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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탈페라=탈+춤+오페라의 창조적 발상

by 전경일 2016. 6. 28.

탈페라=++오페라의 창조적 발상

 

휴가차 찾은 제주도 초가(草家)에 들어서면 정낭이 떡하니 막아선다. 3개에서 4개 정도의 구멍이 뚫린 주석이나 정주목을 세우고 정낭을 걸쳐 놓는 풍경은 외지인들에게는 이국적이기만 한 풍경이다. 하지만 제주도민에게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정낭을 치는 생활 습속은 외부인과 내부인에 대한 표시 방식에서 비롯된다. 가로대가 놓이는 방식에 따라 누가 안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일종의 민간 출입시스템이다.

 

정랑을 보고 있노라면, (가부(可否)) 예스/, (()) /, (전등의) /멸처럼 1/0로 표현되는 디지털 컨셉이 왜 우리에게서 먼저 착안되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안을 들여다보려는 투시와 밖에 대고 안의 상태를 드러내 보이는 외표(外表)는 서로 어우러져 표리(表裏)가 상통(相通)하는 기호력을 보여준다. 이런 기호력은 오랜 시간 제주도민에게 디지털의 일상적 경험으로 작용해 왔다. 다만 21세기적 함의(含意)를 지니지 못했을 뿐이다. 생활 속에 체득된 지식을 보다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더라면, 디지털 컨셉은 우리가 먼저 시작했을 것이다. 민간에 드러나는 창의 지식을 잘 꿰면 토종을 글로벌로 키워낼 힘은 도처에 넘쳐난다.

 

북유럽의 신화를 원형으로 한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같이 상상력을 펼칠 무한한 문화보물을 손에 넣고도 우리는 남의 것에서 원천 역량을 찾기에 급급하다. 제주도만 하더라도 12천여 신이 있고, 신화, 전설, 민담이 수두룩 있는데 한라산을 올림포스처럼 신들의 고향으로 만들어 낼 이가 과연 있기나 할까? 하나의 웅장한 스토리로 꿰어 이야기 덩이로 만들. 내가 하회 마을에 갔다가 얼쑤! 탈춤을 보고 저절로 튀어나온 말도 이것이다.

 

 

우리 하회탈은 양반탈, 각시탈, 이매탈 등 등장인물만 해도 몇이나 되죠? (마스크) 반쪽만 뒤집어 쓰고도 전 세계적으로 대박치는오페라의 유형이란 뮤지컬이 만들어지는데 우리 탈은 춤까지 추면서 왜 로컬에 머물러야 하죠? 이봐요! 내가 신 장르로 탈페라를 만들 테니 두고 보시우! ‘++오페라말이오! 이건 로컬 컨텐츠가 글로벌 컨텐츠가 될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예가 될 거요!”

 

나는 언젠가 이 스토리텔링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

 

우리가 지닌 역사 자산도 무궁무진하다.조선왕조실록의 막대한 유산은 기껏 TV사극이나 왕의 남자, 신기전, 광해같은 몇 편의 영화로만 나타났을 뿐이다. 앞으로 숨은 보물을 누가 또 거기서 캐낼지 궁금하다. 예컨대, 광해군 1(1609) 825일 조 기사 중에 강원도에서 나타난 기이한 현상은 스토리텔링화하기에 딱 맞다. 이날 사시(오전9~11)부터 미시(오후1~3)까지 간성, 원주, 강릉, 춘천, 양양 이 다섯 곳에 시차적으로 햇무리 같기도 하고, 붉은 색 베 같기도 하고, 큰 호리병과 같기도 하며, 큰 동이 같고 세숫대야 같기도 한 기이한 물체가 하늘에서 불쑥 나타나 천둥소리와 함께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다. 흔히 조선시대 UFO’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기사는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다.(얼마 전에별에서 온 그대라는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바 있다.)

 

참고로 내가 연구해보니 이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궤적은 모양이었다. 혹시 이 문양에 특별한 뜻이라도 숨어 있는 것일까? 여기에 1609년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 뼈대에 이야기의 살을 붙이면 남다른 스토리가 될 것이다.  

