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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터키에서는 피자, 유럽에선 파스타, 한국에서는 ‘3천년 빵’을 먹어야하는 특별한 이유

by 전경일 2016. 2. 2.

터키에서는 피자, 유럽에선 파스타, 한국에서는 ‘3천년 빵을 먹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

 

밀은 벼과 밀속에 속하는 1년생 초본으로 현재 23종이 재배되거나 야생종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지역 음식은 왜 돌아와서 먹어보면 현지 맛과 다를까? 특정 음식은 왜 해당 지역에 가서 먹을 때라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세계 어디서건 먹을 수 있지만 터키에서는 피자를, 유럽에서는 스파게티를, 한국에서는 3천년 빵을 먹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 같은 것 말이다. 이 답을 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야생을 누비다 우리 곁에 와서 길들여진 밀(소맥小麥, wheat) 품종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밀속()에 대한 세포유전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30년대 무렵부터였다. 그 당시 주된 관심은 종간(種間) 잡종 연구였다. 복잡한 유전체 연구는 옆으로 치워두고라도 이 같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트란스코카사스(아제르바이잔과 코카사스산맥 지역)와 터키, 이라크 및 이들 주변 지역에는 2배종의 밀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 밀은 1립계 밀(염색체의 수가 14)인 트리티컴 보이오티컴(Triticum boeoticum)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밀은 야생밀로 구석기 유적에서도 발굴되는데 주로 선사시대 주민들에 의해 채집되어 식용되었고, 가장 오래 전부터 인류가 재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종자는 대체로 청동기 시대 이후로는 재배가 줄기 시작해 오늘날에는 거의 재배되고 있지 않다. 일종에 유적이 된 종자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건강식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재발견되었다. 현재 우리가 즐겨먹는 빵밀도 이 야생밀로부터 유전적으로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그 사이 이 야생밀 종자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이 밀 종자는 그 후 사람과 가축이 이동하는 것과 함께 옮겨졌고, 새로운 풍토에서 새로운 야생종과 만나 새로운 살림을 꾸렸다. 잡종 교배가 모든 밀 종자에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 밀 품종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격렬한 사랑으로 태어난 자식들은 예전보다 가축과 인간의 입에 더 잘 맞게 유전적 성질이 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간 속에서 인간과 함께 하는 가장 친숙한 곡물로 남게 되었다. 지역마다 다른 밀 품종은 다른 입맛을 가져왔고, 그에 맞는 음식, 요리 문화를 가져왔다

 

야생종과 재배종의 중간 종자인 이 밀로 만든 최고의 음식은 터키에서는 피자다. 이 밀 종자를 갈아 피자를 구우면 밀가루 본래의 본토박이 피자 맛이 난다. 지금도 터키에서는 불에 구운 부풀지 않는 납작한 피자를 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 특유의 밀을 이용하고 있다. 만약 운 좋게도 터키의 바자르(시장)나 레스토랑에 가게 된다면 피자의 사촌뻘인 라와시와 케밥부터 주문할 일이다. 그곳 특유의 밀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 유럽 쪽으로 건너가면 토핑(topping)을 한 피자가 유행한다. 그것은 야생이 사라지고 난 뒤 덕지덕지 개칠되고 덧붙여진 유럽식 식문화의 상징이다. 그러고 보면 유럽문화라는 것은 대부분 무엇을 덧얹어 만들어 진 것들이다. 그리스의 헬레니즘이 기독교의 헤브라이즘의 원형이 되었듯이. 기독교인들은 천상과 지상의 모든 신들을 상상과 폭력적 방법으로 하나로 통합해 냈을 때 짜릿함을 맛보았을까?

