2)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헛디뎌 냇물 속에 떨어졌지만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내아들 면이 나를 껴안는 모습을 보고 깨었다. 무슨 조짐인지 모르겠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둘째 아들) 열의 글씨를 보니, 곁에 통곡(痛哭)’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면이 전사한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 인자하지 못하신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건만,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무슨 이치가 이렇게 어긋나는가. 하늘과 땅이 캄캄해지고, 밝은 해까지도 빛을 잃었다.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재앙이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 산들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울부짖기만 할 뿐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15971014)

 

장군은 면의 부음을 들은 지 꼭 나흘째 되는 날인데도 마음 놓고 통곡할 수 없으므로홀로 수영에 있는 강막지의 소금창고를 찾아 목 놓아 울었다. 아비는 아들의 시신을 거두는 것은 고사하고 무덤조차 보지 못한 채 훗날 노량에서 눈을 감았다.

극도의 몰입 경지가 꿈을 통해 해법을 제시한 예는 명량해전을 앞두고서였다. 915일 일기에는 이날 밤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서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저렇게 하면 패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순신은 그대로 작전을 세우고 실행했다.

 

극도의 몰입 경지는 그 일을 찾아 하나가 되어 일의 현재와 미래까지 내다보게 하는 통찰력을 불러온다. 장군은 중과부적으로 적을 상대하고, 조정의 부조리와 임금의 변덕스러움이 자초하는 국란의 현실을 보며 꿈을 통해 해법을 찾고자 했다. 한 가정의 아들이자 아버지로서 모친과 자식들을 생각하며 꿈을 꾸었다, 공인으로서의 꿈과 평범하지만 의로운 아버지로서의 꿈이 어우러졌다. 그의 꿈은 끝내 국란에 임하는 조선의 장군으로서 적과 번연히 맞선 현실을 꿈속에서도 재생해 냈다. 경제위기시대,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코자 하는 경영자들의 지난한 몸짓도 이와 같다. 현실을 뛰어넘는 일은 극도의 몰입을 통해 얻어진다는 교훈을 장군의 꿈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