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되기 전부터 세종은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당시에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서적을 두루 섭렵해 나갔다. 이는 국가 경영에 필요한 지혜를 확장해 나간 것을 의미한다. 세종은 이렇듯 오랜 준비와 노력 끝에 CEO가 되었다. 타고난 총명함과 자기 준비는 그 자신 변화하는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케 만들었다. 그리하여 세종은 마침내 오랜 준비 끝에 신생 조선에 역사적으로 부여된 대업을 이뤄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 세종은 오랜 준비와 노력 끝에 자기 앞으로 국가 경영의 막중한 임무가 부여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CEO였다. 이 새로운 기회 앞에서 세종은 이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용기는 그 무렵 세종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CEO 준비 사항 중 하나였다. 이런 준비 과정은 그 자신이 신임 CEO로 투입되자 마자 조선의 ‘수성’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에 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도록 만들었다. 국가 CEO라는 임무는 헌신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국가경영은 그런 까닭에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는 막중대사였다. 그런 헌신과 더불어 그동안 경영수업을 해오며 지득한 지혜 - 즉, 신속한 판단력과 행동, 그리고 끈기 있는 추구 자세 - 는 그의 강력한 경영 모태가 되었다. 더구나 그 시기는 무한 격변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것은 세종에게 실로 가장 큰 ‘행운’이었다.
[거대한 문명의 교류가 일어나다]
세종시대는 세계사에 있어서 강력한 ‘문명의 교류’가 일어났던 시대였다. 물론, 지금처럼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ㆍ이슬람ㆍ로마ㆍ그리이스 문화권과 직ㆍ간접적인 문화적 교류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 당시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이슬람 교도가 있을 정도였다. 세종 9년(1427년) 4월 4일 사록엔 세종이 회회교도(回回敎徒, 이슬람교도)들도 나라의 풍속을 따르라는 명령을 내리고 대조회에서 그들로 하여금 이슬람 경전을 암송하지 못하도록 명령하는 내용이 나온다.
원대(元代)의 과학기술은 그 당시에 세계적인 선진국이었던 로마제국, 그리이스 그리고 이집트의 천문, 역법 및 질학(質學) 등 장구한 과학적 전통이 녹아 흐르는 것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문명은 세종의 개방 정책에 힘입어 속속들이 조선으로 넘어 왔다. 조선은 - 세종 그 자신이 평생 ‘목마름’의 병을 가지고 있었듯이 - 너무나도 ‘목마른’ 나라였다. 새로운 문명을 향한 갈망은 이러한 문명의 비를 짧은 시간 동안 모조리 흡수하고도 남았다.
[세종, 한국형 르네상스를 낳다]
세종은 CEO로서 자신의 ‘독특한 역량(distinctive competence)’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 인간관과 가치를 잉태하는 자신의 소질과 능력이었다. 이러한 CEO의 역량에 걸 맞춰, 세계 문명의 꽃비가 이 한반도에 쏟아져 내렸던 것이다. 세종은 그것을 듬뿍 받아 안았다. 그리고 거기에 생명과 의미를 불어 넣었다. 이것은 바로 우리나라가 제1차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 것을 의미했다.
서구의 과학과 IT기술을 도입한 세종은 그것을 우리나라에 맞게 새롭고 독창적인 것으로 재창조했다. 이런 기술들은 천체관측과 역일(歷日)의 편찬 그리고 강우량을 포함한 일기예보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기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것은 농본국이었던 우리나라의 농업생산성을 향상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것이 조선조 르네상스의 첫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거기엔 세종이라는 매우 탁월한 CEO가 있었다.
[세종으로부터 배우는 경영 정신]
* 변화하는 환경에 맞춘 신속한 판단력과 행동 그리고 끈기 있는 추구의 자세를 강력한 경영의 원천으로 삼으라. 그것은 당신에게 반드시 행운을 약속해 줄 것이다.
* CEO는 자신의 ‘독특한 역량(distinctive competence)’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 보편적인 인간관과 가치, 그리고 소질과 능력이 자신이 직면한 환경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줄 것이다.
[르네상스: (1) 이탈리아 르네상스 교육의 특징은 인간을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만능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적성교육을 통해 각자 재능과 특성에 맞게 적합한 공부를 시키고 귀족적이며 엘리트적으로 키워내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지혜와 덕을 겸비한 지배층의 양성에 있다. 또한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하여 인간의 실제 생활에 필요한 지혜와 지침을 마련해 주고 대화술과 처세술과 같은 삶의 기술을 가르쳐 주고자 했다. 그것은 교육에 있어 인문학교의 교과 과정인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 즉 문법ㆍ시ㆍ수사학ㆍ역사ㆍ도덕ㆍ철학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교육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실천을 강조하는 ‘활동적 삶(vita activa)’을 반영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신념을 교육을 통해 불어 넣어 주었다.
(2)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제1차 르네상스기를 세종시대(大王의 世紀)로 보고, 제2차 르네상스기는 진경산수(眞景山水)가 등장하고, 「청구영언(靑丘永言)」「해동가요(海東歌謠)」 등의 가사집이 편찬되었던 중인(中人)들의 세기인 영ㆍ정조시대로 본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제3차 르네상스기를 맞이하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르네상스기는 정치적 불안이 없는 가운데 문화가 만발해야 하는 기준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에서 봤을 때,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분단의 시기는 많은 문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기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언젠가 통일 이후 정치적 안정과 경제ㆍ 문화의 융성기가 펼쳐진다면, 그 때를 제3의 르네상스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