 

한동안 태종 때 들어온 코끼리를 소재로 영화가 제작될 거라고 했던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태종 11222일 기사에 일본에서 코끼리를 바쳐 이 짐승을 기르게 하였는데, 날마다 콩 4·5()씩 소비해 사람들이 기이한 짐승이라 여겨 비웃고 침을 뱉자 코끼리가 노해 사람을 밟아 죽였다는 이야기이다. 그 후 코끼리는 전라도 순천 앞 장도(獐島)에 유배돼 방목되었는데 날로 수척해져 가서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려 다시 육지로 내보내게 하였다는 것이다. 요는 이런 기사 조각을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캐려고만 하면 우리 인문과 역사에는 미발굴의 노다지가 얼마든지 있다. 5000년 역사는 최대의 컨텐츠 자산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군지(郡誌)민속지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신화, 전설, 민담이 담겨 있다. 이 컨텐츠 보고(寶庫)는 아직도 전인미답인 채 현대적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예로아기장수설화를 들어보자. 함경북도에서 제주도 마라도에 이르기까지 어느 도나 군에서 녹취되는아기장수설화는 스토리의 비장미로만 따져도뮬란급 이상이다. 예전에 소설가 최인훈이 희곡으로도 쓴 바 있지만, 이 설화는 글감만으로도 다분히 글로벌 수준감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가난한 농사군의 집안에 한 아기가 태어난다. 때맞춰 장수의 탄생을 기다린 용마(龍馬)가 나타난다. 농사일을 갔다가 오면 아이는 대들보를 흔들기도 하고,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 까르륵 웃기도 하며, 천리 만물에 대한 식견을 갖는 등 범인(凡人)의 부모로서 감당키 어려운 능력을 보여준다. 상민의 집안에 비범한 인물이 생기는 것은 절대 신분사회에서 삼족 멸화의 우환덩어리라 결국 집안사람들은 아기장수가 잠들었을 때 맷돌이나 볏섬으로 짓눌러 죽인다. 아기장수가 죽자 용마는 슬피 울부짖으며 사라진다.

 

이 이야기는 이 땅의 숫한 혁명(민중봉기)이 좌절된 민중 비극사를 압축적이자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핍박 받는 민중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기장수가 민중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이러니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비극미를 내포한 어떤 원형스토리보다도 가슴 뭉클하다. 우리 근대사의 녹두장군 전봉준이 그러했을까?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이 그러했을까?

 

아이디어 고갈로 허덕이는 헐리웃은 쿵푸팬더를 통해 뮬란이 보여주지 못했던 동양의 힘을 각성했다. 동양은 더 이상 로컬이 아니다. 이 점을 제작사는 자연스럽게 1차물 상영과 함께 6차 시리즈물에 대한 글로벌 펀딩이 완료된 것으로 입증해 낸 바 있다. 로컬은 가장 거대한 원()소스이며, 창조성이 드러나는 스토리 원형 공간이자, 최대 소비 시장이다. 인류가 이룩해 온 문화 한가운데 놓여 있는 이야기의 금괴다. 요는 어떤 상상력으로 꿰느냐가 관건이다. 문화 컨텐츠는 어떻게 섞고 끓여대느냐에 따라 가치가 전혀 달라진다. 지식의 크로스 오버니 통섭이니 하는 말들도 이와 관련 있다. 대학에서 다양한 융복합형 학과가 생겨나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통섭은 역사 자산이 무궁무진한 우리로서는 주변만 살펴보아도 쉽게 채취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건축만 살펴보아도 무한한 상상력이 발동된다. 통섭의 멋과 힘이 한껏 어우러진다. 부석사 본전 앞을 지키고 선 안양문(安養門)은 못하나 박지 않았어도 건물 전체가 한 덩어리다. 이렇듯 천의무봉한 고건축의 비밀은 무엇일까? 천년을 견뎌온 목조문화재의 비밀은 바로 이음법에 있다. 나무와 나무를 정확하게 교차하고 끼워 맞춰 한 몸이 되게 했다. 못 하나 박지 않고도 홈을 파서 연결해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하게 묶인다. 재료로는 주로 송재(松材, 소나무)가 쓰이는데, 이 땅에서 나는 목재의 특성을 알고 살린 것이다.