 

이와 다른 밀속 종자로는 원시적 재배종인 야생 2립계 밀 트리티컴 디코쿰(Triticum dicoccum)이 있다. 이 종자는 신석기 시대부터 1년에 평균 5킬로미터 속도로 진군해 지중해 연안 및 중부 유럽에까지 전파되었다. 에티오피아, 모로코 등 아프리카 지역과 이란, 코카사스, 아라비아, 인도 등 아시아 지역, 스페인, 중부유럽,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발칸반도 및 불가지방 같은 유럽 지역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었다. 주재배지는 중동이라 부르는 근동(近東)지역이다. 이 종자는 고대에는 광범위하게 재배되었지만, 지금은 유럽과 아시아 산악지역에서 재배되어 언필칭 유적이 되어버린 곡물이 됐다. 그럼에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종자의 가치는 끈질긴 생명력에 있다. 어떤 열악한 토양 환경에서도 열매를 맺는다. 병충해에 강한 장점도 있다. 이 종자는 미국은 물론, 모로코, 스페인(서북부 아스투리아스 지역)과 체코와 슬로바이아의 국경 지대인 카르파티아 산맥의 산악지대와 알바니아, 터키, 스위스,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등지서 자란다. 미국에서도 특별한 농산물로 재배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이 밀을 이용해 전통음식을 만든다. 특이한 점은 이탈리아에서는 이 종자를 잘 관리해 재배 지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점이다. 가페가나 지역에서는 파로(farro)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법적으로 재배 지역은 보호받고 있다. 이 파로는 건강식품으로 유럽 전역의 상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고 영국의 슈퍼마켓에 들르면 선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종자는 주로 사람들의 음식으로 쓰이지만, 가축 사료용으로도 쓰인다. 사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영양가나 섬유질을 필요로 하는 면에서는 대체로 같다. 우리는 바다를 건너 온 같은 포유류들이다.

 

이 밀은 맛은 물론 섬유질 면에서도 훌륭한 빵을 만드는 데 쓰인다. 스위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등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종자보다 섬유질이 길어 특히 파스타를 만드는데 쓰인다. 최근에는 건강식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종자의 특색이라면 그 후 돌연변이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16세기 이후 마카로니 밀(T. durum)이 여기서 나왔고, 온대 건조 기후 지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 지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밀이 되었다. 지중해연안 지역에는 특별히 마카로니나 스파게티가 발달해 있는데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이 밀 종자 때문이다. 이 밀은 부질(gluten, 빵의 골격을 이루는 단백질로 빵을 부풀게 하고 끈적거리게 하는 성질. 밀가루 음식이 소화가 잘 안 된다는 통념은 일반적으로 그루틴 때문이다. 현재 식품업계에서는 그루틴 안전(Gluten Free)’ 식품을 만들기도 한다.)이 풍부하고 경질성을 띠어 두 음식의 원료로서 적합하다. 지중해 나라들에 가서 마카로니나 스파게티를 찾아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밀 종자의 변천사는 조만간 전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인간에 의해 식용되는 종자로 진화한다. 지도를 펼쳐보면 밀 종자의 확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다루는 가장 범용적인 종자는 지도에서 보듯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지역에 퍼져 그야말로 세계제국을 형성하고 있다. 어딜 봐도 이 종자뿐이다. 진화와 적응의 과정에서 보여준 승자의 궤적이자, 우리 입과 위장은 물론 소화기관도 이 종자와 관련 맺고 있다.

  

 

 

 

 

 

 

 

 

 

 

 

 

 

 

밀 종자 중 하나인 트리티컴 아에스티붐(Triticum aestivum)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게 분포해 있는 종자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풍토에 잘 적응한 앉은뱅이 밀도 지난 100년간 종자 면에서 달라진 건 없다. 이건 우리 입맛과 체질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같은 T. 에스티붐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수입 밀을 먹고 있다. 한국은 전체 곡물 자급도가 단지 27퍼센트에 불과한 농업 취약 국가다. 특히 밀은 국내 산출량이 극소해 생산량도 연간 4만여 톤에 불과하고 자급률도 0.2퍼센트에 불과하다. 같은 종일지라도 생산지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것은 틀림없다. 우리 입은 수입 밀로 만든 음식에 이미 익숙해 질 때로 익숙해져 있는 상태다. Source: Triticum aestivum distribution map. Data from Global Biodiversity Information Facility (GBIF) &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 http://agris.fao.org/agris-search. 

