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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빨판상어를 잡아 죽일 것인가, 돌고래가 될 것인가

by 전경일 2016. 12. 2.

빨판상어를 잡아 죽일 것인가, 돌고래가 될 것인가

 

스칸디나비아 피오르드(fjord, 좁은 만) 해협에선 알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얼음에 갇힌 바다에서 배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얼음이 배를 꽉 물고 놔주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기보다는 알 수 없는 힘이 배를 멈추어 세운다. 그래서 선원들에게는 신비스럽고 두렵기만 곳이다.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항해가 시작된 오랜 옛날부터 이런 현상은 종종 나타났다.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에 의하면, 칼리굴라 황제의 함대 중 한 척인 갤리선이 어떤 바다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모든 함대의 전진이 갑자기 정지되어 버렸다고 한다. 움직일 줄 모르던 배는 한 선원이 갤리선의 키에 달라붙어 있는 한 마리의 빨판상어를 발견해 죽여 버리자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배의 용골(龍骨)에 빨판상어가 달라붙는 일이 종종 발견되었으므로 이 상어가 배에 마술을 거는 거라고 믿었다. 빨판상어의 무게가 배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빨판상어 특유의 영력(靈力)이 배에 주술을 거는 거라고. 후세에 이르러서도 항해자들은 똑같이 성가신 현상에 직면했다. 그때마다 선원들은 배를 전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해수를 노나 몽둥이로 내려치거나, 총을 쏴서 갈기거나, 해면에 기름을 뿌리거나, 또는 승무원 전원에게 갑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마구 뛰어다니게 하거나, 배를 요동칠 정도로 흔들어 보게 하는 것이었다. 바다 저 밑에서 벌어지는 뭔가 이상한 현상을 정확한 원인도 모른 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탈출해보려고 애쓴 것이다.

 

이처럼 바다 밑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운 현상은 오랫동안 불분명한 채로 남겨져 있었다. 이런 현상은 아무리 강풍이 불고, 힘이 센 배라도 마찬가지였다. 증기기관 시대가 되었어도 배는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전진할 수 없었다.

불가사의한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마침내 과학자들이 뛰어들었다. 노르웨이 북극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18938월 탐사선 프람호()를 이끌고 북극 탐험에 나섰는데 타이미르섬 근처의 노르덴시욀란 다도해에 이르렀을 때 이런 현상을 목격하고는 이렇게 기록했다.

 

프람호는 마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등덜미가 붙잡힌 것처럼 키도 말을 듣지 않았다. 평온한 파도에 그리 많지 않은 짐을 실었을 때에는 배가 보통 시간당 11~13킬로미터로 항진하는데, 이 죽은 물에서는 겨우 2.8킬로미터만 움직일 뿐이었다. 우리는 항로를 둥글게 돌아도 봤고, 오른쪽으로도 돌아보는 등 모든 시도를 다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얼음 가장자리 2~3킬로미터 이내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갔을 때에는 프람호의 중량과 배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배가 얼음에 부딪친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런 건 뭔가 홀린 듯 이상한 것이었다. 이 신비한 현상은 난센에 의해 처음 기술되었고, 그는 바다의 침묵이 너무 깊어 은하계가 운행하는 소리만 들었을뿐이라고 말했다.

 

