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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셰익스피어와 인도신화에서 인간에 대해 묻다

by 전경일 2016. 8. 5.

셰익스피어와 인도신화에서 인간에 대해 묻다

 

 

내가 먼저 할 일은 나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찌 자신이 진실치 못하면서 남이 나에게 진실하기를 바라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대에게 진실하다면 밤이 낮을 따르듯 아무도 그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사람이 누군지 본질에 대해서 알 수 있다면, 인간사 모든 것을 꿰는 것일 게다. 사람 속에 삶의 지혜가 올곧이 들어 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읽는 작업은 사람읽기의 연장선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다보면 인간 군상을 발견할 수 있다. 우정과 배신, 지혜와 무지, 욕망과 절제, 사랑과 복수가 뒤얽히는 인간 군상이 속속 드러난다. 이 대문호의 작품을 접하며 인간 세계에서 수없이 만나는 사람들, 갈등 요인에 나름 해법을 찾게 되는 건 대립적 요소가 주는 성찰에의 묘미 때문 아닐까

 

문학은 이야기에 빠져드는 순간, 화자와 하나가 되어 자신의 퇴화된 감각과 인식을 살려내고, 인간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도록 인도해 준다. 상상의 세계에서 인간 공통의 이해와 그 반대편의 사상(事象)까지 읽어내는 투시의 혜안을 제시한다. 이 점에서 셰익스피어는 누구보다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에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질문이 끊임없이 넘쳐나고 있다. 폭군도 나오고, 훌륭한 통치자의 인격이나 친구간의 관계 그리고 시민의 의무도 생생히 표현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일반을 다루기에 보편적 인간 이해에 기초한다. 그래서 문학가이자, 희곡작가이며, 시인이기까지 한 그는 오늘날 인간 문제를 다루는 사람의 진면목과 딱 맞아 떨어진다.

 

셰익스피어는 탁월한 정치적 작가였다. 정치적 배경 설정과 그 속에 꿈틀거리는 인간 욕망, 거짓, 두려움과 복수에 대해 그 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가는 없다. 위대한 시인의 조건이 시를 읽는 중에 내면의 성찰을 가져온다면, 셰익스피어는 거기에 가장 가까운 예술가이다. (물론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를 극도로 폄하했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감동의 원천은 여기에 있다. 당대를 같이 살았던 벤 존슨은 셰익스피어를 가리켜 한 시대뿐만 아니라 전 시대의 인간이라고 극찬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예술가와 같은 시대를 산 것만으로도 그는 복 받은 사람이다.

 

셰익스피어를 만나면 독자나 청중 내면에는 새로운 공간이 들어찬다. 요즘 말로, 감동공간이라고 할까. 쉽게 변심하고, 감동하며, 예측 불가능한 작중 인물들은 우리 마음과 똑같다. 이 때문에 인간의 심경(心境) 저 밑바닥까지 투시경을 쓰고 내려다보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에 나타나는 인간은 탐욕스럽고, 우스꽝스러우며, 아둔하고, 슬기롭고, 두려움에 가득 찬 인간 군상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전혀 차이 없다. 어디서건 생생한 이미지 그대로 표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는 모든 복잡한 인간 심리와 현상을 재생해 내는 탁월한 역할 수행자를 자임하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도시국가는 복잡한 가치가 혼성된 비즈니스 세계와 닮아 있다. 베니스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을 지닌 개방적이고, 부에 넘치며 욕망이 들끓는 장소다. 문화, 인종, 가치관 등 모든 것들이 부딪치지만,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가치도 따로 존재한다. 이런 건 열린 장의 특징이기도 하다. 샤일록과 바시니오-안토니오도 그 같은 인간군상 중 하나다. 너무도 유명한 살과 피(flesh and blood)의 이야기를 뜯어보면, 과연 샤일록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계약 이행 조건이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관념화된 사악하다는 판결너머) 과연 이 도시국가에서는 부당하기만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물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베니스를 유지하는 힘은 법률이다. 샤일록이 강조하는 것도 이것이다.

 

공작은 법률을 어길 수 없지. 왜냐하면, 베니스에서······ 그것이 부인된다면, 국가의 정의에 이의를 제기할 테니까.”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각각 유대인과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가치에 기반해 싸우는 이들이 얼마나 자기 세계에 몰두하는지 잘 보여준다. 샤일록은 심지어는 체제 항거자로까지 보인다. 그 중 한 대목을 살펴보자.

 

살레리오 : 아니, 설마 그가 채무 이행을 못한다고 당신이 그 사람 살점을 도려내지는 않겠지요. 그걸 뭐에다 쓰게요?

샤일록 : 낚싯밥으로 쓰겠소. 다른 아무 먹이도 되지 않으면 내 복수심더러 먹으라고 하면 되죠. 그는 날 모욕했소. 그리고 50만 이상의 손해를 보게 했다구. 내 손해를 비웃고, 내 이익을 조롱하고, 내 민족을 경멸하고, 내 거래를 방해하고, 내 친구들의 우정을 식게 만들고, 내 적들의 증오를 뜨겁게 달구었어.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 바로 내가 유태인이라는 거지. 유태인은 눈이 없소? 유태인은 손이 없소, 내장이, 체형이, 감각이, 애정이, 열정이 없소? 기독교인과 마찬가지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무기에 부상당하고, 같은 겨울에 춥게 지내고, 같은 여름에 덥게 지내는 거 아니오? 당신네가 우릴 찌르면 우린 피가 안 난답디까? 당신네가 우릴 간질이면 우린 키득거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당신네가 독을 먹여도 우린 죽지 않는다는 거요? 그리고 당신네들이 우릴 해코지해도 우린 복수를 안 한다 이거요?