 

  

 

빵밀인 트리티컴 아에스티붐 L(Triticum aestivum L.)은 오랜 세월 돌연변이와 수많은 야생 밀과 자연스럽게 유전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종자로 우리가 매일 먹는 종자도 바로 이것이다. 기원전 7000년 전 유로-아시아 지역에서 재배되었으며, 다양한 야생 종자가 채집된 뒤 식용 목적으로 재배되었다. 이 종자는 오늘날 제빵업에서 확고히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그림은 야생 밀의 유전자 결합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ource: Picture by Kalda, M., MPIZ. Text by Dr. Wolfgang Schuchert.

 

 

빵을 만드는데 가장 적합한 빵밀의 경우는 어떨까?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빵을 만드는데 최적격인 빵밀인 트리티컴 아에스티붐(Triticum aestivum)은 한대에서 열대로, 건조지에서 습윤지로 폭넓게 적응하며 생태적 분화를 이루어냈다. 그 결과 세계 구석구석에서 재배되는 세계적인 밀이 되었다. 빵이 전 세계 곳곳에서 애용되는 식품이 된 것은 밀이 냉온을 가리지 않고 지배에 적응해 왔기 때문이다. 이 종자는 기원전 5천년~4천년 경 서남아시아와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의 도나우강과 라인강 유역에 이르렀고, 흑해의 서해안 전역과 남러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이어 기원전 3천년 경에는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같은 시기 아라비아를 거쳐 아프리카로 전파되었고,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1천년 뒤에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로, 그 후 기원전 2천년 경에는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중국에 전파된 이 종자는 음식 문화의 변화를 가져와 밀가루로 가공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그 뒤 가루음식이 잇따라 개발되고 수요가 급증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만두, , 국수, 심포자, 교자 등 다양한 밀가루 음식은 이런 사실을 잘 밑받침해주고 있다. 밀은 심지 않은 곳이 없었고, 면은 먹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중국인들은 밀을 이용해 삶고 찌고 굽고 튀기는 방법으로 다양한 요리를 개발해 냈다. 굽는 방법으로 발효법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중국식 빵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밀 종자는 기원전 1천년 경이 되면 한반도에까지 건너오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약3천 년 전이다. 따져보면 우리가 빵밀을 먹은 것이 대략 3천년이나 되는 것이다. 실로 장구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손과 짐, 그리고 가축의 털과 위장에 붙어 밀 종자는 끊임없이 이동을 거듭하다가 한반도에까지 들어 와 정착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수천 년 간 밀은 우리와 더불어 재배되어 왔다.

 

그런데 이 유구한 종자가 불과 30년 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데, 그 주요 요인은 한국 정부의 정책 때문이었다. 수입자유화와 1984년에 시행된 정부의 수매 중단 정책이 직격탄이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종자를 죽이고 수입 밀을 들여다 우리 식탁에 쏟아 부었다. 이때 우리 밀 말살 정책에 적극 가담한 측은 대한민국 정부와 제빵 및 제분업계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었다. 정부는 개방이란 이름으로, 대기업은 보다 높은 이윤추구를 이유로 이 말살의 선두에 섰던 것이다.

 

그러다 최근 들어 죽어가던 우리밀이 가까스로 근거리 먹거리와 우리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되살아나고 있다. 그럼에도 년 간 생산량은 단 4만여 톤에 불과하다.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는 이제는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다. 밀이 위기면 우리 먹거리도 위기고, 우리가 각자 하나씩 꿰찬 위장이나 장기(臟器)조차도 위기다. 유전자 조작과 방부제에 절은 수입 밀수입도 문제지만, 다른 밀속에 해당되는 종자가 맺은 곡분으로 빵을 만들어 먹을 때 제 맛을 느끼기도 어렵다. 미세한 맛 차이라도 그 차이는 식문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풍속도 바꾼다. 터키에서는 피자를, 유럽에서는 파스타나 마카로니를, 한국에서는 우리의 ‘3천년 빵을 먹어야 할 이유는 뚜렷하다. 이 땅이 우리 거라는  주장을 하려면 여기서 자라는 것들과 무관한 듯이 행동하는 오만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탐욕에 눈이 멀어 우리 것을 말살하는데 나서고 있다. 우리 밀로 빚은 우리 빵 한 조각을  매일 식탁에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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