해양학자 A.B.C.휘플에 의하면, 예부터 전해오는 이 어려운 문제를 해명한 사람은 스웨덴의 해양학자 V.W.에크만이었다. 에크만은 피오르드의 해수가 현저히 층을 이루고 있는 특색에 주목했다. 하천에서 배출되거나 빙하가 녹아서 흘러나온 엷은 민물 층은 밀도가 높은 외양수 위를 떠돈다. 밀도가 낮은 공기와 만나면 물에는 수면파(水面波)가 형성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밀도가 서로 다른 물도 층과 층을 이루며 그 사이에 물결이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배의 용골이 저밀도 물의 얕은 표층을 지나 아래에 그보다 고밀도 물에까지 닿아 있다면, 배의 운동 때문에 성질이 다른 두 물 사이엔 경계를 따라 수중파의 열()이 생기게 된다. 이것을 내부파(Internal Wave)라고 한다. 이 물결은 시속 1.6~3.2킬로미터의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성질이 있다. 내부파 영향으로 배는 아무리 속도를 내도 내부파 속도 이상으로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배를 가속시키면 시킬수록 돛과 노, 스크루에서 나오는 힘은 배의 전진 운동에 쓰이지 않고, 오히려 내부파의 진폭을 증대시키는 데 흡수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배가 탈출할 수 있는 경우란, 층을 이룬 표층수를 벗어났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실에 유리벽 물통을 만들어 놓고 염분의 농도가 서로 다른 물을 층이 지도록 채워놓았다. 그러곤 각 층을 각각 다른 빛깔로 물들여 놓았다. 그리고 모형배가 물을 가로질러 가도록 했다. 해면의 작은 물결 아래에, 밀도가 높은 층의 물과 그 물 사이에 경계가 만들어 지면서 모형 배는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이로써 배의 전진을 가로막는 자연 현상의 비밀이 풀리게 된 것이다.

 

 

이 바다는 거울처럼 매끈해 보이지만, 아래에는 거대한 물의 운동에 의해 표층수가 천천히 모여드는 물의 수렴지대가 놓여 있다. 겉으로만 봐서는 안 보이는 해저의 움직임은 표면을 떠돌고 있는 쓰레기와 해조류, 플랑크톤 등과 같은 작은 조각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한 플랑크톤의 띠를 통해 수면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 같은 원리는 사회적 현상이나 경영상 벌어지는 제반 흐름이나 조직 관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요컨대 해수면 아래 벌어지는 현상을 보다 이면의 본질을 통찰해 낼 수 있다면 이보다 본질적인 깨달음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물을 가리켜 해양학자들은 죽은 물(dead-water)이라고 부른다. ‘죽은 물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밀도차로 배가 움직일 수 없는 것과, 다른 하나는 물의 운동이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오랜 시간 항해자들에게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다른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프랑스 리용 대학의 물리학자 티에리 독솨(Thierry Dauxois) 교수와 동료 학자들이 한 실험이다. 이 연구팀은 색소로 표시된 서로 다른 염도를 지닌 두 층의 물을 300센티미터 길이의 수조에 넣고는 그 위에 장난감 보트를 띄웠다. 그러고는 일정한 힘으로 장난감 배에 묶인 케이블을 당기게 했다. 보트가 달리자 층들의 경계에 있던 숨어 있던 파도가 보트를 눈에 보이지 않게 추격하면서 느리게 하는 것이 보였다. 물은 표면이 잔잔했지만, 보트가 숨은 파도와 접촉하자 갑자기 느려졌다. 아래층의 물이 위로 당겨져 보트가 지나간 자국의 갈라진 틈을 채우면 이 층들 사이의 경계에 진동을 만들어 보트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파도의 크기와 속도는 계속해서 커지고, 그로 인해 파도와 그 앞의 골을 보트 자체가 붙잡아 앞으로 나가는 속도를 1/4로 줄여 버린 것이다. 결국 파도를 일으킨 선적 와류(船跡渦流)현상은 보트 자체의 에너지가 내는 것이었다.

 

 

최근에 밝혀진 죽은 물선적 와류현상간의 관계에서 경계면 파도라는 개념이 찾아졌다. 이 개념은 해양 동력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또 바다의 오염 물질이 어떻게 서로 섞이고 침전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타 분야에 활용해 보면 조직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이나, 혁신의 주체와 방향이 가져오는 영향 및 고려 사항도 아울러 예측해 볼 수 있다.

Source:http://gcaptain.com/dead-water-effect-sinking-of-the-fram/

http://www.youtube.com/watch?v=PCOL8kUtufg[/youtube

 

죽은 물은 민물과 담함수(淡鹹水, 소금기 있는 물)가 고밀도의 소금물과 섞이지 않고 그 위에 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서는 배의 프로펠러를 아무리 가속해도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 또한 배를 마음대로 조정하기도 힘들뿐더러 심지어는 배가 서 있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인다. 배의 추진력은 두 물의 층 사이에서 급격히 속도가 줄어들어 정상 속도에 비해 단지 20퍼센트도 내기 힘들다.