 

우리와 달리 노송나무를 주재료로 쓰는 일본 고건축은 지어지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가 못을 조이는 방식이다. 나무를 고정시키는 방법도 한일 간에 크게 다르다. 일본의 기술 정신은 효율성에서 나오고, 우리는 합치와 조화를 중시한다. 그 차이가 지금까지의 한일 간 산업 차이를 가져왔다.

 

고건축 원리에서 21세기형 인문주의적 사람 됨됨이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거멀못과 같다. 지식을 묶어 보다 포괄적 역량을 드러낸다. 세상과 사람을 엮는 인문이 지닌 힘은 합체성이다.

 

그동안 우리는 어디서건 분리형 방법만 과도하게 취해 왔다. 통합성을 막기 위해 쐐기(뿔송곳, wedge,)만을 박아대는 식이었다. 계속 분리해보면 거기서 무언가 나올 줄 알았지만, 결과는 개별적 가치에 국한되고 말았다. 전체를 보고 대응하는 총체적 지식 면에서 계속 멀어져 왔다.

 

이제는 묶는 거멀못()이 필요하다. 1은 개별이요, 2는 합이다. 3, 4, 5는 섭()이요, 이 모두가 통()하고 합()해서 하나를 이루면 크로스 오버가 된다. 통합성은 총합된 새로운 세계를 가져오고, 통업(統業)을 가져온다. 21세기형 패러다임은 통업성을 기초로 새로 판을 짜야 한다. 그럴 때 각기 분리되고 떨어져 있는 것들이 하나로 모이며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 같은 협력의 원리를 전통 농기구에서 보기도 한다. 여럿을 이어 붙여 효율을 높인 삽의 변신인 열목카래를 살펴보자.

 

 

     

 

 

 

 

 

 

 

 

 

 

 

 

 

 

 

<그림1. 가래질 풍경> <그림2. 가래의 각 부분 명칭> <그림3. 열목카래>

    

<기산풍속화1. 장부 2. 가랫날 3. 가래바닥 4. 군두  5. 군두새끼 6. 꺽쇠 7. 군두구멍     

 

1인용 삽에서 열목카래로의 변신은 협동의 정신이 도구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지식의 품앗이, 협업을 통한 생산성 증대, 승구 개념의 확장성 등은 비록 전통적 농기구에서 찾아지는 원리이나 얼마든지 현대의 다른 산업 원리에 적용할 만하다. 지식의 원형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역사적으로 원천 소스의 유무와 적잖은 관련이 있다.

 

 우리 전통 농기구인 삽은 땅을 파거나 흙을 옮기는 데 쓰이는 1인용 연장이다. 생산성과 효율성 면에서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협력적 도구로 전환시킨 것이 가래라는 도구다. 가래는 연장 하나를 두고 여러 사람이 협동(두레)하여 일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가래 양쪽에 군두구멍을 내고 거기에 군두새끼()를 매서 한 사람은 장부를 잡고 나머지는 반으로 나누어 양쪽에서 군두새끼를 당기며 흙을 떠 던진다.

 

셋이서 하는 가래질은 세목한카래’, 일곱이 하면 일곱목한카래라고 하고, 가래를 두 개 잇대서 두 사람이 장부를 잡고 양쪽에서 네 사람씩 군두새끼를 잡고 하는 가래질은 열목카래라 부른다. 도구 사용과 협업 상 승수개념을 살려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처럼 민간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식을 타 분야에 활용하면 새로운 문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 것에 대한 경시풍조와 통찰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인문적 사고는 여러 생각을 격발시켜 새로운 생각의 움을 틔워 준다.

 

지식을 헤쳐보기만 했던 과거에는 감히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흩어진 것들을 헤쳐모아새로운 창조의 거푸집에 쏟아 부을 때 새로운 지식의 뿌리가 움튼다. 이전에는 감히 누구도 상상치 못한 새로운 창조활동은 이럴 때 생겨난다. 세계에 대한 무한한 관심으로 사물을 파헤치면 그 자체만으로도 어제와 다른 변혁의 동인이 찾아진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혜택은 없다. 비움의 미학을 말한 노자(老子)의 선시(禪詩)는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써 어우러질 때 이루어지는 세계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삼십 개 바퀴살은 바퀴통 속 구멍 안에서 하나가 되며,

바퀴살 사이의 빈자리 모여 하나의 바퀴를 이루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