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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작은 인지력의 차이

by 전경일 2016. 7. 12.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작은 인지력의 차이

 

1965년 이집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막 정찰대가 순회하던 중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절명한 네 사람의 사체를 발견했다. 사막 가운데서 그들이 어떻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는지 궁금해 하던 중, 한 사람이 남긴 노트가 발견되어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기록자는 죽기 수 시간 전 자신들에게 있어났던 일을 상세히 적고 심지어는 사진을 찍어 놓기까지 했다. 이 기록으로 정찰대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사고를 재현해 낼 수 있었다.

 

탐험대원들은 이집트에 사는 독일인들이었다. 일행의 임무는 리비아 사막을 횡단하여 약 480킬로미터 전방의 시바 오아시스에 있는 로마인의 궁전 자취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 날, 두 대의 폭스바겐 세단과 스테이션 웨건은 카이로 시내를 출발했다. 그날은 무더위가 몰아치는 6월의 첫 번째 토요일이었다.

 

다음날 분명하지 않은 시각에 불운하게도 그들이 탄 두 대의 차는 모두 길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고장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리고 이틀 후 일행은 사체로 발견된다. 그들의 몸을 조사한 결과, 수분은 완전히 말라 있었다. 보통 인간은 물을 먹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 10일 이내이고, 몸에서 수분의 15퍼센트가 급격히 빠져나가면 순식간에 죽게 되어 있다. 사체 상태로 봐서 그들의 죽음은 생명에 절대불가결한 물과 관련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두 대의 차량을 조사하던 정찰대원은 차 안에서 7.6리터의 물과 큰 망고 주스 통조림 5개를 발견했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수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탐험대원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일광에 몸을 노출시키며 극한의 발한(發汗)상태에 빠져들었다. 만약 그들이 가능한 한 땀을 덜 흘리고 시간을 벌며 구조 받기 위해 차안에 가만히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고귀한 생명은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는 극단적 상황과 물(음료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은 그들로 하여금 뙤약볕 아래로 내달리며 패닉 상태에 빠져들게 만들었고, 갑작스런 체내 수분 증발은 죽음으로 내 몰았다. 물론 이들의 죽음은 생존을 위한 상황 인지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로치스터 대학의 생물학자 팀은 모하비 사막에서 패튼 장군의 휘하에서 훈련 중인 군인들의 수분 요구도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연구 결과,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막의 폭염 속에서 견딜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충분한 양의 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생리 조절이 불가능해지고 체온이 급상승해 죽게 된다. 혹서에 대한 인간의 육체적인 조절기능은 극히 한정되어 있어 한번이라도 조절기능이 한계를 뛰어넘으면 체내에 갖추고 있던 수냉(水冷) 장치는 고장을 일으키게 된다. 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하루 필요한 식수량은 1인당 17.6리터 정도이고, 그 이하의 물로는 버티기 쉽지 않다. 만약 물이 부족한 상황에 처하면 최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는 탈수상태를 방지하는 것이다. 일테면 밤에만 걷고, 낮에는 그늘에 은신해 수분 손실과 육체적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한편 주간에 쉬고 있을 때에도 옷을 입고 있으면 몸에서 증발되는 수분을 늦춰 준다.

 

사막에서의 휴식 장소는 바람을 피해 되도록 공기가 움직이지 않는 장소를 선택해야만 한다. 굴이 있으면 가장 이상적이고, 옷이나 바위, 식물 등을 쌓아올려 그림자를 만들고 바람을 피하는 게 좋다. 옷은 또 두껍거나 얇게 입지 않고 통풍성을 가지면서도 일광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장소에서 자동차 고장이 나든가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에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편이 사막을 뚫고 가려는 것보다 공중 수색활동에서 발견될 기회가 더 많다. 이것은 극한의 환경에서의 행동 원칙이다. 그러나 이 독일인 탐험 대원들은 갑자기 닥친 사태에 심한 공포에 사로잡혔거나, 혹은 불필요한 과신 때문에 이 법칙을 무시했다가 결국 사막에서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비극적인 상황은 같지만, 기후 조건은 전혀 달랐던도너 리드 대원(Donner-Reed Party)조난사고는 오판과 불운이 겹친 사고였다.

