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세종은 원칙을 뛰어 넘는 방법론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기자의 사당에 비석을 세우고 고려왕들 중에서 백성에게 공헌한 다섯 왕을 선정하여 왕씨 후손들로 하여금 매년 제사를 올리게 했다. 또한 삼국의 시조묘(始祖墓)에 대한 국가적인 치저(致祭)를 하도록 조처했다. 그리고 전임 CEO인 태종이 사관(史官)들의 입시(入試) - 오늘날 공무원 채용시험 - 을 허용하지 않던 관례를 깨고 경연에의 입시를 허용하고, 사관들이 역사기록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기록을 남기게 하기도 했다. 세종은 이처럼 원칙과 방법 모두에서 운용의 묘를 제대로 살릴 줄 아는 CEO였다.
[제도는 그 적합성을 테스트해 보아야 한다]
세종은 원칙은 지키되, 그 운영의 묘를 살릴 줄 아는 융통성 있는 CEO였다. 더불어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함에 있어 ‘실행가능성’을 가장 중시 했다. 실행되지 않는 정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제도를 만듦에 있어 언제나 현실의 적합성을 따졌고, 실험적 운용 방식을 취하였다. CEO 세종은 과연 목표가 달성될 수 있는가? 그것은 현실적인가? 달리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바로 이와 같은 고민 속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명분만 얘기하지 마라. 숨막힌다]
세종은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갔다. 성리학을 경영 이념으로 정착시키면서도, 또 한편으로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는 곧 많은 골수 유학자들의 저항에 부딪쳤다. 하지만 그는 기우제는 역대 CEO들도 지낸 바 있다고 강변하며 이를 관철시켰다.
또 왕후가 죽자 말년에는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궁중 안에 내불당(內佛堂)을 짓기도 했다. 이는 유교적 지배 이데올로기 하에서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명분만을 고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종의 이런 ‘명분 뛰어넘기’는 「훈민정음」 개발시 그대로 드러나 최만리 등 ‘한글반대파’들을 잠재우는데 효과적인 경영 전략으로 표현되었다.
사실 세종은 급진주의적인 개혁파는 아니었다. 세종이 `조종성헌(祖宗成憲)`을 강조하면서 함부로 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이를 밑받침하고 있다. 이것은 정통성을 지켜 국가 경영을 안정화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보수주의에 안주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조종성현을 강조하면서도 요순(堯舜)의 이상을 내세워 국가 경영의 목표와 수단을 혁신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종은 권력을 안정시킬 줄 알았고, 그 힘을 이용해 민생과 복지를 향상시킬 줄 알았다. 다시 말해, 세종은 ‘보수’가 무엇인지, ‘혁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경영자였다. 그것이 그 무렵 창업보다 수성의 시기에 요구되는 CEO가 취해야 할 행동의 하나였다.
[중요한 문제는 충분히 논의하라]
세종은 중요한 문제를 충분히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독단에 흐르거나, 아집을 부리는 후세 많은 CEO들의 행태와는 전혀 달랐다.
정도전이 지은 『고려국사』를 세종 때 개찬하는 과정에서 CEO와 신하들 간에 갈등이 있어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윤회 등이 지은 『수교고려사』와 권제 등이 지은 『고려사전문』은 완성을 해놓고도 발표되지 않았다. 특히 『고려사대전』은 『용비어천가』에 실린 태조 관계 기사가 누락되고, 편찬자인 권씨 가문의 비위를 숨겼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세종과 신하 사이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왕실을 높이고 시대명분에 융통성을 가지려는 CEO와 신하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명분에 충실하려는 신하 사이의 의견차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인 세종과 그 당시 세종 정부에 참여한 임원진간에 원칙은 지키면서도 상호 실리를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데서 나왔다. 이러한 상호 의견 교류와 절충은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점진적으로 유교로 물들여 가면 된다]
어느 시대나 사람의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대부분 ‘바뀐다’는 것은 점진적이다. 그러나 점진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개혁적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세종은 조선의 사상적 배경인 ‘유교화’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종교 및 생활에 있어 갑작스런 변화를 꾀하지는 않았다. 그는 급진적인 조치에 따른 저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 백성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관습을 유교로 대체해 나가는데 있어 점진적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신의 차기 CEO인 세자 - 후에 문종이 됨 - 의 혼례를 위해 적절한 예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누구에게나 저항 없이 쉽게 스며드는 것은 아니었다.
세종은 고유한 혼례 관습을 유교적으로 바꾸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을 깨닫고 이같은 방식을 즉각 수용하겠금 강제하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가지고 서서히 물들여 가는 방식을 취했다. 화선지에 먹물을 먹이는 방법과 국가 경영상 새로운 사고와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원칙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선택한 원칙과 방법 모두를 취하는 전략은 상당한 인내 속에서 얻어진 것들이었다. 결국 국가 경영이든, 오늘날의 기업 경영이든 저항을 무야시켜 가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획득해 나가는 전략, 다시말해 ‘인내’는 가장 값진 것이다. 세종은 이러한 ‘꾸준함’으로 끝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냈다. 세종시대 국가 경영의 치적은 CEO의 참으로 오랜 인고의 결과였던 것이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균형감 있는 경영은 원칙과 방법 모두를 얻음으로써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실제에 맞게 변용해 쓸 수 있는 자세도 포함해 하는 말이다.
*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냄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리드하는 CEO가 되어라. 그것은 필요시 절묘한 경영 성과로 이어진다.
* 자신의 행적을 조작하려 하지 말라. 만일 그러하다면, 결국 자신의 양심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 원칙과 방법은 이를 운용하는 묘미를 살릴 수 있을 때에 빛을 발한다. 이는 또한 반드시 실행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라. 필요하다면 명분을 뛰어 넘어 달리 방식을 취하라.
* ‘바뀐다’는 것은 얼마든지 점진적일 수 있다. 점진적인 것이 당신이 밋밋하거나, 무력(無力)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인내를 가지고 이를 밀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