 

이쯤 되면 찢기고 손상된 양측 간의 갈등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다. 처참한 타자에 대한 몰이해와 격렬히 벌어지는 인종 간 충돌의 생생한 현장- 베니스가 손에 잡혀질 듯하다. 이곳에선 지금 법률과 영혼이 맞붙어 우열을 가리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베니스는 이 위대한 시인에게 선과 악이 아닌, 충돌하는 또 다른 가치가 실험되는 놀라운 장이 된다. 물론 작가는 끝내 안토니오를 구한다. 이 같이 뜨거운 문제를 안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이런 문제는 인간사에서 사라질 가망이 전혀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베니스의 상인의 해법은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인도의 신화와 견주어 볼 때 그 처리 방식이 적잖이 다르다는 점이다.인드라와 시비왕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어느 날 제사를 지내고 있는 시비왕에게 매에게 쫓긴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어 보호를 요청한다. 왕은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왕의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이 약속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매 한마리가 날아 와 비둘기를 내어 달라고 요구한다. 비둘기는 자신을 내놓으면 죽게 될 거라고 내어주지 말라고 간청하고, 매는 한 마리의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매 가족 전체가 굶주려 죽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왕은 비둘기와 이미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에게 황소든 사슴이든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매는 자기는 비둘기만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왕은 다시 자신의 왕국을 포함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대신 가엾은 새의 생명만은 살려달라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매는 이윽고 입을 열어 비둘기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대신 그 새의 무게만큼 왕의 다리 살을 베어 달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자기는 비둘기를 포기하겠다고. 이에 왕은 매의 제안을 아무 망설임 없이 받아들여 칼을 들고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저울 한쪽 편에 올려놓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의 살을 베어도 저울은 여전히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진 채 움직일 줄 모른다. 이에 왕은 비둘기의 무게가 아직도 더 무겁구나. 그러나 나는 설령 나의 모든 살을 다 베어야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쉬지 않고 자신의 살을 베어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군중은 저마다 비탄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왕이시여,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이미 당신의 다리에는 뼈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살을 베어내면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한 마리 비둘기 때문에 당신의 귀중한 생명마저 버리려 하십니까? 어서 멈추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왕은 전혀 미동도 않고 계속 칼을 들어 자신의 살을 베어낸다. 아무리 자신의 살을 베어도 저울이 기울지 않자 이제 왕은 자신이 직접 저울위로 올라간다. 드디어 왕이 일어나서 막 저울위에 한발을 내딛을 때였다. 별안간 저울 한쪽 편에 있던 비둘기와 그를 지켜보고 있던 매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신들의 왕인 인드라와 불의 신인 아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인드라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손을 들어 왕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왕은 즉시 이전의 봄으로 회복된다. 이것은 두 신이 시비왕이 과연 신이 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한 것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1596년경에 쓰였고 1600년에 초판으로 발행되었다. 그는 이 소재를 이탈리아의 옛날이야기에서 취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기(1564~1616) 유럽은 본격적으로 동방으로 진출해 1595년에는 네덜란드가 인도 항로로 진출해 향료 무역을 본격적으로 개시했고, 1600년 들어서면 영국도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동양 침략에 나선 때이다. 셰익스피어가 인도를 오가는 선원들로부터 이 신화를 흘러들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물론 유럽 내 유대인에 대한 편견 이야기는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어서 인도 신화와 무관하게 옛날이야기를 이 희대의 모방과 창조의 천재가 새로이 각색해 낸 것일 수 있다.

 

베니스···의 스토리 얼개는 샤일록을 징벌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상선은 무사하게 돌아오며, 남녀 간 사랑도 이루어지는 대결말을 지닌다. 반면, 인도 신화는 자신을 바치려는 결단으로 끝내 신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시바 왕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나는 세속적 욕망의 완성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 승화다. 침략과 피침략을 각기 하고 겪은 서양과 동양의 차이가 이런 것이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담고 있는 세계는 무한하다. 그를 가리켜 아무리 세속적이라 폄칭해도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인간에 대해 밀도 높게 접근하고 있다. 이 점은 인간 본질을 이해하는 셰익스피어가 지닌 가치이자 비중이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인간과 세계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There’s the rub).’ 물론 인간 자체로서 셰익스피어는 인간성을 웅변하고자 하는 쪽에 서 있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기막힌 이성, 한정 없는 그 능력 ······신과 흡사한 이 이해력!”

 

그의 다른 작품햄릿도 인간 존재의 문제 앞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고통 받는 영혼이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적 풍요에 대해 이렇게 노래할 때,템페스트(The Tempest)에서 미란다는 이렇게 외친다.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예요 기막힌 새 세계, 거기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어요!”

 

세계는 아름답다. 특히 인간이 꿈꿔왔던 이상향은 더 그렇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인간을 보는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 존재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우리는 늘 외부에서 찾고자 하지만, 욕망이나 가치같이 반짝이는 것들은 늘 우리 안에 있다.

 

꿈과 인간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네.”

 

정말이지 꿈은 우리로 하여금 거기에 쉼 없이 달려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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