 

184610월 북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내린 철 이른 눈은 이주하는 포장마차 대열 사람들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이들은 당초 빠른 도착을 위해 매우 위험천만한 지름길을 선택했다. 젊은 변호사 랜스포드 하스팅즈는 더 나은 길을 개척함으로서 캘리포니아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심까지 품은 자였다. 원래 오래곤이나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은 매우 위험해 열에 하나는 죽곤 했다. 그 길을 가리켜 사람들은 미국에서 가장 긴 묘지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하스팅즈의 제안을 받은 이주자들은 훗날하스팅즈 컷오프(Hastings Cutoff)라 불리게 되는 이 검증되지도 않는 험로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이 길이야말로 캘리포니아로 가는 가장 쉽고 빠른 여정이라고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길은 캘리포니아로 가는 데 가장 짧고 빠른 길이다. 만약 운이 좋아서 살아 갈 수 있다면 말이다.

 

그들은 만일의 사태 발생 시 도와 줄 사람도 없고, 가장 가까운 마을도 수백 마일을 가야만 있다는 것도 무시하고 전진했다. 누구도 앞으로 치루게 될 엄청난 희생 따윈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희망에 벅찬 이들 앞엔 곧 문제가 닥쳐 버렸다. 그해 봄과 여름에 일리노이로부터 출발한 이 대열은 이 하스팅즈 컷오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유타와 네바다의 염성(鹽性) 사막을 건넜을 때에는 이미 예정보다 몇 주나 늦어 있었다. 계절은 이미 10월로 접어들었고, 마차대는 피로에 휩싸였지만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기 시작했다.(이곳은 이 사건 이후부터 도너 고개(Donner Pass)’라고 불린다. 이 길은 르노에서 새크라멘토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다.)

 

이때부터 폭풍이 급작스럽게 몰려오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금방 1.5미터나 쌓인 눈은 산길을 가로막았고 일행은 꼼짝 달싹할 수 없었다. 캠프를 설치하려고 할 때 눈은 더 세차게 내렸다. 눈은 8일간이나 계속 쏟아져 임시 피난처를 9미터에서 12미터 눈 더미 속에 파묻어 버렸다. 이제는 진퇴조차 불가능해 졌다. 몇 주가 지나자 그들이 데려온 가축도 남지 않았고, 모든 식량은 바닥났다. 먹을 것이 떨어진 대원들은 공복과 피로감으로 죽어갔다. 그때부터 절망한 사람들은 죽은 동료의 시신을 먹기 시작했다.

 

구조대는 그로부터 약 5개월 후인 다음해 2월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87명 대원 중 47명밖에 살아 있지 않았다. 이 절망적인 사태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그것은 10, 가을이 한창일 때에도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변덕스런 날씨로 폭설이 퍼부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결과였다. 자연의 계획표가 인간의 생각이나 바람대로 움직인 경우란 없다. 검증되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 예정보다 지체된 스케줄은 불운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었던 것이다.

 

  

 

도너 부대가 선택한 루트를 표시한 지도. 일행의 절반가량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하스팅즈 컷오프(Hastings Cutoff)’ 루트가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오래곤에서 왼쪽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이 루트는 매우 험난해 아무리 지름길이라고 해도 어린이와 여자들을 데리고 마차를 끌고 가기에는 너무나 부적절하다. 게다가 늦어진 일정은 폭풍이 몰려오는 계절에 접어들고 있어 사고는 예정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Source: Map by Wikipedia.