 

이 같은 자연 현상인 죽은 물을 만약 사회 현상이나 경영 활동 등에 대입해 보면 어떤가? 우리는 어느 조직이나 계층(계급) 구조의 차이로 상층부와 하층부의 다양한 밀도차를 경험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 간에, 노와 사 간에, 언론보도와 실질 국민 정서 간에 나타나는 온도차 같이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나타난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나, 사회(조직) 갈등 구조, 이해 방식의 상이함 등은 이런 것들을 잘 보여준다.

 

많은 경우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는 어느 사회, 조직에서나 겉돌고 엇돈다. 상호 소통되어야 하는 문제는 깊은 심해에 갇혀 버리고 만다. 이런 다양한 밀도차는 비유하자면, (조직 또는 구성원들)가 단 1미터도 가지 못하게 붙잡는 이유가 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은 무엇인가? 오랜 적 처방대로 선원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들고 빨판상어를 잡으라는 식의 지시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의 기업을 예로 들자면, 무효율의 혁신운동이나, 의례적 연말 조직개편, 의미 없는 전사(全社) 캠페인 같은 것들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요식행위이다. 실제로 그 주체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은 실은 사업의 본질 면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겉으로라도 뭔가 하는 양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밀도차는 어디서건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대통령의 연두기자 회견이나 정부기관의 발표다. 대통령의 (틀림없이 중대한 발표라고 정부 스스로 말하는) 연두회견은 국민 몇 퍼센트가 내용을 공감하며 기억할까? 정부 조직의 각종 발표는 극단적 불신을 불러오는 대표적인 예임으로 여기서는 차치하겠다. 이들은 어떤 경우라도 이상 없다’, ‘국민들은 안심하라고 큰소리쳐 댄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관료집단에나 이상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AI 조류독감이 퍼졌을 때, 대한민국 1퍼센트 사람들만이 당시 특효약으로 알려지던 타미플루를 손에 넣었다. 이런 배신적 행위는 국민한테는 절망적 기분이 들게 한다. 경제적 관계 면에서 살펴보면, 한국 사회의 계급구조는 예전의 지주-마름-머슴의 봉건제적 관계가 현대적으로 명칭만 달라졌을 뿐이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배가 움직이지 않을 때 구성원들로 하여금 빨판상어를 잡게 하거나 갑판에서 껑충껑충 뛰게 하는 일은 아주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방식이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쓰인다. 아마도 그들은 (또 다른 원인이지만,) 밀도차가 존재하는 해양에서 자신이 일으킨 파도 때문에 결국 배가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죽은 물에 갇힌 사람들은 대양을 향해 달리는 물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아무리 생생한 물이 저 밑에 흘러도 그들로서는 알 턱이 없을 것이다.

참고로, 예인선을 끄는 선원들은 오래 전에 죽은 물을 만났을 때 취해야 할 몇 가지 해결책을 찾아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배 뒤에서 다가오는 파도가 지나갈 때까지 몇 분간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예인 로프를 최대한 짧게 해 예인되는 대형선박 근처의 물과 예인선의 스큐루가 일으키는 진동을 뒤섞이게 하는 것이다. 이 두 방식도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이보다 더 흥미를 끄는 건 사람보다는 돌고래의 대처법이다. ‘죽은 물에 빠지면 돌고래조차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적응해 온 이들에게 이런 건 식은 죽 먹기다. 몸을 기울여 파도의 언덕을 타 넘어 다른 해수 층과 만나며 즉시 곤경에서 벗어난다. 아주 작은 몸의 조정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속도를 잃지 않은 채 완벽하게 죽은 물에서 벗어나고 다가오는 물결에 몸을 내맡긴다. 돌고래의 이런 적응법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물론 개인보다 훨씬 더 멍청한 조직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그걸 조정한다고 덥석대고 우쭐거리는 자들을 보면 어떤가? Copy Rights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