 

그로부터 106년이 지난 19521월 중순, 저 도너 고개의 기상이 또 다시 가혹하게 여행자의 발걸음을 휘어잡았다. 1890년 이후 캘리포니아의 해안을 엄습한 최대의 습기 찬 폭풍이 사흘 동안 로스앤젤레스에 170밀리미터 이상의 비를 뿌렸다. 습한 폭풍우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이르러 눈보라가 되어 거칠게 몰아쳤고, 이로 인해 산길은 무려 15미터나 되는 눈 무더기 속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226명의 여객과 승무원들을 태우고 서쪽으로 향하고 있던 증기난방이 설치된 호화열차 시티 오프 샌프란시스코 호는 눈 무더기 속에서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장 연료가 떨어져 열차 전등은 꺼지고 난방은 멎었다.

 

더 치명적인 상황은 불과 하루분의 식량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도는 급격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때 사람들은 슬기로운 방책을 취했다. 승무원은 식량을 남김없이 분배하고 또 승객들은 침대차의 사닥다리를 뜯어내 스틸제의 통로 바닥에 불을 지폈다. 그 사이 제설대에 의한 구조작업이 서둘러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구조되기까지에는 사흘이나 걸렸다. 물론 이번에는 예전처럼 절망감에 사로 잡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먹거나 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구조 요청을 가능케 한 통신 기술 발달과 신속한 구조 활동이 여객과 승무원들에게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특정한 사건이나 사태에 직면하게 되고, 그 상황은 항시 유·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나의 바람과 (대부분의 경우에) 다르다. 그야말로 100만 마일이나 먼 곳에서 나와 무관하게 유유히 휘파람을 불며 불행은 언제 덮칠지 몸을 풀고 있다. 이런 모순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예리한 판단력과 정확한 분석력, 날카로운 식별력 등 평소와는 다른 날선 인지 능력이다. 평소 가진 느슨한 감각 상태를 끊어 버리고 냉철한 인식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닥친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태도가 상황을 크거나 작게 보지 않고 올바로 보게 만든다. 문제(사태)에 대한 과도한 반응도, 문제를 경시하는 태도도 금물이다. 생존을 결정하는 데에는 전 과정이 개입되지만, 궁극적으로 표출은 최후의 1(‘the last minute’)에 일어난다. 이때만 해도 사태를 예방하거나 멈추게 할 수 있다. 요는 평정심과 판단력이다.

 

고고학적 연구를 위해 사막을 횡단하던 탐험 대원들이 교과서에서 봤을 법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만 활용했더라도 사막에서 생명을 잃는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찾고자 한 리비아 사막의 로마인 궁전이 폐허가 된 이유는 문명 파괴에 의한 것이다. 물론 그보다 결정적이며 장기적 요인은 물을 끌어 다 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발과 기후 변화는 이 궁전을 사막의 모래에 파묻히게 했다. 문명은 퇴조했지만, 근처에는 무수한 생물이 여전히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밤에 내린 아주 적은 이슬로 생명을 유지하는 적응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동식물의 생존 조건을 단순히 활용만 했어도 뜨거운 주간의 태양은 피할 수 있었을 테고, 대원들은 구조되었을 것이다.

 

도너 리드 대원조난 사고의 경우,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미확인 행로를 갈 때에는 해당 지역의 자연 조건과 상태를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이들은 험로 조건을 무시한 채 전진하다가 결국 인육을 먹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반면 시티 오프 샌프란시스코 호는 눈 무더기 속에 갇혔지만 차분하게 대처한 바람에 무사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행동은 어설프게 조난을 자초하는 행위를 하거나, 절망감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냉철하고 현명한 조처다. 적절한 상황 판단과 대책이 생사를 가눈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온갖 사건·사태는 궁극적으로 벌어질 법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흥분과 좌절 상태에서 표류하기보다 객관적 상황에 대한 침착한 대응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삶을 향한 노력은 엄청난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작은 인지와 대처 능력에 달려 있다. 누군가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보다 날카로운 인지의 힘을 발휘하면 최악의 경우에조차 생존에의 여지는 높아진다. 그것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 만인들이 보이는 사회적 반응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 심리와 행동 준칙을 안다면 어떤 절망적 상황도 피할 수 있다. 두루 보며, 깊게 보는 인지력이 결정인자인 셈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